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오세훈, 문화유산, 관광객, 보석, 그리고 노인 체취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는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지상부지에 녹지를 조성하고 지하 공간에 문화복합시설을 조성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세운상가 바로 맞은편에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인 종묘가 있다. 종묘공원은 서울에서 노인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종묘공원은 언제부터인가 노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갈 곳 없는 가난한 노인들의 가장 대표적인 휴식처이자 무료한 노인들이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자리 잡고 있다. 추운 겨울이나 날씨가 궂은 날은 수백명, 요즈음처럼 날씨가 쾌적한 계절에는 하루에 천명 이상의 노인들이 이 곳을 찾는다.



벤치에는 앉을 자리가 없고, 나무그늘마다 노인들이 삼삼오오 자리 잡고 앉아서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고스톱, 장기, 바둑, 마작판을 벌이고 있다. 공원 곳곳에 있는 오솔길에는 노래방 기계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곳에는 얼큰하게 취한 노인들이 어울려서 노래를 하면서 춤을 추고 있어서, 다른 행인들은 길을 두고도 이용하지 못하고 나무사이로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 이 공원이다.

벤치, 나무밑, 오솔길 뿐만 아니라 다른 공원조형물이 있는 곳곳에서도 마찬가지로 노인들이 모여서 낮잠을 즐기거나, 삼삼오오 모여서 담소, 오락 등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시민이나 관광객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노인전용지역이 종묘공원이다.

가난한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니 자연히 무료급식소도 근처에 생겨나고, 종교기관의 노인복지 서비스도 집중되게 되었다. 여기에 모여서 무료급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고, 복지지원도 받으면서, 노인들만의 또래문화를 공유하고, 필요한 욕구를 해결하게 되고, 그것이 소문이 나자 여러 곳에서 더 많은 노인들이 모여들게 되어 오늘날 종묘공원은 가난한 노인들의 공원이 되었다.

종묘공원에 오시는 분들의 거주지는 마을버스와 5호선, 3호선, 1호선으로 연결이 가능한 서울시 각 지역을 망라하고 있으며, 때로는 다른 지하철 노선역 주변의 노인들이 몇 번의 환승을 거쳐서 오시기도 하고, 종로를 지나는 버스노선으로 연결이 용이한 곳에서 오시기도 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광명, 아산, 천안과 같이 먼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서 오시는 분들도 있다.

종로3가에서 4가 사이의 인도는 주로 노점상, 포장마차, 잡상인들이 늘어서 있다. 노인들이 많이 빙 둘러서 있는 데는 주로 야바위꾼이나 약장수가 상품선전을 하고 있는 곳이다.

파는 상품들은 주로 노인들에게 흔한 고혈압, 당뇨병, 요통, 관절염 등의 만성질환에 잘 듣는 만병통치약이거나 성기능 향상에 획기적인 효능이 있다는 약들이다. 대로변의 인도를 점령하고서 얄팍한 노인들의 주머니를 열도록 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는 서민 노점상인들의 모습은 종로3가 세운상가 앞에서는 거의 매일 볼 수 있다.

노인들과 잡상인들의 숲을 이리저리 피하여 길을 가야만 하는, 종묘를 찾는 관광객에게 있어서 종묘공원은 단지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 있는 관광지로서보다는 한국의 노인복지수준과 노인생활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으로서 더 큰 인상을 남길 것이다.

종묘는 조선의 왕과 왕비를 모신 사당이다. 종묘는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바로 그 해인 1394년에 경복궁과 함께 건립한, 이조 6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이다. 여기에서 제사를 지내는 종묘제례는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국가적인 행사로서 무형문화재 56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은 왕실의 후손들인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매년 5월에 종묘제례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이 의식은 조선왕실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오던 의식을 재현하는 것으로서 격식이나 음악, 무용이 요즈음 좀처럼 보기 어려운 귀한 것이어서 무형문화재적 가치가 높기 때문에 종묘대제는 우리나라 중요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 의식은 종묘와 함께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자랑스러운 한국의 문화재이다.

