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리포트>지금 새만금 갯벌은 -1회

6월 3일, 토요일 오후 12시 20분 경 직행버스로 부안 터미널 출발하여 김제 터미널 근처에서 1시 27분 출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버스 종점인 거전마을을 향했다. 나이 드신 어른들과 중학생들 몇 명만이 몇 좌석을 채울 뿐이다. 만경에서 몇 분의 어른들을 태우고 광활 지역을 가로 질렀다.

이곳을 자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멀리 보이는 부안의 계화도가 김제에 있는 것으로 혼동하기 쉽다. 그 사이엔 동진강 하구 갯벌이 자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곳 광활면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면 전체로 볼 때 산이 없다. 대부분이 논이다. 길 주변엔 모내기가 거의 다 끝나가고 일부 듬성듬성 누런 보리들이 익어가고 있다.

겨울에 비닐하우스를 쳐 놓고 감자 농사를 지었던 곳은 5월 중순 경 감자를 수확하고 지지대까지 다 빼서 옮기거나 지지대만 남겨놓은 채 모내기를 했다.

‘수탈의 역사’ 군량미에서 ‘두개의 강을 틀어막아 하구를 없애는’ 간척사업

광활 지역은 과거에 갯벌이나 염습지이었던 곳을 일제시대인 1920년대에 대규모 간척사업을 하여 농지로 만든 지역이다. 일제 시대 때 이 지역에서 생산된 쌀들이 군산항을 통해 일본인이 식량과 대동아 전쟁지의 군량미로 수송돼 나갔다.

이 지역의 수탈 역사와 지역민들의 삶의 역정에 대해서는 조정래 선생의 소설 ‘아리랑’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고, 김제 벽골제 옆에 만들어진 ‘아리랑 문학관’에서 간략이나마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민중생활사 연구단에 참여하여 조사하고 있는 함한희 전북대 교수가 2005년에 발표한 글도 참조 할만 하다. 일제시대 때만 해도 토목공사의 한계로 만경강ㆍ동진강과 바다를 가로 막는 방식이 아닌 퇴적이 높게 진행된 지역을 주로 간척했다.

그런데 현재의 새만금 사업은 두 개의 강을 틀어막아 하구를 없애고 대규모 갯벌까지 없애는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간척사업인 것이다. 이곳 광활 지역은 만경과 진봉, 성덕의 농경지를 합쳐서 만경평야로 부른다. 식량이 부족하던 때엔 국민들에게 대량의 식량을 공급해 주던 식량기지 역할을 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한편 넓은 농경지 중간 중간에 덩그러니 자리한 마을들은 산이나 구릉을 뒷 배경으로 하고 앞에 냇가를 끼고 있는 보통의 전통적인 마을 모습과는 전혀 다른 전경이다. 예전엔 지하수를 뽑아 식수로 사용했는데 소금물이 섞여 나왔다고 한다. 풍요로운 곳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직접 와서 살만한 장소로 느껴지는 그런 정감이 가질 않는다. 이곳에서 농사짓는 농민들 마다 대단히 넓은 논 면적을 가지고 있어서 세는 단위가 ‘마지기’가 아니라, ‘필지’(한 필지는 여섯 마지기임)를 사용할 정도다.

시내버스는 진봉면 소재지를 거쳐 낮게 이어진 산들을 오른쪽에 두고 달린다. 이 길은 만경과 거전마을을 잊는 직선길이다. 산들은 펑퍼짐하게 늘어져 있고 중간 중간에 간척농지로 이어져 있다. 갯벌을 바라보며 산  언저리와 간척 둑, 산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색다른 느낌이 든다. 진봉면 소재지에서 망해사 뒷편 전망대와 심포항을 거쳐 안하마을 뒤쪽으로 해서 군부대 초소를 끼고돌아 거전마을 뒷산을 지나 거전갯벌 끝지점까지 걸어서 가는데 3시간 정도 걸린다. 꼭 걸어보기를 권해 드린다. 이들 산들 북쪽 만경강 넘어엔 군산이다.

