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은 기자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수락산→불암산편

이번엔 어디로 가볼까. 아직 꽃은 피지 않았는데…. 그래도 보이는 진달래 꽃망울들이 지난주에 비해 한결 물이 더 올라있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언제나 그 토할 정도의 핏빛을 온 세상에 내비치려는지….

고민하다가 결정했다. 그래 수락산에서 불암산까지 종주를 해보자.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경험에 비춰보았을 때 코스만 잘 잡으면 넉넉하게 5시간 정도면 종주가 가능하다. 수락산에서 먼저 출발할 수도 있고 불암산에서 수락산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경험 많은` 기자는 불암산에서 수락산으로 넘어가는 종주 코스를 추천한다. 수락산에서 불암산으로 가는 코스는 상당히 힘이 들다. 수락산 막바지에 있는 군부대에서 불암산으로 올라가는 첫 코스가 아주 힘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자는 이 코스를 선택했다. 특히 아직까지 독자님들에게 수락산은 단 한번도 소개해드리질 못했기 때문이다. 양해를 구한다면 여기 실린 사진들은 자료 사진들이다. 급작스럽게 오른 산행길에 카메라가 말썽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다음 번에 좀 더 생생한 사진 보여드릴 것을 약속하면서….

수락산은 638m 높이의 산으로 서울 노원구, 경기 의정부시, 남양주시에 걸쳐져 있다. 최근에는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학생들의 소풍지로 많이 이용될 만큼 대중화된 산이다. 산 전체가 화강암과 모래로 이루어져 얼핏 보기에는 삭막하고 볼품 없이 보일 수도 있으나 한발 안으로 들어서면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 산세가 웅장하고 곳곳에 다양한 볼거리를 지니고 있다.

암반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수락산의 뛰어난 절경을 수락 8경으로 부르고 있다. 이 산의 상봉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금류폭, 백운동 은류폭, 청학동 옥류폭포와 선인봉 영락대, 향로봉의 청풍, 미륵봉의 백운과 칠성보의 기암 등으로 이루어진 수락 8경은 보는 이들의 감탄을 불러낸다. 이밖에도 신라때의 흥국사, 이조때의 내원암이 있고, 수락산 유원지와 벽운동 유원지, 서계 박세당의 정자인 6각형의 궤산정이 있어 기품을 더한다.

이렇듯 볼거리와 유원지가 두루 갖추어진 수락산은 주말이면 사람들로 붐빈다. 불암산과 연계산행지로 꼽히는데 철쭉이 장관을 이루는 봄이 특히 아름답다.

기자는 당고개 역에서 주능선을 거쳐 정상인 향로봉 인근 삼거리에서 우회전, 동막골 쪽으로 내려가다가 불암산 코스로 접어드는 길을 선택했다.

당고개 역에서 내리면 선택할 수 있는 몇 개의 등산로가 있다. 기자는 역 맨 뒷 부분 쪽에 있는 공원을 거쳐 오르는 등산로를 골랐다. 수락산에서 남쪽으로 맨 끝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바로 숨막히는 계단길이 이어진다. 양지 바른 곳이어서 인지 눈들은 이미 다 녹아 있다. 봄 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진다. 간혹 산행에 나선 이들이 눈에 뜨인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등산에 나선 가족들도 흔치 않게 보인다. 날씨가 따뜻해진 덕분이다. 기자는 홀홀 단신이다. 등산 배낭 속에 도시락을 챙긴 채다. 5시간 가까이 산을 타려면 배를 채울 음식 거리는 필수다. 배낭이 묵직하다.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 중간에서 신발끈을 조여맨다. 오랜만의 장거리 산행이라 마음을 다잡기 위함이다.

숨이 차오른다. 계단길과 급경사길을 번갈아 30여분 오르다 보면 시야가 트인다. 수락산 주능선이다. 능선길은 편하다.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겹치며 나타난다. 수락산역 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주능선길은 마사토가 주를 이룬다. 메마른 봄철 등엔 먼지가 많이 난다. 다행히도 오늘은 물기가 있다. 강아지를 데려온 등산객들도 보인다. 절로 인상이 써진다. 운동을 시키기 위함이겠지만, 산행길에 여간 신경이 가는 게 아니다. 게다가 묶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놀라 흠칫 거린다. 제발 자제 좀 해주었으면…. 

