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용감한 공주와 불암산 암벽을 기어오르다!!
너무도 용감한 공주와 불암산 암벽을 기어오르다!!
  • 승인 2006.05.1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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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정명은 기자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불암산편

"아빠, 일어나!!"
30여분은 깨웠나 보다. 얼굴에 심통이 잔뜩 들어가 있다. 어젯밤 약속했다. 내일은 같이 산에 가자. 우리 공주 왠 일로 선뜻 대답한다. 응, 그래!! 참 살다보면 별스런 일도 다 있다. 그렇게 산에 다니는 걸 싫어하는 공주가….

일어났다. 공주는 벌써 일어나 라면까지 끓여 먹은 모양이다. 항상 일요일 아침이면 온 가족이 라면 파티를 연다. 기자가 직접 끓이는 날이 많은데 어젯밤 마신 술 덕분에 수고를 덜었다. 부랴부랴 준비한다.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날씨 쥑인다. 아내는 아직 취침중이다. 일요일만의 특혜다.

도시락 싸가야지…. 그렇다. 어젯밤 약속했다. 기자가 준비해야 한다. 아내를 깨울 생각은 없다. 밥통을 열어보니 밥이 없다. 공주가 라면에 말아먹었다고 자수해온다. 물에 불린 쌀이 그릇에 담겨 있다. 아내의 배려다. 저거면 되겠군….

냄비를 꺼낸다. 쌀을 헹군 다음 손바닥을 대고 물 조정을 한다. 오랜만의 일이다. "왜 전기밥솥에 안해??" 공주 묻는다. "그냥 이게 편해." 사실은 전기밥솥 사용법을 모른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게 밥 맛도 더 좋다.

가스렌지에 쌀냄비를 올려놓고 불을 켠다. 그리고 김치를 볶는다. 참치 통조림을 넣는다. 계란 두 개를 꺼낸다. 갖은 야채를 썰어넣고 계란말이를 한다. 공주가 좋아하는 반찬이다. 김치를 비롯한 다른 몇몇의 반찬도 도시락에 담는다.

공주가 옷을 갈아 입는 사이 씻는다. 나와 보니 밥이 끓어 넘치고 있다. 공주가 불을 줄여놓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뜸을 들여도 될 성 싶다. 밥 익는 냄새가 노릿노릿 온 집안에 퍼진다. 배가 고파온다. 그러고 보니 식전이다.

대충 준비를 다 마친 다음 밥을 퍼서 도시락에 담는다. 일부는 즉석에서 국물에 말아 배를 채운다. 아내가 일어난다. 과일과 오이를 싸준다.

집을 나선다. 콧노래 흥얼거려 진다. 공주의 입에서 오랜만에 휘파람 소리가 나온다. "어디로 갈거야??" "음, 어디로 가지??" 사실 뚜렷한 행선지도 정하지 못한 상태다. 잠깐 생각 끝에 불암산으로 결정한다. 가깝기 때문이다. 가는 교통 편도 좋다. 버스 한 번이면 간다.

집 근처 정류장에서 불암동에 가는 202번 버스를 탄다. 이 버스는 불암동에서 후암동까지 왕래한다. 서울역과 청계천변, 용두동, 제기동, 청량리, 중화동, 태릉을 거친다. 참고하시길….


#불암동 먹골배밭 사이로 불암산 정상이...

창밖으로 녹음이 우거진다. 꽃씨가 날린다. 공주 마치 눈 같다며 신기해한다. 물론 처음 보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런데 볼 때마다 신기한 모양이다. 사실 기자도 그렇다.

30여분 지나자 태릉 먹골배밭들이 차창 밖으로 펼쳐진다. 배밭을 끼고 `허참내 갈비촌` 같은 갈비집들이 즐비하다. `허참내 갈비촌`은 방송인 허참이 운영하는 집이다. 문을 연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장사가 잘된다. 잎이 자라기 시작한 배나무 아래에서 갈비를 먹는다. 맛있어 보인다.


#연초록으로 물드는 불암산.

202번 종점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불암산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날씨 진짜 좋다. 공주도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다. "우리 맨날 올라가는 코스로 갈거지??" "아니…불암사 쪽으로 갈건데." "그래??"

공주와는 이미 수십차례 불암산을 올랐던 터다. 그래서 공주도 잘 안다. 공주가 얘기하는 코스는 202번 버스 종점 인근 주유소 옆 길을 통해 남아미술관-군인 유격장을 거치는 코스다. 한적하고 좋다. 하지만 기자가 오늘 정한 예상 코스는 불암동 중앙을 거쳐, 불암사-호랑이굴-정상-헬기장-능선-유격장-불암동이다. 공주에게 얘기했더니 큰 문제 없다는 표정이다. 물론 조건은 있다. 일찍 내려와야 한다는 것. 오후 5시45분에 시작하는 모방송사 프로그램을 봐야 한다는 게 이유다. 공주, 그 프로그램 광팬이다. 

불암사까지는 시멘트 길이다. 공주 투덜댄다. 공주는 등산할 때 시멘트 길 걷는 걸 싫어한다. 차들이 굉음을 내면서 오르막길을 오른다. 매연이 뿜어져 나온다. 기자도 인상이 찌푸려진다. 산에 올 때 만이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좋으련만….


#불암사.

