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이낙연의 '어머니에 관한 추억' 3회

<맛 없으면 먹지 말라-어머니의 가장 큰 상실>

어쩌다 들르는 서울 비원 앞 한식집. 광주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다가 서울에도 가게를 낸 곳입니다.

그 음식점의 가장 오래된 단골손님은 아마도 고건 전 국무총리일 것입니다. 고건 전총리는 30년전 전남지사로 광주에서 일하시던 시절부터 단골이었다고 합니다.

그 음식점 주인은 이미 할머니가 되셨습니다. 10여년 전에 들었던 그 주인의 한 마디 말씀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할 열정을 갖고 있어야 요리도 맛있게 한다. 남자를 사랑할 열정이 없어지면 음식도 맛이 없어진다. 나는 이제 주방에 들어가지 않는다. 내가 요리한 음식은 맛이 없어졌다. 주방에는 젊은 사람들을 들여보낸다.”

주인 할머니의 말씀이 과학적으로 맞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저의 얇은 과학 상식으로는, 여성이 나이 들면 미각이 둔화돼 음식 맛도 이상해지는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의 어머니가 그랬습니다. 어머니께서 예순을 넘기시면서부터 음식이 짜졌습니다. 어떤 때는 쓴 맛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어머니께서도 곧 아시게 됐습니다. 한번은 저희들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만든 음식이 내가 먹어 봐도 맛이 이상하다. 너희들도 맛 없으면 먹지 마라.”

그 말씀을 하시는 순간의 어머니는 제가 본 어머니 얼굴 가운데서 가장 외로운 얼굴이셨습니다. 여성으로서 마지막 상실, 어머니로서 가장 큰 상실을 자백하신 셈이었을까요? 인생은 참 쓸쓸한 것이지요? <이낙연님은 민주당 국회의원입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