종묘는 창경궁과 창덕궁과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특히 창경궁과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종묘에는 수백년 묵은 아름드리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서 산책로에서도 거의 햇빛을 볼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종묘의 공기는 한결 맑고, 시원하다. 종묘는 도심 한복판에 이만큼 우거진 삼림은 다른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더욱 귀한 곳이다.

그리고 종묘에서 내려오는 개천은 세운상가와 진양상가를 거쳐 남산까지 이어져 왕실의 맥이 흐르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종묘는 세종대왕을 비롯한 이조 왕실의 조상들을 모시는 성스러운 사당으로서 서울 한복판에서 민족정신과 정기를 지켜주는 성스러운 곳이다.

이러한 문화재가 허름한 차림새의 노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으며, 노인들 특유의 몸냄새가 지나가는 행인들의 코를 찡그리게 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종로3가의 종묘공원의 ‘강렬한 노인체취’는 바로 한국이 경제규모 세계 10위 안에 드는 한국의 경제적 위상에 걸맞지 않게 노인복지 수준이 32개 OECD 가입국 중에서 꼴찌서 둘째가는 31위의 열악하다는 것을 세계 관광객들에게 광고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는 바로 이 지역의 세운상가를 지하로 옮기고, 지상을 녹지화하고, 그 일대를 문화와 패션의 거리로 거듭나게 한다는 ‘강북도심부활 프로젝트’를 공약으로 내걸고 시장에 당선되었다.

오시장 당선자가 경복궁, 창경궁, 창경궁, 종묘, 청계천으로 연결되는 도보관광도로를 정비하고, 지금은 세운상가 건물 아래에서 하수도가 되어버린 종묘와 남산을 연결하는 개천을 살려내어,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생태공간을 복원해 낸다면 서울은 한층 더 품격 높은 도시가 될 것이고, 종묘공원 일대는 관광객들과 시민들로 북적이게 될 것이고 종로3가 일대의 보석상가들은 더욱 더 활기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오세훈 시장당선자의 ‘강북도심부활 프로젝트 공약’ 어느 곳에도 매일 종묘공원을 이용하고 있는 수 천 명의 가난한 노인들에 대한 언급은 없다. 만약 오시장 당선자가 이 지역의 노점상이나 매춘노인의 단속을 강화하고, 노인들을 강제로 내쫓는 정책을 대안이라고 내놓는다면 그것은 최악의 반노인복지정책이 될 것이다.

유럽,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들을 여행하다보면 노숙자들이 너무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감히 일반시민이 접근하기 어려운 공원이나 문화재는 선진국에도 꽤 눈에 띄지만, 노인들에 의하여 점령되었기 때문에 관광객, 데이트객,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등의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가 없는 공원은 없다.

왜 그럴까? 선진국들은 노인복지가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인이면 누구나 노령연금이나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하여 최저생계비 이상의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소득을 보장받기 때문에 노인들의 생활수준이 높고 나름대로의 구매력이 있다. 그리고 노인들을 위한 복지서비스나 실버산업이 발달하여 있어서 굳이 공원이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서 즐길 수 있는 무료, 저렴 혹은 유료시설들이 즐비하니 굳이 무료급식소를 이용할 필요가 없고, 따라서 무료급식소 근방의 공원에 모여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대안은 한국도 국민연금제도를 개선하여 노인이라면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노령연금을 지급 받을 수 있도록 국민연금제도를 개혁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통이 편리한 각 지하철 환승지역마다 운동, 사교, 오락, 취미생활 등이 가능한 종합노인 위락센터를 만들어서 종묘공원으로 몰리는 노인들이 자발적으로 분산되도록 하는 정책을 펴는 것이다.

그래도 다른 곳보다 종묘공원을 선호하는 노인들을 위하여 공원의 일부분을 노인전용으로 할애한 후에 거기에 노인들이 즐길 수 있는 시설들을 해주고, 너무 재미있어서 안으로 들어오고 싶은 욕구가 저절로 우러나올 수 있는 대규모의 노인위락센터를 건립하는 것이다. <류정순=한국빈곤문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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