거전갯벌에 도착하니…

거전마을에 도착하니, 오후 2시를 넘었다. 거전(巨田)은 글자 그대로 큰 밭이 있는 마을이다. 밭에 나가 호미로 작업을 하는 것처럼 넓은 갯벌에 나가 갈쿠리로 조개를 잡는 것이 비슷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 것 같다. 이 트렉터를 ‘갯벌택시’라고 부른다. 마을안 도로에는 갯벌에 드나들며 사람을 실어 나르기 위해 개조된 트렉터들이 대부분 그대로 서 있다. 오늘 갯벌에 들어간 사람들이 많지 않은 모양이다. 이 마을엔 8대의 트렉터가 있는데 하루에 1만원을 내고 트렉터를 타고 들어가 조개를 잡을 수 있다. 그동안 주민들도 탓지만 외부 손님들도 제법 많았다. 그런데 너무 크고 무거워서 갯벌을 일부 훼손하는 문제점도 있지는 않은지 우려스러워 했으나, 물막이 공사 이후 트렉터 운행조차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마을 앞 갯벌, 일명 거전갯벌에 가려면 팽나무와 수문을 지나야 한다. 3년전만 해도 이 나무 밑에서는 갖 잡아온 조개들를 거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민들이 크기별로 조개를 나누고 중간도매상들이 무게를 재면서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배수갑문 양옆으로는 꼬막국수집(실제로 이곳 주민들이 부르는 ‘꼬막’은 학명으론 ‘동죽’임) 이 있다. 몇 번 맛있게 먹어본 적도 있다. 그런데 모두 주인이 바뀌었는지 처음보는 사람들이다. 수문 앞 갯벌안쪽 수로와 갯벌위에는 나무로 만든 배(목선) 3대가 서 있다.

바닷물이 그동안 닺지 않아서인지 겉 표면의 페인트가 벗겨지고 있다. 목선은 바닷물에 오랫동안 닺지 못하면 썩어버린다고 한다. 바닷물이 많이 들어오지 않으니, 수심이 깊은 바다쪽으로 배를 빼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수로에는 짙 누런 색깔의 물이 고여 있다. 수문안쪽의 오염된 물을 뺀 데다가 바닷물이 수로를 통해서만 느리게 들어왔다가 또 다시 나가버려 잘 섞이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다. 수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은 지역의 갯벌은 말라붙어 하얀색 소금 가루가 깔려 있다. 그동안 비가 자주 내려 염분이 사라졌다가 며칠간 더운 날씨가 지속되자 다시 염분이 스며 나온 것이다.

염생식물 칠면초도 조금씩 보인다. 하지만 많이 살았던 칠게들은 전혀 볼 수 없고 게 구멍들이 거의 막혀 가고 있다. 아마 게 구멍속에서 먹이도 먹지 못하고 죽어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칠게 잡이를 위해 설치된 파이프들도 그대로 방치돼 있다. 작은 갯골 상층부엔 물기가 빠져나가 보기에도 흉측하다.

바닷물이 조금 들어온 갯골 밑부분엔 칠게들이 나와 먹이를 먹고 있다가 발자국 진동을 느꼈는지 제법 빠르게 들어간다. 산 옆으로 난 도로 옆에 물기가 있는 갯벌엔 칠게들이 나와서 열심히 먹이를 먹고 기지게를 펴고 있다. 비가 올 때 지하수면에 물이 고여 있다가 조금씩 흘러 나와서 이렇게 물기가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칠게들은 그렇게 재 빠르지 않다. 충분한 먹이와 바닷물을 섭취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하류로 조금 내려가니 한 가족이 말라붙은 갯벌위에 승용차를 세워놓고 탁해진 물도 아랑곳 않고 낚시를 하고 있다. 미끼를 무는 물고기가 없는지 잠시 후 낚시대를 거두고 나간다. 수로 넘어를 보니, 메마른 너른 갯벌에 몇 개씩 줄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란히 그어져 있다. 멀리 땅 갈이용 트랙터 한 대가 보인다. 지난 5월 25일엔 5대 정도의 트렉터가 작업을 하고 있었고, 10여명의 여성이 한손에 허리춤에 바구니를 끼고  씨앗을 뿌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갯벌이 말라가니, 바람에 소금가루와 모래가 날려서 주변피해를 주니까 이를 줄이기 위해 농업기반공사가 주민들을 동원하여 일당을 주고 칠면초와 나문제 등의 씨앗를 뿌린 것이다. 농업기반공사가 5월 26일에 발표한 기자회견 자료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갯벌에서 조개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던 주민들 이었는데 이제는 돈으로 일부 주민들을 꾀어 이 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효과도 얼마나 될지 두고 볼 일이다.

도로 끝 지점엔 군부대 초소가 있었는데 이제는 텅 빈 채로 흉측하게 남아 있다. 방조제 쪽으로 이동한 모양이다. 초소 옆 안내판에 팬으로 쓴 조석시간을 보니, 2005년 10월 9일 그대로다. 바닷가엔 사람을 실어 나르는 ‘트렉터’ 한 대가 한 사람도 타지 않고 그대로 서 있다. 멀리 두 대만이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주용기 기자 <주용기님은 환경운동가입니다. 이 글은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기사 이어집니다.>


▲붉은어깨도요 한 마리도 죽어있다.


▲수문 앞 갯벌안쪽 수로와 갯벌위에는 나무로 만든 배(목선) 세대가 서 있다.


▲작은 갯골 상층부엔 물기가 빠져나가 보기에도 흉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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