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이낙연의 어머니에 관한 추억

저는 중학교부터 광주로 진학했습니다. 보통 2주일에 한번 꼴로 시골집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용돈과 먹을 것을 받아 광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나이보다 작고 어렸습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한 학급에 60명씩 배치됐습니다. 저희들의 번호는 키가 작은 순서대로 붙여졌습니다. 제 번호가 중1 때는 29번이었는데 갈수록 낮아져 고1 고2 때는 3번, 고 3 때는 16번이었습니다(지금은 177cm). 중 고등학교 시절에 제 키가 작았던 것은 싼 하숙집의 볼품없는 음식 때문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좋습니다.

중1 때 저는 시골집에 갔다가 광주로 돌아갈 때면 늘 울었습니다. 아버지께 들키면 야단을 맞으니까 아버지가 보시지 않을 때만 울었습니다.

제가 시골집을 떠날 때마다 아버지 몰래 운다는 것을 어머니는 눈치 채셨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저에게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광주 가기 싫으면 가지 마라. 내가 자전거 사줄게 법성(시골집에서 5km 떨어진 면사무소 소재지)으로 학교 가거라.”

저는 광주로 갈 때마다 울었지만, 그렇다고 어머니의 권유를 듣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무서웠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광주 진학을 포기하기도 싫었습니다. 어쨌든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민주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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