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담 걸쭉한 '익산떡'의 육자배기로 풀어내는 情 1,2,3,4편

첫 번째 이야기-익산떡

"전라도 민요의 하나. 일반적으로 육자배기는 <긴 육자배기>와 <자진육자배기>를 합쳐 말한다. <긴 육자배기>는 진양조에, <자진육자배기>는 세마치장단에 맞추며, 보통 《보렴》 《화초사거리》 《육자배기》 《흥타령》 등의 순서로 부른다. 음계는 낮은 소리는 떨어주고, 중간소리는 평으로 내며, 그보다 위의 소리는 반드시 꺾는 목소리를 내는 전라도소리의 공통적인 특징을 갖는다. 서도의 대표적 민요가 《수심가》라면, 전라도의 대표적인 민요는 《육자배기》이다."
그녀를 보면 <육자배기>가 떠오른다. <육자배기>가 정확히 뭔지 몰랐다. 그런데도 그녀에게선 그 <육자배기>가 배어 나왔다. 그래서 찾아보았다. 그리고 무릎을 쳤다. 아하, 그래서였구나.
전라도….
맞다. 그녀는 전라도 여자다. 얼굴만 보아도 안다. 행동만 보아도 안다. 말투는 남도인지, 북도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다. 육자배기 같은 걸쭉한 입담이 그칠줄 모르고 쏟아진다.
그래서 물었던 거였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였다. 전라도 어디가 고향이에요? 보통 사람들의 고향에 대한 질문은 이렇지 않다. 어디가 고향이에요?? 쯤 될 게다. 그런데 사족이었다. 그래서 한 단계를 뛰어넘었다.
전라북도 익산이여!! `요`자가 차마 붙지 않는다. 붙였는데 들리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듣고 싶은 화자의 욕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걸쭉한 건 걸쭉해야 한다는 욕구, `요`자가 붙는 게 더 어색할 것 같다는…뭐 그런 거다.
왜? 하는 단말마의 첨언이 확신을 갖게 한다. 아니, 그럴 것 같아서…. 이쯤 되면 기가 죽는다. 간신히 한마디 덧붙인다. 저는 고향이 어디인 것 같아요?? 글씨, 어딘가?? 동행한 놈의 입이 방정이다. 그 쪽이여요…. 화자의 고향 역시 그쪽이란 얘기를 걸쭉한 남도 억양으로 얘기해버린다. 어딘디?? 고창이구만이라우!! 용기 내서 억양을 살려보려고 하지만 어색하다.  그 집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정확하게 서울 동대문구 숭인2동 201번지, 동대문에서 신설동 로터리 방향으로 직진하다 동묘 사거리를 지나서 약 100미터, 농협이 나온다. 농협을 끼고 우회전해서 25m 유료주차장 한 켠이 그녀의 일터다. 이름하여 `스트릿 레스토랑`. 화자가 붙인 것이다. 그것도 초등학생인 딸아이 영어교육 때문에…. 딸아이는 저녁 7시30분 경이면 전화를 걸어온다.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밥은 먹고 들어올 것인지, 집엔 몇 시에 들어올 것인지 등을 묻는 전화다. 그런데 모든 대화가 잉글리시 스피킹이다. 딸아이의 영어교육을 위해 잉글리시 스피킹 실력 무지하게 딸리는 화자가 제안한 것인데, 딸아이는 그럭저럭 재미가 있나보다. 그래봤자, `웰 아유??` `왓아유 두잉??` `웬 유 컴백 호움??` 식의 질문에 역시 그 정도의 답변을 하는 게 고작이지만….
그곳에 간 첫날 저녁 7시 30분에도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웰 아유??` `아임 니어 마이 오피스` `니어??` `예스…` 하고 구체적인 장소를 말하려는데 말문이 막힌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나온 명언 `스트릿 레스토랑!!`. 이쯤돼서 넘어가야 하는데 딸아이, 몇 번 해봤다고 한마디 더 내세운다. `왓이즈잇??` `음…인투 코리안…포장마차!!`. 화자 손에 이끌려 몇 차례 어거지로 포장마차 경험을 한 적이 있는 딸아이의 `아이 언더스탠드!!` 소리가 산지 3년된 핸드폰을 빠져나와 `스트릿 레스토랑`에 울려퍼진다. 의기양양 딸아이 질문이 이어진다. `왓아유 두잉 데어??` `아임 드링킹 코리안 와인…음…막걸리!!`.
그렇다. 이보다 기막힌 잉글리시 스피킹이 있을 수 있을까. 술을 마시던 숭인동 사람들이 쳐다본다. 어깨가 으쓱해진다.
익산떡!! 이란 별칭은 그날부터 화자에 의해 불려지게 된 것이다. 표준말은 `익산댁`이 될 것인데, 화자의 고향인 고창에서, 동행인의 고향인 전남 영광에서, 익산떡의 고향인 전북 익산에선 그렇게 불렀었고 지금도 불려질 것이다.
익산떡의 얼굴에 벙그레 웃음이 번진다. 기분이 나쁘진 않은 모양이다.

