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정명은 기자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 망우공원묘지→용마산→아차산

토요일에 산행 계획을 잡았습니다. 그러니까 27일이지요. 일기예보는 아니었습니다. 비가 엄청 올테니 산에 갈 생각일랑 하덜덜 말어라, 였습니다. 그래도 기대했지요. 자주 그러듯 예보가 빗나가기를…. 그런데 이럴 땐 또 꼭 들어맞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습니다. 창 밖으로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가 잠을 깨운 범인이었습니다. 창 문을 열어보니 길 건너편 아카시아 나무에 처량하게 매달린 꽃들을 사정없이 내려치는 사나운 비입니다. 이런 날 샜군. 오늘은 편안히 휴식이나 취해야 겠다. 생각을 바꿀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 밖을 관찰하는 것은 잊지 않았죠. 그런데 정오 무렵 잠깐 비가 뜸 한가 싶더니 이내 빗줄기는 야속하게도, 모멸차게도 쏟아져 내렸습니다. 작전상 후퇴.

늘어지게 잤습니다. 그리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 그러니까 28일 일요일 아침이지요. 전날과 달리 새소리가 선잠을 깨웁니다. 기분 좋은 기상…. 창문을 열어보니 전날 내린 비로 떨어져 내린 아카시아꽃을 희롱이라도 해대듯 기분 좋게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하늘은 가을의 그것 마냥 높고 푸릅니다. 가차 없이 결론을 내립니다. 떠나자, 산으로….

오늘의 산행지는 이전에 한 두 번 소개해 드린 적이 있는 망우산→용마산→아차산 코스입니다. 이렇듯 산뜻하고 쾌청한 날씨와 잘 어울리는 곳이지요.


#사색의 길에서 본 구리시 일대 전경

몇몇 일행과 망우공원묘지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시간이 남아 걸어갈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 먹습니다. 남은 시간을 도시락 준비에 사용하는 게 남을 듯 싶어 섭니다. 몇 가지 반찬을 싸고 밥도 쌉니다. 나서는 길, 아직도 아카시아 향이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꽃이 떨어져 구릅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탑니다. 약 20여분 걸려 내린 곳은 동부제일병원 앞. 망우리 고개 바로 못미처 정거장입니다. 이쪽에선 망우공원묘지 정문을 통과해 순회 산책로를 반바퀴 돈 뒤 용마산 쪽으로 빠지는 등산로를 이용해야 합니다. 등산객들이 많이 보입니다. 아담한 크기의 산이어서 주로 가족 단위의 등산객들이 많습니다. 산이 무척 가까이 있습니다. 실제보다 눈으로 보이는 게 더 가까워 보인다는 얘깁니다. 날씨가 맑아서입니다. 구름은 끼여 있는데 비가 많이 내린 뒤라 시야를 가리던 매연 등 오염물질들이 전부 씻겨 내려간 덕입니다. 저 멀리 우거진 녹음이 마치 손에 잡힐 듯 합니다.

망우공원묘지 정문을 가려면 묘지들 사이로 이어진 계단길을 올라야 합니다. 공기중에 수분이 많지 않아 땀이 날 것 같지 않은데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힙니다.
열심히 걷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흘리는 땀, 기분을 좋게 합니다.


#사색의 길 입구의 갈래길 표지판

버스 정류장에서 15분여, 주차장이 나옵니다. 바로 옆이 망우공원묘지 정문입니다. 차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습니다. 일행을 기다립니다. 약속 시간이 되고 일행들이 도착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들은 다 식어버렸습니다. 다시 열심히 걷습니다. 정문에서 20여미터 걸으면 갈래길이 나옵니다. 왼쪽 길을 택합니다. 전망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오른쪽 길로 가도 전망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도심 쪽입니다. 맨날 그 안에 찌들어 살다시피 하는 곳입니다.

왼쪽은 경기도 구리시 남양주시 일대와 인접해 있습니다. 시멘트 포장길입니다. 사색의 길이란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걸으면서 보니 정말 시야가 좋더군요. 일행 중 한 명이 얘기합니다. 오늘 같은 날 북한산 서부 능선에 오르면 인천 앞 바다가 훤히 보이겠는걸…. 맞습니다. 보이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연신내에서 비봉 쪽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인천 앞 바다를 보기엔 제격입니다. 계양산 너머로 사이다 병 둥둥 뜬 인천 앞 바다가 마치 비닐하우스 지붕이 햇볕을 받아 빛나듯 그렇게 반짝거립니다. 위쪽으로는 강화도와 그 앞 바다가 훤히 보이지요. ]


#향긋한 풀내음이 가득한 사색의 길.

얘기가 잠깐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어쨌든 이곳에서 보는 경기도 구리시와 남양주시 일원의 전망도 그에 못진 않습니다. 한강물이 흐르는 그 너머엔 아파트촌으로 변한 덕소 일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 오른쪽 팔당댐도 선명하기만 합니다.

다시 땀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산행을 하면서 말을 많이 하면 그만큼 힘이 더 듭니다. 숨도 더 차게 마련이구요. 일행들과 함께 오면 그렇습니다. 그래도 즐겁습니다. 술집에 앉아 술 잔을 기울이며 얘기를 나눌 수도,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얘기를 나눌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자연 속에서 나누는 얘기만큼 흥겨운 경우도 없습니다. 망우공원 순회로는 사람들로 빽빽합니다.

