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정명은 기자의 북한산 샅샅이 훑기-칼바위→진달래능선→인수재 막걸리집

따뜻한 햇볕이 내리쬔다. 지난 15일 한가한 토요일 낮. 바람도 많이 불지 않는다. 등산가방을 매고 나선 행려의 마음을 하느님도 알아 채신 것일까. 온 세상이 은총이다. 황사도 없다. 산뜻하게 맑은 날씨…이런 날은 자알만 하면 인천 앞바다도 볼 수 있을 텐데.

걸었다. 어차피 지인과 북한산 대동문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도 많이 남았다. 오랜만에 한가로운 봄기운도 만끽하면서 걸었다.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북한산 어귀는 아마 정릉일게다. 지난번에도 한차례 걸었던 경험도 있다. 걷다가 촬영할 게 있으면 해야지….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다고 또 무리하진 말고, 왜냐 지금 기자에겐 휴식이 필요한 때이고, 지금은 말그대로 휴식시간이기에. 물론 독자님들을 위해 산행 기사는 써야겠지만….

쌩쌩 달리는 차들 때문에 코가 약간 매캐해지는 것 빼고는 기분 왕 상큼이다. 사방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개나리. 그 곁을 지나는 초미니스커트의 아가씨들 모습도 기분을 배가시키기에 충분할 지어다.

정릉 청수장 오르는 중간에 분식집에서 점심을 때운다. 비빔밥. 그리고 정릉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30분. 사무실에서 총 1시간 20분이 걸렸다. 여유있게 걷는다고 마음먹었는데, 이놈의 직업병이란 어쩔 수 없나보다. 지난번보다 오히려 40분 이상 빨리 도착했다.

사실 약속 시간 2시에 맞추기 위해선 약간 서둘 필요도 있었다. 정릉매표소에서 대동문까지 가려면 빠르게 1시간, 여유있게 1시간 30분은 잡아야 하기에…. 도심 속보다는 산 속의 여유가 한결 낫겠다는 생각도 들고.

마음속으로 그리고 온 오늘의 산행 코스는 정릉매표소-정릉2교-칼바위능선-산성주능선-대동문-진달래능선-인수재-4.19탑이다.

총 2시간 30분은 걸릴 터…. 물론 인수재에서 막걸리 몇 사발 걸치다보면 얼마나 더 걸릴지는 미지수다.
산에 들어서자 마자 눈길을 끄는 것은 사방에 지천으로 피어난 개나리꽃과 진달래꽃. 노란색과 진분홍색이 어우러져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다. 이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거기다 마른 낙엽을 뚫고 희미하게 올라와 피어나는 이름모를 야생화들까지…. 신발이 질퍽한 흙 속에 푹 빠지는 것도 모르고 사진 찍기에 열중이다. 날씨가 날씨라서인지, 이날 따라 커플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이들은 대부분 산행보다는 꽃구경에 더 관심이 팔려 있다. 하긴 없던 사랑도 이런 꽃무더기 속에서라면 자연스럽게 피어나고도 남을 만하다. 아이고 이런, 빨리 올라가서 지인 만나 막걸리나 마시자.


#정릉계곡. 하양과 분홍의 조화

정릉2교를 지나자마자 갈래길이 나온다. 좌회전하면 보국문. 직진한다. 칼바위능선 입구까지 약 600m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길에 들어서자 마자 등산객들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 길은 많이 다니는 길이 아니다. 계곡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경사가 급한 길을 올라야 한다. 조그마한 새끼 폭포들이 졸졸졸 소리를 내며 진달래꽃 사이로 떨어져 내린다. 그림 죽인다.


#이름모를 꽃들

매표소에서 1시간여를 오르면 만나는 능선 사거리. 왼쪽으로 오르면 칼바위 능선, 직진하면 아카데미하우스 하산길, 우회전하면 칼바위매표소 하산길이다. 좌회전. 참 여기서 칼바위 능선을 우회하는 길도 있다. 사거리에서 칼바위 능선쪽으로 약간 오르다보면 우측으로 길이 나있다. 칼바위 능선이 다소 위험하기 때문에 산행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필히 우회할 것.


#여길 올라야 한다.

사방에 칼 같은 바위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경사가 급해진다. 암벽 같은 거대한 바위들이 앞을 가로 막아선다. 천천히 천천히 숨을 고르며 오른다. 한 남자등산객이 묻는다. 이게 칼바위입니까?? 딱히 칼바위라고 따로 정해진 건 없는데…이 능선 전부가 칼바위 같다고 해서 칼바위능선이라고 부릅니다. 정확한 건 모르겠는데 그냥 아는 체 한다. 아마도 기자의 얘기가 맞을 것이다.