두 번째 이야기-스트릿 레스토랑

익산떡이 일하는 `스트릿 레스토랑`은 따뜻하다. 찬바람이 불어도, 비가 내려도, 폭설이 전국을 뒤덮어도 온기가 가득하다. 난로가 두 개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불꽃을 내면서 타는 석유난로다. 덩치가 크다. 또 다른 하나도 석유난로다. 불꽃은 보이지 않고 따뜻한 스팀을 내보낸다. 두 개의 난로는 항상 맹렬하게 타오른다. 불꽃을 내는 난로가 시뻘겋다. 약-중-강 3단으로 조정할 수 있게 돼 있다. 항상 `중` 이상에 고정돼 있다. 그건 손님이 있건 없건 마찬가지다.
손님이 따뜻해야제…. 포장마차라고 추우면 쓰겄어??
말통으로 기름이 하루에 꼬박 한 통씩 들어간단다. 기름 값도 비싸기만 하다. 뛰어오른 유가 때문이다. 하루에 1만9천원씩은 고스란히 갖다 바쳐야 한다.
포장마차는 두 개의 포장마차로 이뤄져 있다. 하나는 수레가 있는 `진짜` 포장마차다. 다른 하나는 `진짜`에 덧대어 포장을 친 `더부살이` 포장마차다. `진짜`엔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로 된 냉동고가 있다. 냉동고엔 온갖 종류의 안주거리들이 푸짐하다. 문어, 꽁치, 꽃게, 꼼장어, 꼬막, 병어, 가이바시라, 대합 등 해산물이 주종을 이룬다. 오돌뼈, 칼국수 등은 물론이다.
전부 다 싱싱혀…. 그렇다. 전부 다 싱싱해 보인다. 어지간한 주당인 화자는 나 좀 잡셔주쇼, 하고 몸뚱아리를 고스란히 맡기고 있는 이 놈들의 상태를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하루에 한번씩 꼭 띠어 오는 것이여, 라는 익산떡의 첨언이 뒤따른다. 하지만 그 뿐 아니다. 익산떡은 솔직하다.
그곳에 들를 때마다 화자는 항상 갈등할 수밖에 없다. 전부 다 댕기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모두를 다 주문하는 건 국가 경제를 위해서나, 화자의 짧은 입맛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족히 300초에서 350초 정도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곤 한다. 그러다보니 동행인까지 불러서 합의를 본 끝에 결정을 하는 게 다반사다. 하지만 그렇다고 갈등이 거기서 끝을 맺는 건 아니다.
오늘은 꼼장어를 먹어볼까, 하면 영락없이 익산떡의 뒷말이 따르게 마련이다.
요즘 중국산 많이 들어온디야….
그래요?? 그럼 뭘 먹지?
병어 먹어!! 요즘 철이 잖어.
결국 300초에서 350초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그렇게 허물어지고 만다. 그리고 잠시 후 화자는 익산떡의 강력 추천에 내심 감탄을 하고 만다.
뼈째 썰어내오는 병어회에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 맛도 맛이지만, 익산떡의 후덕한 손인심이 또 한번 발휘돼 나오는 시디 신 김치에 싸 먹는 병어회 맛은 가히 천하일품이라.   
바로 이 맛이여!! 절로 전라도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데….

