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어문드러진 물 가에 피어난 노오란 봄의 향연

토요일입니다. 직장이 쉬는 날입니다. 등산가방을 매고 집을 나섭니다. 아내가 오리온 초코파이 2개와 100원짜리 치즈소시지 2개, 롯데 엄마손 파이 2개를 가방에 넣어줍니다. 문을 닫은 사무실에서 볼 일이 있습니다. 일이 끝나면 산에 오를 계획이었습니다. 항상 하던 대로 걷습니다. 하늘이 우중충합니다. 비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 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오더라도 조금만 왔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조금씩 온다면 우산을 쓰고서라도 산에 오를 계획입니다.

코가 매캐해집니다. 황사가 목 안에 감겨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걷습니다. 경동시장을 지키는 늙으신 우리의 어머님, 아버님들은 오늘도 분주하십니다. 당신들에게 우중충한 날씨는, 황사는, 내리는 비는 장애물이 되지 못합니다. 당신들의 온 몸은 황사에, 우중충한 날씨에, 내리는 비에, 내맡기시더라도 당신들의 생계를 연명해줄 봄나물은 그들에게 내맡기지 않으십니다. 닦고 닦고 또 닦습니다. 토요일이라 찾는 이들도 많을 터이니, 늦은 밤 손주들 과자라도 사들고 집에 들어가려면 열심히 팔아야 합니다.

경동시장을 지나자 거리는 한가해집니다. 부는 봄바람에 옷깃을 세운 젊은 남녀가 용두교를 건너 어디론지 총총히 사라집니다. 용두 사거리를 지나서 100여미터, 그곳에는 성북천이 흐릅니다. 썩을대로 썩어버린 물은 흐르는 것조차 거부합니다. 비라도 온다면, 이 썩어빠진 물은 이명박 시장을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어줄 수도 있는 그 역사적인 현장인 청계천으로 그대로 흘러 들어가겠지요. 지난해에도 몇 차례 이미 목격을 했던 터입니다. 하지만 복원된 청계천에 흐르는 세찬 수돗물결에 휩쓸려 차마 세상에 드러나진 않았습니다. 아니 `대역사`에 환장한 사람들에겐 지극히 미미한, 아무런 문제도 아닌 것이었습니다. 청계천은 대권을 향한 이명박 시장의 그것처럼 끊임없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거든요.

그런데 오늘 그 썩어빠진 성북천에서 노오란 색의 향연을 보았습니다. 바로 지천으로 피어난 개나리꽃이었습니다. 약 100여미터는 족히 될 정도의 개천변을 노오란 색으로 장식하고 있는 봄의 잔치. 바로 아래는 악취 덩어리의 썩은 물이 고여 있는 개천. 오묘하더군요. 저렇듯 썩은 개천가에서도 그렇게 아름다운 꽃이 무리지어 필 수 있다는 게….



혹 시위라도 하는 건 아닐까요? 만물의 순리를 거스르려는 인간들에 대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무실 근처에 다다르자 빗방울이 떨어지는 군요. 빗방울이 굵습니다. 책상에 앉아 일을 보다 창밖을 한번씩 살피는데 비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황사비입니다. 아까의 그 개나리꽃 위에도 이 황사비가 내려앉겠죠? 은근히 염려가 되지만 한편으론 괜찮을 것 같기도 합니다. 썩어 문드러진 개천가에서도 보란듯 피어난 꽃인데요.

등산 가방에서 아내가 싸 준 오리온 초코파이 `정`을 꺼냅니다. 한 개를 먹습니다. 롯데 엄마손 파이도 한 개를 먹습니다.
오늘 산행은 포기해야 겠군요. 대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다시 한 번 그 개나리꽃과 만나야 겠습니다. 그리고 허름한 주막집에 들어가서 막걸리나 한 사발 했으면 좋겠군요. 어디 같이 할 사람 없나요?? 정서룡 기자 sljung99@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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