10여분 더 오르자 마침내 눈앞이 시원하게 뚫린다. 아슬아슬 칼바위 능선의 절정 지점이다. 평소보다 가까이 백운대와 만경대, 인수봉이 눈에 들어온다. 발 아래로는 천길 낭떠러지 같은 위태로운 전경이 이어진다. 오른쪽 아래로는 아카데미 하우스와 수유리 일대가 눈에 들어온다. 그 너머엔 수락산과 불암산, 아래로 용마산이 보인다. 오른쪽은 보현봉과 문수봉 방향이다.


#칼바위능선에서 바라본 수유리쪽 전경. 멀리 수락산과 불암산이 보인다.

가슴이 다 시원해진다. 아래를 쳐다보면 정신이 아찔아찔해진다. 여자와 함께 오른 한 젊은 등산객이 얘기한다. 맨날 아래로만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멋진 광경을 볼 수 없지, 이런 맛에 굳이 높은 절벽을 오르려고 하는 거야…. 말된다.
기자도 오랜만에 오른 터라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느낌이다. 조심조심 바위 사이를 기어내려온다. 앞장 섰던 어느 여인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런 데는 겨울에 어떻게 와. 그때 다른 곳으로 가길 잘했어. 남편인 듯한 남자에게 얘기한다.


#칼바위에서 바라본 산성주능선.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다. 아슬아슬...

5분여 더 걸으면 주능선길이다. 돌아본 칼바위능선이 위태로운 자태를 뽐내고 우뚝 솟아 있다. 스스로 대견스러워진다.
사진 한 장을 찍고 있는데 보국문 방향에서 낯익은 얼굴이 등장한다. 대동문에서 만나기로 한 지인과 일행이다. 오랜만에 만나보는 얼굴이 반갑다. 새얼굴과도 인사한다. 5분여 더 걸으면 대동문. 앞 광장은 인산인해다. 한 잔 해야지…. 지인이 등산객들 사이에 간신히 자리를 깔고 가방에서 술과 음식들을 주섬주섬 꺼내놓는다. 야…이거 산위에서 오랜만에 먹어보는 술이네.

그래도 꿀맛이다. 단체로 온 등산객들이 기자의 직업을 알아챘는지 자꾸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거절하지 않고 전부 찍어준다. 기분이 좋은 탓이다.

다시 하산. 은은한 진달래꽃과 막걸리 향내가 풍기는 그곳을 향하여…. 15분여 걸으면 진달래능선이다. 능선 전체가 진분홍색 물감으로 도배를 한 듯하다. 지금이 딱 적기다. 북한산 어디에서도, 아니 다른 산에서도 이 정도로 지천인 진달래꽃은 구경하기 힘들 게다. 능선 등산로 어디를 가도 진달래…진달래…진달래.


#진달래 능선의 진달래 사태. 실제는 사진보다 훨씬 더 많이 피어있다.


#진달래능선에서 본 북한산 정상. 맨 오른쪽이 인수봉이다.

어느 여인네의 입에서 봄노래가 흘러나온다. 얼굴은 온통 진분홍으로 물들었다. 지인과 동행의 입에선 연신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능선이 끝나는 무렵 백련사 가는 갈래길이 나오고 지나쳐 3-4m를 더 걸으면 다시 갈래길이 나온다. 직진하면 우이동, 우회전하면 보광사 가는 길이다. 막걸리향을 맡으려면 우회전해야 한다. 그곳에서 20여분 더 걸어내려가다 갈래길에서 보광사 쪽을 택하지 말고 4.19탑 길로 들어서 5분여 더 걸으면 오늘의 최종목적지가 나온다. 벌써 시끌시끌 막걸리 타령이 들리기 시작한다. 인수재다.
음, 바로 이거야. 직접 만든 두부와 직접 만든 막걸리, 그리고 산속에서 키우는 야채가 어우러진 내장볶음, 갈매기살 등을 판다.


#산속에 위치한 막걸리집. 인수재다.

오래전 이곳으로 들어온 할머니가 등산객들을 상대로 밀주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게 `인수재`의 발단이다. 아주 오래된 초막같은 집에 한문으로 쓰여진 간판이 운치 있게 걸려 있다. 이 집의 형님(기자는 그렇게 부른다) 투박하면서도 사람좋다. 수십년간 객지를 떠돌다가 몇 년 전 어머니를 돕기 위해 다시 이곳으로 들어왔단다.
누룩 냄새 풀풀 나는 막걸리를 몇 사발을 마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 산에 왜 오르는지 알어?? 땀 빼고 다시 수분 채워 넣기 위해서 오르는 게야. 지인의 얘기다. 그런 지인과 이날 4차까지 수분 제대로 보충했다.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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