세 번째 이야기-막걸리

화자는 술을 좋아한다. 자주 마신다. 원래는 소주 건, 맥주 건, 막걸리 건, 때론 양주 건 가리지 않았다. 요즘은 가린다. 주종은 막걸리다. 추억이 많다. 처음 막걸리와의 조우는 상당히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자가 태어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1학년 중반까지 살았던, 그리고 지금도 `고향`이라는 아련함으로 자주 찾는 전북 고창에서다. 정확히 말하면 전북 고창군 상하면 장호리 성동 산46번지다. 지금은 성동이란 집 몇 채 안되는 조그만 마을 지명은 어디론지 사라져버렸고 그저 장호로 불린다. 산46번지는 산에 있어서가 아니다. 장호나 성동엔 산이 없다. 단지 숲이 있을 뿐이다.
야야, 막걸리 좀 받아 오거라이….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를 일이나, 아마도 화자가 네 발로 걷기 시작할 무렵이 아니었겠나 싶다. 손에 힘이 좀 붙어서 두 되 짜리 찌그러진 양은 막걸리 주전자를 들 수 있는 나이 무렵이 아니었겠나 싶다. 산46번지 숲 속에 위치한 집에서 10여분 떨어진 점빵까지 걸어서 오갈 수 있는 나이 무렵이 아니었겠나 싶다. 점빵에서 "야?! 야?!" 하고 큰 목소리로 점빵 주인을 불러내고 "막걸리 두 되 주시오이!!"하고 말 할 수 있는 때쯤이 아니었겠나 싶다. 이마에 주름살이 잔뜩 접힌 할머니가 점빵 한쪽 귀퉁이에 큰 덩치로 자리하고 있는 막걸리 항아리 뚜껑을 연다. 그리고 술통 속에 빠져 있는 몇 년 됐을지 짐작조차 힘든 시커멓고 뺀질뺀질한 되빡(거기선 그렇게 불렀다)에 가득 막걸리를 담는다. 양은 주전자의 뚜껑이 열리고 한되빡이 먼저 쏟아부어진다. 그리고 두되빡이 부어진다. 양은 주전자의 배가 볼록해진다. 어라?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고창군 상하면 장호 점빵집 할머니 인심 좋다. 약 반되빡은 더 될 분량의 막걸리를 다시 퍼올리더니 주전자에 붓는다. 주전자 속 막걸리가 출렁출렁 금새라도 넘쳐 나올 듯 소요를 일으킨다.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소년의 코를 찔러온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안에 침이 고인다.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묵직하다. 새마을운동으로 단정하게 정리된 골목. 빨간색,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황금색의 초가지붕도 눈에 띈다. 가끔 지나가는 낯익은 동네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한다.
오냐잉, 막걸리 받아가냐잉!!
양은 주전자를 오른 손과 왼 손으로 번갈아 쥐기를 정확히 5번째, 동네 끝 부분에 당산이 있다. 500년도 넘은 커다란 소나무가 11그루 서 있다. 당산은 매년 정월 대보름에 제사를 지내는 나무가 있는 곳이다. 소년 또래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하고, 여름 한 철 농사일에 지친 어른들의 휴식처이기도 하다. 집을 가려면 당산을 지나고 모래 둔덕을 지나고 숲을 지나야 한다.
다행히 아무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양은 주전자에 눈길이 간다. 점빵 할머니가 덤으로 퍼부어주던 반되빡이 아까부터 계속 머릿속을 빙빙 맴돌고 있었다.
무거운 주전자를 두 손으로 입 근처까지 낑낑대며 끌어올린다. 아까의 시큼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코를 타고 전달된 의식이 뇌를 자극한다. 뇌의 명령이 이어진다.
입을 갖다 대…그리고 주전자를 5도 정도만 기울여…그럼 세상이 달라진다니까.
채 명령이 끝나기도 전에 주전자의 뾰족한 부리는 소년의 조그만 입안에 들어가 있다. 굳이 5도를 기울일 필요도 없다. 그 인심 좋은 점빵 할머니 덕분에 2도 정도만 기울이자 차디찬 막걸리가 입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혀 끝에 일기 시작한 미세한 파장이 꿀꺽, 소리와 함께 엄청난 파문으로 이어진다. 식도가 시원하다. 박하사탕을 먹었을 때보다 더 시원하다.
입을 뗀다. 캬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면서 코끝이 찡, 하다. 소매로 입을 훔친다. 주위를 둘러본다. 여전히 아무도 없다. 주전자를 모래길 위에 내려놓는다. 뚜껑을 열어본다. 1cm 정도가 굴어 있다. 다시 미소가 번진다.
그렇게 주변의 눈치를 계속해 살피면서 두 번 세 번을 번복하다보니 어느새 입안에서 "꺼억"하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동시에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소년은 그래도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막걸리류는 경험을 해 본 터이다. 어머니가 밀주를 담갔을 때 `찌겅이`(찌꺼기)에 사카린을 타 마셔 본 경험이 있다. 이건 어머니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냄새는 나지만 조금만 있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다시 뚜껑을 열어본다. 3cm 정도는 더 굴어 있다. 이 정도면 됐다.
슬슬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발걸음이 가볍다. 집으로 향하는 숲길. 소나무가 빽빽하다. 작은 소나무로 다가간다. 솔잎을 딴다. 입에 넣고 질겅 질겅 씹는다. 막걸리 냄새를 가시게 하기 위함이다. 이제 끝!!
"어허, 막걸리가 많이 굴었네잉…!!"
"……"
"조심해서 좀 가져오지 그랬냐."
막걸리 주전자를 받아든 아버지는 이렇게 혼자 파악하시고 혼자 결론을 내리시고 만다. 시골에서 자란 이라면 누구나 경험해봤을, 그리고 한두번쯤 반추하면서 미소지을 그 사건들의 중심엔 물론 막걸리가 있다.

