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일 새만금 방조제 중단 해상시위를 다녀와서

 
주민들이 방조제 끝물막이 전진공사 끝단에 배를 정박해 공사를 저지하고 있다.


월요일은 사제의 휴일입니다.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러 산에도 가고 싶고, 좋은 사람들 만나 식사도 함께하고, 밀린 정도 나누고 싶어집니니다. 그러나 사제의 휴일은 봄맞이 여유마저 사치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선배신부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는데 새만금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해상시위를 들어간다는 전갈이었습니다. 어제는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자들의 연대를 꿈꾸는 밀알사제모임이 광주에서 있는 날이고, 1일 3회씩 2리터의 물을 배에 투석하는 큰누님이 신장이식수술을 받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요즈음은 새만금 방조제와 갯벌, 전북을 살리기 위한 단식을 끝내고 회복식을 하고 있는 터라 몸은 오늘만은 쉬라며 발목을 잡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제의 몸은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셔서 몸이 없으신데, 내 몸을 통해 무엇을 하기를 원하실까? 어디로 이끌고 가실까?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 하루 푹 쉬라는 몸의 소리에 따르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수 없었습니다. 사제의 몸이란 언제 어디서고, 어느 때 어느 순간이고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만선의 꿈은 사라지고

오후 3시까지 계화 양지포구에 가기 위해 서둘러 된장국을 끓여 보온병에 담았습니다. 포구로서의 생명이 며칠 남지 않은 그곳에는 목선과 선외기가 정박해 있었습니다. 배들의 처지를 잘 알고 있다는 듯 빈 배들을 쓰다듬고 지나가는 바람이 쓸쓸히 울고 있었습니다. 선박도 닻도 버려진 채 녹슬어 갈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나 봅니다. 

물때가 맞지 않아 3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6시에 다시 포구로 나갔습니다. 갯벌에 빠져 있던 목선들이 파도에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만선의 꿈을 영원히 잃고 말 목선을 타고 무한한 생명들이 넘실거리는 바다로 나갔습니다. 수평선만 보이는 바다, 빈 배에는 만선의 꿈 대신 ‘살려달라는 절규’가 만선을 이루고 있음을 어민들과 선장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바다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절규하는 것 같았습니다.

“새만금 바다와 갯벌을 막아서 농지를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여! 여기 바다에 한번 나와서 보아라. 바다와 갯벌을 죽이는 것이 명석한 뇌를 지닌 인간이 할 짓인지, 그리고 생각해 보아라. 당신들의 귀여운 손자들과 그 미래 세대를 위한 일인지를.....,”

저녁 7시쯤, 목선이 도착한 새만금 3호 방조제에서는 한바탕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 할머니들까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어쩌자고 저 할머니들까지 나서 해상 싸움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갈쿠리 하나로 아들과 손자들을 대학까지 가르치고, 그 갈쿠리 하나면 노년도 보장되는 갯벌. 순간, 목숨과도 같은 갯벌이었기에 그 죽음의 갯벌 앞에서 저항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분들에게 갯벌은 어떤 곳인가? 갯벌이 조상대대로 먹여 살렸고, 내 부모와 내 자식은 물론 손자들까기도 먹여 살리지 않았는가. 이제 그 갯벌의 숨통이 막힐 날이 며칠 남지 않았기에 목숨을 걸고 절규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한바탕 전쟁을 치룬 주민들은 어제처럼 집을 향해 통통거리며 갑니다. 기우는 해도 뿌연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목선들은 방조제 옆에서 닻을 내렸습니다. 우리 함께 이 바다를 지키자는 결의를 다지듯, 어깨동무를 하며 밧줄로 서로의 배를 엮습니다. 정박한 목선에도 어둠이 깔리기 시작합니다. 밥 짓는 목선에 잔잔히 파도가 밀려왔다가 포구의 마을까지 출렁이며 사라집니다. 김치찌개에 밥 한술 말아서 소주잔을 돌리며 저녁식사를 합니다. 죽 대신 맨밥을 꼭꼭 씹어서 먹었습니다.