약 20여분 발길을 재촉하다 보면 다시 철로 된 로프가 매어진 급경사와 만난다. 힘들게 힘들게 10분여를 더 오르면 마침내 정상 부근의 삼거리 길이다. 직진하면 탱크바위를 지나 정상을 오를 수 있다. 불암산을 가기 위해선 우회전. 동막골 방향이다. 동막골은 사패산-불암산을 잇는 터널 공사로 경관이 많이 망가진 상태다. 삼거리에서 20여분 내려가다보면 동막골과 갈라지는 또다른 삼거리와 조우한다. 좌회전. 10여분 더 걸으면 갑자기 철조망으로 된 울타리가 나온다. 첫 번째 울타리는 그대로 통과한다. 두 번째 울타리가 나오면 우회전. 울타리 안은 군부대다. 울타리를 오른쪽으로 낀 채 좁은 길을 따라 걷는다. 산책로 같은 길이 꼬불꼬불 이어진다. 따스한 햇살이 비친다. 기분이 좋다. 양지 바른 곳에 새싹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내밀고 있다. 봄이 왔다.


#철모바위

울타리가 끝나는 부분에 또다시 세갈래 길이 나온다. 좌회전한다. 왼쪽으로 군부대를 끼고 5분 정도 걷다보면 도로위 다리와 만난다. 수락산이 끝나는 지점이다. 다리를 건너면 불암산이 시작된다. 총 2시간 20분 소요. 다리 아래로 차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딴세상 같다.


#수락산 정상 향로봉

불암산으로 접어든다. 마음의 각오를 해야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급경사로. 처음 오를 땐 사정을 몰라 고생을 많이 했다. 아예 포기하고 천천히 쉬엄쉬엄 오르는 게 상책이다. 이전에는 이 코스가 잘 알려지지 않아 등산객들이 많이 없었는데, 언젠가부터는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코스를 탄다. 대부분 산 꽤나 타봤다는 사람들이다. 30여분 호흡을 조절해가며 느릿느릿 발걸음을 떼다보니 어느새 능선이 나온다. 그렇다고 끝은 아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기만 하다. 능선에서 좌회전. 오솔길 같은 등산로가 이어진다.


#불암산 정상


10여분을 더 가면 왼쪽으로 마당바위 같은(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다) 봉우리가 나타난다. 봉우리에 올라가면 넓은 바위가 있고 그 아래 남양주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마당바위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한다. 서늘한 바람이 불지만 견딜만 하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어서 등산객들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혼자 만의 여유다. 제육볶음 등을 반찬으로 해서 꿀맛 같은 만찬을 즐긴다. 다리가 묵직하다. 배가 부르니 피곤이 엄습한다. 눈꺼풀이 무겁다. 드러누워 잠이라도 한 숨 잤으면….
털고 일어났다. 다시 불암산 정상을 향해서 출발한다. 바람이 아까보다 심하게 분다. 털고 일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땀을 흘린 상태서 오랫동안 쉬다간 감기 걸리기 십상이다. 20여미터 진행하면 직진길과 좌회전길로 갈린다. 좌측 길을 택한다. 직진하면 갈 곳이 없다. 바위 위에 쳐 있는 줄을 잡고 조심조심 내려간다. 내려가자마자 우회전. 다시 오르막길이다. 사람들이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다. 군데군데 군인들이 파놓은 벙커들이 보인다. 불암산은 6.25전쟁때 육사생도들과 주민들이 유격대를 조직해 활동했던 산이다. 꽤 많은 전승을 올린 것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마당바위에서 30여분을 오르니 정상 바로 아래 헬기장이 나온다. 주막이 있다. 막걸리 한 사발이 그립지만 참기로 한다. 정상 바로 아래 우회전 길을 택한다. 양지 바른 곳의 나무들에서 생명이 잉태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바람이 더욱 거세진다. 다시 겨울이 오려나보다. 산에 올라온 사람들이 몸을 잔뜩 움츠리고 걸음을 재촉한다. 15분여 가니 또다른 헬기장이다. 전에 소개해드린 적이 있다. 그리고 약수터 계곡 길을 따라 하산. 산 아래 남아미술관을 둘러싼 먹골배 농장에 생기가 돈다.
이제 저 앙상한 배나무에도 새싹이 피어나겠지…. 불암동 마을 골목길이 정겹기만 하다. 총 4시간 40분 소요.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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