불암사가 붐빈다. 부처님 오신 날이 이틀 전이었다. 산행객들도 붐빈다. 좋은 날씨 때문이다. 불암사에서 등산로로 접어든다. 약 10여분 약간 경사가 있는 오르막길을 걷는다. 산책로 같다. 갈래길이 나온다. 직진하면 옥천암 방향이다. 우회전한다. 급경사가 이어진다. 앞장 서서 씩씩하게 오르던 공주가 10여분만에 털퍼덕 주저 앉는다. "아이고…힘들어라!!" 공주 오랜만의 산행이다. 당연히 힘이 들 터…. 거기다 어제까지 2박3일 수학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내일은 또 학교 피구 대표로 뽑혀 다른 학교 학생들과 피구 시합을 치러야 하는데…." 불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모레는 또 릴레이 경주 대표로 나가야 하고…." 공주 체육 박사다. "나, 힘들어서 내일 피구 시합에서 지면 아빠가 책임져." "……." 할 말 없다.


#암벽을 오르는 공주.

오른다. 오르다가 옆길로 빠진다. 암벽이다. 공주에게 얘기했더니 그 길로 가면 더 빨리 갈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앞장 서서 나선 것이다. 그런데 암벽이 보통 암벽이 아니다. 경사가 60-70도 정도는 족히 될 성 싶다. 게다가 엄청 높고 길다. 공주를 앞세우고 기자는 뒤에서 따른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공주, 등산화를 신은 것도 아닌데 미끄러지지 않고 잘도 오른다.


#이 얼마나 멋진 풍경인가. 공주가 풍경화 같다고 한다.




#하늘엔 뭉게구름이...

첫 번째 암벽은 무사통과. 땀이 철철 흐른다. 공주도 마찬가지다. "우리 공주 오늘 살 좀 빠지겠는데…." 한숨 돌리며 뒤를 돌아보니 절경이 펼쳐진다. 연초록색의 산림 너머로 경기도 일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하늘엔 뭉게 구름이 둥실둥실 떠 다닌다. 공주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온다. "꼭 풍경화 같다." 적절한 표현이다. "밥 언제 먹을 거야?" "응, 암벽 다 올라가고 나서…." 공주 다시 앞장 선다. 두 번째 암벽이다. 속도가 아까보다 더 빨라진다. 미끄러운 곳은 네 발로 기어서 오른다. 대단하다. 릿지화(암벽 전문 등산화)를 신고 암벽을 오르던 등산객들이 물끄러미 쳐다본다. 공주 으쓱해진다. 공주의 아빠도 으쓱해진다.

15분여를 오르자 마침내 암벽 끝. 적당히 식사 할 곳을 찾는다. 도시락을 펼치는데 공주 "고추장 싸왔어?"하고 묻는다. "아참, 깜빡했다." 공주, 집에서는 매운 음식 못먹는다. 극도로 싫어한다. 그런데 산에만 오면 꼭 고추장을 찾는다. 흰쌀밥에 고추장을 발라 먹는다. "그럼 초고추장은? 그럼 된장은?" "아니…." "에이…."

정성들여 준비한 음식들이 펼쳐진다. 공주 신이 난다. 누가 왜 산에 오르느냐고 묻거든,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해서라고 답할 공주다. 평소에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많이 잘 먹는데, 산에만 오면 거의 두 배 수준으로 식사량이 늘어난다. 자연 기자 몫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식사후 아내가 싸준 사과를 한 개씩 나눠 먹는다.


#정상 바로 아래 암벽

공주 서두른다. 시간이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 인근에 오르자 정상 암벽을 타는 사람들이 눈에 뜨인다. "저기도 올라볼까?" "그래…."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그런데 오를 수 없다. 거긴 로프와 암벽 등반용 장비들이 있어야 한다. 거의 90도에 가까운 암벽들이다. 사고도 많이 난다. "다음에 올라보자." "에이 아빠가 겁나는구나."

정상 암벽 옆길을 통해 능선으로 나선다. 능선 중간 부분에 갈래길이 있다. "헬기장으로 갈까, 여기서 그냥 내려갈까." "어느 쪽이 더 빠른데??" "시간상이야 여기서 내려가는게 더 빠르지." 두말 필요 없다는 태도다. 바로 앞장서 내려간다. 옥천암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중간, 계곡물에 세수를 한다. 가다보니 아주 오래된 암자가 나타난다. 옥천암이다. 등산객들이 나무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다. 약수가 있다. 한모금씩 마신다.


#옥천암.

"아빠는 이런 데서 살았으면 좋겠어." "그럼, 나랑 엄마는 어떡하라고…." "같이 살면 되지." "여기서 학교를 다니란 말야?" 공주 흘겨본다.


#옥천암에서 5분여 내려오면 길이가 족히 50여미터는 되는 폭포가 있다.

하산하니 막걸리 생각이 절로 난다. 공주에게 얘기했더니 안된다고 단호하게 자른다. 참기로 한다. 공주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조른다. 사준다. 다시 막걸리 생각이 도진다. 마즙 한 잔으로 대신한다. 그런데 시간이 어떻게 됐지?? 시계가 없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5시15분이란다. 서두른다. 잘하면 5시45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런데 길이 막힌다. 공주의 짜증이 시작된다. 결국 도착한 시간 6시30분. 공주 바로 TV를 켠다. TV안으로 들어간다.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들이켠다. 살 맛 나는 인생이다.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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