흐드러지게 핀 들국화를 보며 '떠남'을 떠올리다!!
흐드러지게 핀 들국화를 보며 '떠남'을 떠올리다!!
  • 승인 2005.09.2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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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정명은기자의 북한산 샅샅이 훑기

#길가에 피어 있는 이름모를 꽃들이 앙증맞기만 하다.


코스모스가 막바지 몸부림을 치고 있다. 몇차례 피었다 지기를 반복했는지, 이젠 힘이 없는 모양이다. 그저 빨리 저세상으로 떠나고 싶은 가녀린 몸짓 뿐…. 항상 그렇지만 이번에도 무작정 나선 산행. 어떤 코스를 알려드릴까, 하다가 결국은 비교적 평범한 코스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이전에도 한차례 소개한 적이 있는 정릉 청수장이 시발지다. 하지만 이전 코스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참고로 정릉은 사적208호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후비 신덕왕후(현비 강씨)의 능이다. 신덕왕후는 이성계가 젊은 시절 사냥터에서 물을 찾았을 때, 버들잎 하나를 물 바가지 위에 띄워 전해준 일화의 주인공이다. 이성계와의 사이에서 방번, 방석 등 2남과 경순공주를 두었다.

이번 등산에는 `기자질`을 하며 밥 먹고 살고 있는 한 언론계 친구가 동행을 했다. 헌데 문제는 그 친구의 그리 시원치 않은 산행 이력이다. 이미 이전에도 약 다섯 차례 산행에 나선 적이 있는데 두 번은 중도 포기하고 그냥 내려가고 말았을 정도이니…. 대신 그 친구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우리가 내려갈 곳으로 미리 가서 기다리는 `끈기`는 가지고 있다. 물론 그게 다 술 때문, 등산 후 이뤄질 술자리 때문이라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이날 비교적 평범한 코스를 선택하게 된 데는 그 친구의 영향력도 크게 작용했다. 출발 때부터 쉬운 코스로 가지 않으면 또 중도 포기하고 내려가 버릴 것이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해댄다.
"알았다…알았다구."


#정릉계곡. 물이 차가울텐데 물놀이는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릉 계곡을 거슬러올라가는데 아직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날씨가 더운 탓이다. 그러고보니 아직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도 안했는데 기자질하는 친구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히는 게 보인다. 그래 쉬엄쉬엄 가자.
등산 코스 안내 지도를 보는 이 친구의 표정이 벌써 심상치 않다. 갈래길에서 영추사쪽으로 건너가는 다리로 접어들자 바로 한마디 던진다.
"또…삥 돌아서 가려고 하지?"

그냥 웃고 앞장을 선다. 대신 느릿느릿…몇년전 방한했던 탁닛한 스님의 교훈을 되새기기라도 할 듯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혼자 산행을 할 땐 대부분 등산객들을 제치고 나아가는 편인데 이날은 그렇지가 않다. 그래도 콧노래가 나오는 걸 보니 화창한 날씨 덕분인가?

돌 계단길이 이어진다. 천천히 걷지만 숨이 차오르고 한두방울 나던 땀이 줄기가 되어 흘러내린다. 은근히 걱정되어 뒤를 보면 땀을 바가지로 흘리며 그래도 열심히 따라오는 친구. 그래도 끝까지 어떻게든 따라가보겠다는 의지가 표정에서 읽힌다. 다행이다.

적당히 가다가 쉬고 하기를 40여분 오래돼 보이는 절이 나타난다. 마당 가운데 오랜 세월의 연륜을 고스란히 간직한 석탑이 서 있다. 어디선가 스님들의 법문 읽는 소리가 들려온다. 영추사다.

고바위길이 이어진다. 친구의 숨이 더 가빠지는 게 느껴진다. 물을 한모금 마시는데 "지금 포기하고 내려갈 수도 없잖아"하는 힘없는 말이 한숨소리와 함께 들려온다. `당근`이쥐.

그래도 이전에 비해선 해볼만 한 모양이다. 이번엔 앞장을 서 걷는다. 약 30여분을 더 진행하니 형제봉과 평창동 쪽에서 오르는 길과 만난다. 일선사 입구다. 그곳서 대성문쪽으로 우회전. 15분여 비교적 평탄한 길을 걸으면 대성문과 만난다. 가을이어서인가, 등산객들이 꽤 많다.


#대성문이다.

능선에 오르니 탁 트인 서울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시야도 좋은 편이다. 친구의 입에서 탄성이 터진다. 우회전해서 보국문쪽으로 향하는 산성 능선길. 일주일 전과 뭔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바로 꽃이다. 노란색의 이름 모를 꽃들과 함께 지천으로 피어있는 파아란 색의 꽃. 저게 무슨 꽃이지? 하는데 주부로 보이는 한 여성이 `들국화`라고 일러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기자가 알던 들국화와는 뭔가 좀 다르게 생겼다. 바로 이파리다. 들국화는 아닌 것 같은데…그런데 친구도 들국화 같다고 한다. 일단은 믿어보기로…. 바로 사진에 있는 것인데 만일 아시는 독자님들이 계시다면 신문사로 연락좀 주시길…. 가을 바람에 하늘거리는 꽃들을 보니 문득 떠나고 싶은 욕구가 치민다. 배낭 하나 메고 전국 산하를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그런데 이 놈의 현실이란….


#들국화라고 한 주부가 알려주었는데 글쎄...실감나게 크게 넣어봤다.

보국문을 거치고 대성문을 지나서 탈출하지 않고 능선길을 더 진행하는데도 친구는 별다른 동요가 없다. 이전같으면 내려가자고 난리났을텐데….

"능선길이야, 뭐 저번에도 가본적이 있고…"하며 꽤 자신감있는 표정이다.
삼십여분을 더 걸으면 나오는게 용암문. 위문을 거쳐 백운대까지 계속하고 싶지만 배가 고파서 안되겠다. 음식을 준비해가지 않은 탓이다. 친구도 이젠 그만 내려갔으면 하는 눈치다. 용암문에서 탈출, 가파른 하산길을 삼십여분 내려가면 도선사와 만난다. 도선사 광장에선 우이동까지 왕래하는 버스(도선사에서 운행하는)를 탈 수도 있지만 그냥 걷기로 했다. 삼십여분을 더 걸으면 버스종점과 만난다. 인근 식당에서 시원한 막걸리에 내장볶음을 한 접시 시켰는데 마파람 만난 게눈이다.


#북한산 아래서 바라본 저녁노을. 환상이다.

친구 한마디 한다.
"이 정도면 탈만 한데…앞으로 자주 좀 데리고 다니라구…."
과연 그럴까. 산은 결코 만만한 것만은 아니던데…. 정명은 기자 sljung99@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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