한 평도 되지 않는 선장실에 4명이 모로 누웠습니다. LPG 가스레인지에 연탄보일러 뚜껑을 올린 보일러가 솔솔 끓는 안방 같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퍼즐처럼 끼워진 몸의 잠자리가 비좁아서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서치라이트를 켠 채 굴삭기와 덤프트럭들이 갯벌의 숨통을 틀어막고 있는 까닭이었습니다. 우당탕탕탕... 콰다다당... 그들은 밤새도록 잠든 바다를 천둥번개로 깨우며 광기어린 테러를 자행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연기 안 나는 공장

일출을 보려 했지만 해는 차마 새만금의 참혹함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지 구름 속에 꼭꼭 숨어 있었습니다. 8시경 아침밥과 찬거리를 챙겨온 목선 한 척이 도착했습니다. 수건을 둘러쓴 아낙들과 할머니들을 태운 배들이 속속 모여들며 진을 치기 시작합니다.

“갈쿠리 하나로 평생을 살아온 우리들 밥줄을 끊어도 유분수지, 난 못 나가. 갯벌과 함께 죽었으면 죽었지. 이 갯벌은 손자였던 내 할머니를 먹여 살렸고 내 손자들까지도 먹여 살릴 참인디, 이곳은 연기 안 나는 공장인디 참말로 어쩐디야.”

하지만 한 할머니의 분노에도 아랑곳 해수유통만이 생계보장이라는 사람들과 그저 생계보장만을 요구하는 사람들과의 갈등은 다시 한번 주민들의 분통을 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해상시위가 닻을 올렸고 목선을 주위로 선외기들이 바다를 가르며 해양경찰과 대치를 합니다. 필사적으로 막는 해경에 밀린 작은 보트들은 방조제까지는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1시간 남짓 시위를 하고 대열을 정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후 5시가 되자 시작된 방조제 점거농성은 작은 보트들이 먼저 일제히 방조제로 다가갔습니다. 할머니들까지 방조제 위에서 전경과 용역들과 몸싸움을 하고 있는데도 덤프트럭들이 유유히 바위들을 실어서 콰다당 우당탕 바다를 매우고 있습니다. 단 몇 분도 멈추지 않고 자기 밥줄을 위해 남의 밥줄을 끊는 그들은 인정 많은 한국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냉혹한 자들이었습니다. 굴삭기, 덤프트럭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인간이 저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돈과 개발에 미치면 저렇게 잔인할 수 있구나’하는 슬픔과 분노, 한숨이 덤프트럭에 실린 바위처럼 바다로 떨어져 수장되고 있었습니다. 

개발독재에 미친 사람들

끓어오르는 엔진의 땀을 닦을 시간도 없이 굴삭기와 덤프트럭이 우당탕 꽈다당 거리는 방조제를 뒤로 하고 포구에 돌아왔습니다. 서로 수고했다며 포옹을 하는데 한 시민단체 사무국장이 눈물을 글썽거립니다. 포구에 내린 저에게도 그 눈물이 전염된 것일까요? 뒤돌아서서 갯벌의 바다를 바라보는데 울컥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저렇게 큰 바다와 갯벌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죽어갈까’ 연민과 설움이 각혈하듯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바다에 검은 이불을 덮어주고 있는 어둠 속에서 목을 놓아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느님, 하느님은 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방조제를 강행하는 청와대와 대법원, 도지사와 정치인들, 개발에 미친 사람들의 환상 속에 계십니까?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저지르는 죄악에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말 못하고 죽어가야 하는 바다의 저 생명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하느님께 물었으나 하느님은 말씀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혼자 그렇게 서럽게 울었습니다.

새만금을 살리기 위해 지금 함께 하지 않으면 평생을 후회할 것 같아 짐을 싸들고 내려온 지 한 달 된 서울 자매님의 눈망울도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습니다. 해상시위에 참여했던 기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 선배신부님과 형제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벽을 향해서라도 좋으니 고함을 내지르지 않고는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았습니다.

“개발독재에 미친 사람들아!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 저 갯벌에서 꼼지락거리는 무수한 생명들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단 말이냐!”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다는 내 어머니의 가슴이자 품이요 나를 잉태하는 천고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참소리=최종수 신부기자


▲주민들이 배 위에서 공사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현대건설 공사진행측은 주민들을 몰아내고 늦은 시각에도 공사를 진행했다.


▲비좁은 공간에서 4명이 잠을 잤던 곳.


▲해상시위를 벌이고 있는 주민들이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방조제에 상륙했다.


▲주민들과 경찰병력의 충돌 과정에서도 방조제 전진 공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갈매기...다시는 이 바다를 날수 없을거야. 지금 맘껏 날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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