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격이 엄청나게 크신 아버지께서 상추밭에 엎드려 우시던 이유…
체격이 엄청나게 크신 아버지께서 상추밭에 엎드려 우시던 이유…
  • 승인 2006.05.29 09: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이낙연의 아버지에 관한 추억 1
각 정당이 공천 파동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공천을 주는 쪽에서 이런저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개탄스럽습니다. 공천을 받으려는 쪽에서 죽기살기로 덤비는 것도 착잡합니다. 요즘의 공천 파동을 보면서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자료사진입니다.

4.19 혁명 직후였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의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어디서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아버지께서 우시는 소리였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울음소리가 들리는 뒤안으로 갔습니다. 체격이 엄청나게 크신 아버지께서 상추밭에 엎드려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 곁으로 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술을 꽤 드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흔들며 여쭈었습니다.

“아부지, 어째 우신다요?”
“이 놈아, 저리 가거라. 니가 뭣을 알 것냐?”

그래도 저는 아버지 곁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훌쩍거리며 아버지 곁을 지켰습니다. 한참을 우신 뒤에야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버지는 민주당 당원이셨습니다. 아주 열렬한 청년당원이셨습니다. 자유당 사람들이나 공무원들과 수없이 싸우시면서 민주당 국회의원의 당선을 세 차례나 도왔던 행동력 있는 청년당원이셨습니다.

4.19 혁명으로 민주당은 일약 집권여당이 됐습니다. 민주당 국회의원의 영향력도 훨씬 커졌겠지요. 그 민주당 국회의원이 아버지께 말씀하셨답니다. 농협 조합장을 시켜줄 테니 이력서 한 장만 써오라고요.

그러나 아버지는 이력서에 쓸 것이 없었습니다. 학력도, 경력도, 그 무엇도 쓸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력서 쓰기를 포기하고 그 국회의원께 말씀을 드렸답니다. “나 같은 것을 조합장 시키면 안 돼요”라고요.

아버지는 국회의원께 그 말씀을 드리고 나서 술을 드셨답니다. 설움이 복받치더랍니다. 그래서 집에 얼른 오셔서 뒤안에 숨어서 우시다가 저에게 들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고생해도 너는 가르칠란다. 그리 알아라.”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더러는 자질도 부족하면서 공천을 받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분들도 계시는 요즈음이라 아버지가 더욱 그립습니다. 저 자신도 공직에 나선 사람이고, 더 높은 공직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할 수 없는 처지이기에, 아버지가 더 더욱 그립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어떤 아버지일까를 생각하면서 아버지를 다시 생각합니다. 저는 아버지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졌고, 훨씬 많은 것을 아들에게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것만큼, 먼 훗날 아들도 저를 그리워할까요.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습니다. <이낙연님은 민주당 국회의원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