네 번째 이야기-황금 똥

갑자기 왜 얘기가 삼천리로 빠졌냐구?? 바로 막걸리 때문이다. 화자는 전언했듯 막걸리를 좋아한다. 어릴 때의 이런 기억이 강하게 작용한 탓일 게다. 술과의 첫 인연을 맺게 해준 막걸리이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이외에도 이유는 많다.
서울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는 사실 막걸리의 존재를 잊었었다. 막걸리가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화자의 기억엔 대신 동동주가 자리하고 있다. 민속주점이었다. 좌석 둘레에 쳐져 있는 칸막이. 그 위 짚으로 엮은 조그마한 초가지붕 위엔 자라지 않는 포도 넝쿨이 매달려 있다. 아는 형들을 따라 다니기 시작한 민속주점에서 화자는 항상 동동주를 마셨다. 안주는 두부와 김치가 대부분이었다. 술이 얼콰해지면 주점 한 귀퉁이에 놓여 있는 기타를 두들기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소주를 마시기도 했지만 친한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항상 동동주를 즐겼다. 슈퍼마켓에서 때론 생라면에, 때론 삶은 계란 한 두 개에, 때론 달랑 김치 한가지에 마셔대기도 했고, 민속주점에서 두꺼운 통나무 탁자를 젓가락으로 두들겨 맞춰지는 장단에 `끝내 살리라`를 부르며 동동주를 들이붓기도 했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간 군대는 이와관련 더욱더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 준 계기였다. 그 찬바람 몰아치는 철원땅. 최전방 부대다 보니 `작업`이 잦았다. 동계진지작업, 추계진지작업, 춘계진지작업…. 오죽하면 `삽사단`이라고 자평했을 정도였으니. 그런데 그렇게 많은 작업도 그저 반갑기만 했던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바로 그놈의 막걸리 때문이다.
철원에서 약 한시간 남짓 남쪽으로 내려오면 나오는 포천. 그 포천이 무엇으로 유명한지는 다 아실 것이다. 바로 그놈의 막걸리다. 포천에서 나오는 막걸리는 당시 두가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나는 이동막걸리고 다른 하나는 일동막걸리다. 맛 차이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둘 다 환상이었을 뿐.
진지작업을 하는 중간 누군가에 의해 `추진`돼 오는 이동 혹은 일동 막걸리. 반합 뚜껑에 따라지는 노오란 그것은 액체라기 보다는 진득진득한 젤에 가까웠다. 입에 넣으면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에 저절로 고개가 휘둘려진다. 목 안에 감기는 그 황홀한 느낌. 아…세상에 이런 막걸리가 있을 수 있다니…. 일년 내내 이어지는 삽질도, 곡괭이질도, 진지보수작업도, 삽사단도 모두가 좋았다. 그 막걸리만 마실 수 있다면….
군대를 제대하고 한참이 지난 후 서울에서 그 막걸리를 만났다. 포천 막걸리가 서울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나선 이후였을 게다. 목이 메였다.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그 환상의 맛을 서울에서 얼마든지 만나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목이 메였다. 그 옛날 그 환상의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실망감에…. 그랬다. 세상은 달라져 있었고, 나의 입맛도, 또 그 포천막걸리 맛도 달라져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주로 마셔대던 소주와 맥주, 그리고 양주에서 벗어나 다시 막걸리를 찾게 된 건 등산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사실 평소에는 소주만 마시던 사람들도 등산을 하면 자연스레 막걸 리가 당긴다. 출출함 때문이다. 갈증 때문이다. 이미 막걸리 맛에 길들여져 있는 화자의 경우 두 말 하면 잔소리일 터. 그래서 마셨다. 그리고 포천막걸리가 채워주지 못한 부분을 채워주는 또 하나의 경이가 탄생해 있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서울막걸리다. 서울장수막걸리다. 마시면 오랫동안 장수를 누릴 수 있다는 그 막걸리…. 다른 술들과는 달리 절대 광고를 하지 않는 그 막걸리…. 광고라고 해봤자 탤런트 윤문식 사진이 실린 채 슈퍼마켓 유리문에 달랑 붙어 있는 전단지가 전부인 그 막걸리…. 오히려 지나친 묘사로 이 기사 같지 않은 기사가 노골적으로 광고를 해주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그 막걸리…. 쌀이 97%인 그 막걸리…. 마신 다음날 아침이면 황금색 똥이 길다란 모양으로 기분좋게 변기에 드러누워 있는 모양을 보며 미소짓게 해주는 그 막걸리….
왜 숭인동 길 레스토랑 예기를 하다가 막걸리 얘기만 온통 들쑤셔 놓느냐고?? 음…그건 아쉽게도 숭인동 길 레스토랑엔 그 막걸리가 없기 때문이다. <계속> 정서룡 기자 slj@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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