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조사 결과 93%가 "10만원 이상 주어야" 응답

한 해 두 번 찾아오는 명절 때만 되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귀성길 대란속에서 운전을 해야 하는 사람,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일 때문에 친지들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 선물을 준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게 되는 사람…수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제각각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명절증후군’이라는 단어까지 만들어낸 여성들의 스트레스만큼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롯데백화점은 11일 홈페이지(www.lotteshopping.com)를 방문한 네티즌 3964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공개했다. 지난 12월 30일에서 올해 1월 8일까지 열흘 간 남성 네티즌 1264명과 여성 27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질문은 설 음식과 친척 및 손님 맞이로 하루를 보내는 주부에게 일당을 주는 것이 적당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1228명(31.0%)이 하루 10만원으로 응답했다고 한다. 15만원은 돼야 한다는 응답자가 873명(22.0%)으로 뒤를 이었고 20만원이 797명(20.1%), 30만원 이상이 799명(20.2%)으로 10만원이 넘는다고 답한 응답자가 3697명(93.3%)에 달했다.

10만원 이상으로 평가한 사람이 93%인 것도 놀랍지만 최소한 20만원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40.3%에 달한다는 것도 흥미롭다. 건설 회사 일용직 근로자가 하루에 받는 임금이 평균 5~6만원 가량인 것과 비교했을 때 명절 때 고생하는 주부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평가가 상당히 높음을 알 수 있다. 응답자의 성비가 1:2 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사회 전반의 인식이 예전과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명절증후군을 경험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2923명(73.7%)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30대 이상에서는 95.4%인 1922명이 명절증후군 증상을 호소했다. 미혼자들이 많은 24세 이하 응답자 중에도 52%인 388명이 여파가 있다고 밝혔다.

30대 이상 가운데 여성의 경우 대부분이 주부라고 가정한다면 명절증후군을 호소하는 것이 당연한 결과로 보여진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오성은(여. 주부. 38세)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씨에겐 두명의 여동생이 있다. 오씨와 마찬가지로 둘 다 주부인데 시댁과는 분가해 살고 있다. 하지만 명절 때면 시댁에 가는 게 당연지사. 오씨는 "명절 때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죠"라고 혀를 내두른다. 그래도 동생들은 시댁이 서울이라서 다행이지만 오씨는 시부모가 지방에 살고 있어 고생이 더욱 심한 경우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먼 길을 가는 것만 해도 고역인데 시댁에 도착하면 몸을 풀 새도 없이 주방으로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오씨는 "저만 하는 게 아니다 생각하고 견디죠. 하지만 힘든 건 사실이에요. 명절을 지내고 서울 집에 올라오면 며칠간 꼼짝달싹을 못할 정도로 몸이 아픈 경우도 많아요. 두 동생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에요"라고 하소연한다.

남편들은 명절이 되면 친지들과 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즐거울테지만 아내들은 그 술상을 봐야 하고 설거지며 청소까지 다 해야 하기 때문에 쉴 겨를이 없다. 우리나라 여성 대부분이 겪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일가친척이 모이는 설이지만 가장 싫은 게 뭐냐는 질문에 "여자에게 하루 종일 음식 시중을 요구하는 것-779명(19.6%)"이란 대답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음식을 만들어 준 것만으로 감사하고 음식을 나르고 차리는 일은 남성들이 하는 집의 이야기는 아직도 희소성을 갖는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명절이라고 해서 모두가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명절 때마다 제각각의 사연으로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가 제각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단지 주부라는 이유로 발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 나라의 반은 여성이고 그 여성 가운데 30대 이상은 거의 주부이다. 그런데 30대 이상의 95%가 명절증후군을 호소한다는 것은  이 나라 대부분의 주부가 명절을 괴로워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다같이 즐거워해야 할 명절이 홀로 고생하는 주부들의 희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남편들은 술 마시고 고스톱을 치고, 자녀들은 밥만 먹고 밖으로 나가는 낯익은 모습. 앞으로는 남편들, 자녀들 할 것 없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음식 준비를 하고 나누어 먹는 날이 하루 빨리 오는 것이 우리네 엄마, 누나, 언니들의 소망일 것이다. 강수지 기자 nabiya@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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