한참을 걷다보니 약수터가 나옵니다. 커다란 크기의 생수통들이 줄을 지어 서 있습니다. 이전부터 인근 주민들이 물을 뜨러 자주 찾는 약수터입니다. 이름은 동락천.
지나니 약간의 오름길입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의 묘소가 줄을 지어 나타납니다. 방정환 선생, 조봉암 선생, 오세창 선생 등…. 마음 속으로 묵념을 합니다.


#오세창 선생 묘소앞의 기념비

망우공원묘지 정문에서 약 30여분, 팔각정이 나옵니다. 동락천 약수터에서 약 10여분 거리입니다. 사색의 길 전체 순환로 5.5km 중 4km 지점 정도 될 겁니다. 팔각정에선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습니다. 바로 그 건너편에 표지판이 있습니다. 사잇길로 좌회전하면 용마산 가는 등산로입니다. 약 30여미터 더 들어가면 갈래길이 나옵니다. 어느 쪽으로 가도 상관 없습니다. 다만 오른쪽 길은 묘지 사이로 난 길을 가야 하고 왼쪽은 숲길입니다. 빨리 가려면 오른쪽이 좋은데 왼쪽으로 접어듭니다. 향긋한 풀내음이 가득합니다. 일행들에게서 탄성이 쏟아져 나옵니다. "야, 진짜 좋다!!"


#팔각정의 앞의 갈래길 표지판

사실 그렇습니다. 망우공원묘지가 있는 망우산과 용마산, 아차산은 전언했듯 가족 나들이 하기에도 전혀 부담 없을 만큼 아담한 산들입니다. 그런데 또 군데군데 절경이 펼쳐져 등산객들에게도 볼거리를 제공하지요. 코스도 선택하기에 따라 4시간 여까지 잡을 수도 있습니다.

큰 부담 없이 여러 가지를 누릴 수 있는 셈입니다. 제 딸아이가 좋아하는 산 중 하나인 이유입니다.

 
#찔레꽃과 무덤 앞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

산책로 같은 숲길이 이어집니다. 숲은 무성합니다. 피톤치드가 몸 안에 가득 차는 느낌입니다. 아카시아 꽃은 아직도 군데군데 마지막 생명을 구걸하고 있습니다. 잔향이 그대로 배어져 나옵니다. 찔레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습니다. 산딸기도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6월 중순이면 그 빨간색 몸뚱아리를 드러낼 것입니다. 중간 중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약수터도 등산객들을 흡족하게 합니다.

약 팔각정 앞 갈래길에서 약 20-30분을 걸으면 아까 갈래길과 합류지점이 나옵니다. 좌회전하면 용마산입니다. 절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계단이 놓여져 큰 문제는 없습니다. 오르면서 바라보는 하늘은 여전히 가을의 그것입니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들을 서늘한 바람이 식혀줍니다.


#나무 계단을 오르는 길에 바라본 청명한 하늘.

아까보다 등산객들이 한결 더 많습니다. 계단을 오르다 왼쪽으로 바라보니 녹음 우거진 사이로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는 흰다리 마을이 눈에 들어옵니다. 소설가 박완서씨가, 가수 조성모씨가 사는 마을입니다. 한때는 교통이 불편해 사람들이 찾지 않는 낙후된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그런 곳에 들어가 살려고 해도 `머니`가 있어야 합니다. 더 이상 아무나 살 수 있는 곳이 아닌 셈이지요.

마침내 헬기장이 나옵니다. 용마산 처음 온 사람들 이곳을 정상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사실 정상이나 진배 없는 데요. 다 높이가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라서…. 그래도 진짜 정상은 약 20여분을 더 가야 합니다.

오늘 산행은 두 번째 만나는 헬기장에서 좌회전, 아차산으로 빠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고구려 유적지 제4보루

아차산에도 등산객들이 인산인해입니다. 혼자 온 아리따운 젊은 아가씨들도 많이 눈에 뜨입니다. 아차산은 고구려 유적지 발굴 사업으로 시름을 앓고 있습니다. 제4보루는 발굴이 끝난지 오래됐습니다. 제3보루는 한참 발굴중입니다. 등산로를 가로막아 한참을 우회해야 합니다. 아차산 정상, 그러니까 제4보루에서 약 20여분을 워커힐 방향으로 진행하면 한강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지점과 만납니다. 바로 아래는 절벽, 절경이 펼쳐진 그 커다란 바위 위에서 식사를 합니다.


#아차산 절벽 위에서 본 한강. 멀리 보이는 아파트 일대가 덕소다.


밥 맛 좋습니다. 바로 인근에서 막걸리를 팝니다. 두어병을 사다가 일행들과 한잔 씩 걸칩니다. 기분 좋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그대로입니다. 나무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회전하면 사가정 공원 쪽으로 하산하게 됩니다. 사가정 공원 입구엔 5.31지방 선거 후보자들이 저마다 선거운동을 하느라 분주합니다. 4시간 소요. 조금 내려오면 재래시장이 나옵니다. 그곳 횟집에서 산 오징어를 5마리에 만원씩 팔더군요. 막걸리 몇 사발을 더 걸쳤습니다.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