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이낙연의 어머니에 관한 추억

저희 집 어른들은 술 담배에 대해 묘한 태도를 지니고 계셨습니다. 몇 가지 에피소드를 적어 보겠습니다.

저희 할머니는 큰 손자인 저를 드러내놓고 편애하셨습니다. 제 동생들의 항의 따위는 할머니의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저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이 이렇게 표현된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할머니는 저에게 “너도 이제 담배 피워라”하시며 담배 한 갑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자 할머니는 “남자는 담배를 피워야 점잖아진다”하시는 겁니다.

할머니의 “점잖다”는 말씀은 “어른스러워 보인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할머니는 제가 빨리 어른이 되는 걸 보고 싶으셨던가 봅니다. 요즘의 눈으로 보면 빗나간 사랑일까요?

저희 아버지는 술을 몹시 즐기셨고 담배도 끊지 못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술을 드셨고 담배를 피우셨습니다. 아버지는 담배에 대해 “담배는 백해무익이여. 느그(너희)들은 배우지 마라”하시면서도 끊지를 못하셨습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간 뒤에 시골집에 가면 아버지께서는 제가 자는 방에 담배 한 갑을 조용히 넣어주시곤 했습니다. 그런 아버지께서 하루는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술 담배 잘 끊는 놈들과는 깊게 사귀지 마라. 사람이 그렇게 독하면 배신도 할 것 아니냐.”

술 담배를 쉽게 끊을 정도로 독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신도 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술 담배를 끊지 못하시는 당신에 대한 자기변명이라는 것을 저는 그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대학생 때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 마흔 아홉에 끊었습니다. 그러나 술은 아직도 마시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기준에 따르면 저는 절반쯤 독한 놈인가요?
아버지의 과도한 음주에 어머니는 평생 질린 채로 살아 오셨습니다. 어머니는 “나는 느그(너희)들이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만, 술 먹는 것은 반대다”하고 입버릇처럼 저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어머니의 ‘이중성’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술에 질리신 어머니께서 간혹 저에게 술을 권하신 것입니다.

저는 정치인이 되기 전 신문기자 시절에 시골집에 가면 조금은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께서는 어디에선가 소주나 막걸리를 가지고 오셔서 저에게 “한 잔 할래?”하고 물으시는 겁니다.

제가 “그것 어디서 나셨어요?”하며 한 잔 마시면, 드디어 어머니는 본래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술 많이 먹지 마라. 나는 네가 하는 것은 다 좋다마는, 술 먹는 것은 안 좋다.”
어머니의 이런 이중적 태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제가 술 마시는 게 싫다고 하시면서도 술을 권하시는, 그러면서도 술 많이 마시지 말라고 충고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민주당 국회의원>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