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러져가는 재래시장을 찾아서-동묘 벼룩시장

날씨가 따뜻합니다. 청계천변의 버들강아지들이 뾰족이 세상속으로 고개를 내밉니다. 지류인 성북천엔 개나리꽃이 눈이 부실 정도로 피었습니다. 한 겨울 바깥 나들이를 자제했던 서울시민들이 하나둘 청계천변으로 봄맞이를 나옵니다. 눈에 띄게 수효가 늘었습니다. 그들은 걷기도 하고, 앉아서 김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청둥오리 부부도 일광욕을 즐깁니다. 청계7-8가 정도되는 곳엔 엄청난 규모의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롯데건설에서 짓는 롯데캐슬입니다. 정말 캐슬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대규모입니다. 고공 크레인의 숫자만 봐도 공사 규모를 짐작할 만 합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불과 50여미터 떨어진 곳에 오늘의 주인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복원된 청계천에서 쫓겨난 일부 벼룩이들이 모여 만들어진 벼룩시장입니다. 실은 붙여진 시장 이름도 없습니다. 청계천변에서 벼룩시장을 형성하며 수십년간 삶을 의지해왔던 상인들중 많은 이들은 동대문운동장에 형성된 동대문벼룩시장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장사가 이전 같지 않아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이미 <위클리서울>에서도 그곳을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조차 둥지를 틀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 모여든 상인들입니다. 기자는 동묘벼룩시장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동묘를 아십니까??

처음은 단촐했습니다. 간신히 몇몇의 상인들만이 가져온 짐보따리를 풀고 장사를 했습니다. 찾는 이들도 당연히 많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동묘를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흩어져 벼룩이들을 풀어놓았습니다. 간혹 지나가던 행인들에 눈요깃거리 정도를 제공하면서….



동묘는 사실 묘가 아닙니다. 서울에 사는 분들도 모르기 쉽상인데요, 잠깐 소개해봅니다. 동묘(東廟)는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관우의 위폐를 `모신` 곳입니다. 왜 다른 나라의 장수 위폐를 우리나라 수도의 한복판에 모시냐구요?? 그건 저도 의문입니다. 동묘 안에 있는 안내표지판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 왜적을 물리친 명나라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때 관우 혼령이 전장에 나타나 왜적을 물리치는데 일조를 했다는 군요. 당시 명나라 왕이 직접 관우의 위폐를 써서 조선에 보냈고 조정에서 이를 보존하기 위해 동묘를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죠. 굴욕의 역사를 보는 것 같아서요. 동묘 문제는 추후 취재를 통해 다시 한번 다루도록 하구요, 오늘은 원래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러던 어느날부터인가 상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수효가 불어나기 시작한 거죠. 그리고 일대의 가게들도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식당을 했던 곳이 고미술점으로 바뀌고, 전자제품을 팔았던 가게는 TV 대신 벼룩이들을 들여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동대문 벼룩시장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있는 제품중의 하나는 옷입니다. 어디서 가져오는 건지 모를 옷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행인들의 시선을 끕니다. 일부러 옷을 사러 오는 고정 단골까지 생겨났을 정도라고 하네요.

악어가죽 가방이 1만원

"자, 사세요. 자, 옷이 무조건 하나에 1000원!!"
이곳에선 이런 외침소리가 온종일 계속됩니다. 옷만 파는 상인들도 족히 7-8명은 되는 것 같아요. 이들은 "새 옷입니다. 새 옷!!"하고 외쳐대는 데 정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를 사려는 사람들에겐 새옷이건 헌옷이건은 중요한 게 아닌 모양입니다. 벌떼처럼 달려들어 저마다 취향에 맞는 옷을 고르느라 분주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손에 끌고 다니는 여행용 가방을 준비해와서 옷을 사가기도 할 정도입니다.



가방을 파는 곳도 있습니다. 소가죽으로 된 그럴싸한 모양의 가방이 2000원, 악어 가죽으로 만들어졌다는 제품이 기껏 1만원이니 정말 싸죠.



그리고 나머지는 대부분 기존 벼룩시장에서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고가구에서부터, 고미술품 그리고 청자, 백자 등도 나와있네요. 저마다 안내문이 붙어 있는데 읽어보니 `이거 믿어냐 하나 말아야 하나`입니다. 1700년 이상 됐다는 청자가 12만원 하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아래엔 `진품보증`이라는 글귀도 쓰여져 있네요. 진짜가 맞을까요?? 하지만 이를 의심하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설사 사실이 아니라도 이곳에선 용납이 됩니다. 왜냐구요?? 벼룩시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지 않으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일성 주석 동묘에 나타나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한 가게에서 팔고 있는 북한 제품들입니다. 북한 우표 모음집에서부터 화폐, 그리고 기타 등등의 것까지 다른 곳에선 구경조차 힘든 제품들이 행인들의 시선을 붙잡습니다. 100원짜리 지폐엔 김일성 주석의 사진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은행이란 글귀가 선명합니다. 이런 물건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 들어왔는지는 알 바 아닙니다.




그 외에도 많습니다. 시계를 파는 할아버지부터 성인용 비디오를 파는 젊은 여자, 카메라와 각종 액세서리를 파는 40대 중반의 남자, 사람 몸통 만한 굵기의 칡뿌리를 리어카 위에 올려놓고 칡즙을 짜서 파는 50대 남자까지…. 컴퓨터와 TV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있는 곳도 보이는 군요.



청계천변에서 시작된 벼룩이들의 행렬은 동묘 담장을 지나 동대문에서 신설동 로터리로 이어지는 대로변까지 계속됩니다.



그리고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있습니다. 바로 벼룩시장의 감초라고 할 수 있는 먹거리입니다. 시장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보니 다른 곳에 비해선 그리 많은 편은 아닌데요. 그래도 일대를 잘 둘러보면 소소하게 요기를 할만한 곳이 눈에 뜨입니다.



영양 오리알을 파는 포장마차도 보입니다. 물론 술을 파는 곳도 있습니다. 부추 부침개가 한 장에 1000원이군요. 벼룩시장 나들이를 나왔던 몇몇의 중년 남자분들이 파라솔 아래 놓여진 의자에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입니다.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몰리는 옷가게 주인에게 하루에 얼마나 매상을 올리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알아서 뭐해, 그냥 먹고 살만큼 벌어"라며 웃어넘깁니다.



이들에게 따뜻한 날씨는 은총입니다. 겨울엔 많지 않던 사람들이 날씨가 풀리면서 잔뜩 몰리고 있기 때문이죠. 삶의 또다른 현장입니다. 허리 펼 틈도 없이 분주한 그들의 머리 위로 롯데캐슬의 고공 크레인이 보입니다.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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