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천, 경기지역 학교에서 발생한 사상 최대 급식 사태에 대해 학부모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CJ푸드시스템이 사업을 잠정 중단한 가운데 일선 학교에서는 8만여명의 학생이 단체급식식 전면 중단으로 단축수업과 도시락 지참 사태가 벌어지는 등 식중독 사건으로 인한 혼란이 커지고 있다. 이에 격분한 학부모들은 단체행동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허탈해하던 부모들은 이제 “언젠가 터질 게 터진 것”이라며 교육당국, 급식업체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아침은 거르기 일쑤인데다 학원가를 전전하느라 저녁마저 부실해진 자식들에게 점심만은 제대로 먹이겠다고 학교에 믿고 맡겼던 급식이 지금껏 저질 식재료, 위생 관리의 사각지대였다는 사실에 더욱 분노하고 있다.

귀 막은 교육 당국

학부모들의 일차적인 비난의 화살은 교육 당국으로 쏟아지고 있다. 한마디로 교육 당국이 `책임을 방기했다`는 것이다.
급식에 대한 꾸준한 문제제기에도 듣는 채 마는 채 했던 교육 당국의 무책임이 이번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특히 얼마 전엔 서울 시내 한 고등학교가 신고했던 대형 식중독 사태를 교육 당국이 단순 설사로 은폐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돼 파문이 확산될 전망이다.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이빈파(46) 대표는 "지난달 서울시내 한 고등학교의 학생 312명이 한꺼번에 설사 증세를 보여 집단 식중독 사태가 의심됐지만 해당학교로부터 신고를 받은 서울시교육청은 식중독이 아닌 단순 설사로 결론 내렸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 대표는 "단순 설사라면 3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한꺼번에 발생했을 리가 없다"며 "교육부가 사태를 축소,은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돼지고기나 쇠고기 반찬에서 동물들을 사육하는데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주사 바늘이 나온 적도 비일비재하다고 들었을 정도로 급식업체들이 음식재료 관리를 소홀히 하고 있다"며 "학교급식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식중독 사고의 대다수는 위탁 급식업체에서 발생하는 만큼 정부가 학교에 비용을 지원해서 급식을 직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명신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회장은 “위생 및 구조적인 문제의 불씨가 살아있어 급식은 늘 ‘시한폭탄’ 같은 사안이었다”며 “이번 사태는 전형적 인재”라고 말했다.
특히 당국이 지난 16일 사건이 처음 발생했음에도 근 일주일이 지나서야 CJ푸드시스템에 대해 급식 중단 명령을 내리는 등 늑장 대응했다는 사실은 분노한 학부모들에 기름을 부었다.
박범이 학교급식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교육부는 항상 식중독 사건이 발생해도 역학조사 결과가 나올때까지 기다려봐야 한다는 식으로 쉬쉬하고 넘어가기 일쑤였다”고 지적했다.
김정명신 회장은 “재정 부족을 이유로 급식 문제를 방치하고 임기응변식으로 때우는 정부 관행은 근본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은 이윤추구 급급

급식업체 역시 먹거리보다 돈벌이를 더욱 중시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급식업체가 대기업인 CJ푸드시스템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부모들은 충격을 넘어 배신감마저 나타내고 있다.
CJ푸드시스템은 서울시내 학교 40개교를 비롯해 전국 70여학교를 대상으로 단체 급식 사업을 벌여왔고 기업과 병원 등을 포함하면 전국 530이르고 있다. 이외에도 식자재 유통, 공항과 KTX내 외식사업도 하고 있다. CJ푸드시스템은 지난해 단체 급식사업에서만 444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체 시장의 28.9%를 차지, 1위를 달리고 있다.
김정명신 회장은 “2~3년전 학교운영위원을 하면서 급식업체 선정에 참여할 당시 CJ는 학부모들이 ‘당연히 괜찮겠지’라며 인센티브를 주는 곳이었는데 그 같은 학부모들의 신뢰를 무참히 깨뜨려버렸다”고 말했다.
중 1년생, 고 2년생 자녀를 한 학부모(46)는“대기업 CJ가 이 지경인데 중소 급식업체는 오죽하겠느냐”며 “유통과정을 단축시키고 직영 급식체제로 바꾸지 않는 한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는 "대규모 식중독 사고는 학교 급식에 대한 위생 관리,감독 체계의 부실과 급식의 민간업체 위탁운영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며 "이윤 추구가 목적인 민간업체에 급식을 맡기는 한 급식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위탁급식 체계에서는 인건비와 시설비 등이 고정돼 있어 이윤을 내기 위해 싼 재료를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며 "위탁 급식체계를 직영으로 전환하고 관리,감독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티즌들의 비난도 빗발치고 있다.
포탈사이트 다음에 글을 올린 아이디 ‘base king’은 ‘일본에서는 이런 일 때문에 기업이 망한다는데’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우리도 정말 똑같이 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 기업제품 불매로 망하게 해야 한다”고 CJ푸드시스템을 질타했다.
‘까치’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대기업체에서 아이들 먹는 것을 가지고 이윤을 남기려하니’라는 제목의 글에서 “우리 아이도 급식이 중단돼 오늘 도시락을 싸갔는데 정말 CJ 너무 하네요. 학교급식이 너무 부실해 작년 일년 동안 어머니회에서 참견하고 많은 건의를 했지만 나아진 건 없고 아이들 상대로 이윤만 생각하니 정말 화가 납니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정부 또 사후약방문??

정부는 집단 식중독으로 추정되는 사상 최악의 급식사고와 관련, 23일 시,도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전국 1만여개 학교를 대상으로 급식실태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한다.
정부는 또 급식업체인 CJ푸드시스템의 각종 급식공급을 전면 중단하는 한편 책임소재가 나오면 영업폐쇄(영합허가취소) 및 형사고발을 적극 검토키로 했다.
정부는 이날 정부 중앙청사에서 한명숙 총리 주재로 열린 긴급 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대책을 마련했다고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전했다.
정부는 시,도 합동 TF를 발족해 이달 말까지 전국 1만여개 학교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급식실태 전수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급식사고의 원인이 규명될 때까지 해당 급식업체인 CJ푸드시스템이 급식을 공급하고 있는 전국 89개교(급식소 기준 73개소, 학생수 기준 약 8만명) 뿐 아니라 급식소 기준 병원 77곳, 기업체 구내식당 386곳 전체에 대해서도 이날부터 전면적인 급식중단 조치에 들어갔다.
정부는 역학조사를 통해 CJ푸드시스템의 문제점이 드러날 경우 영업폐쇄 및 형사고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는 등 식품위생법에 따라 단호히 대처하기로 했다.
정부는 특히 대형 식자재 업체 전반의 급식실태는 물론, 시설이 노후한 식자재 업체의 위생상태도 중점적으로 점검키로 했다.
정부는 이번 급식사고에 연루된 CJ푸드시스템의 협력업체에 대한 책임소재를 면밀히 추적하는 등 대기업 식자재 유통업소의 시스템과 현황을 철저히 조사해 유사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 차원의 안전점검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정부는 또 학교급식 및 식품관련법을 개정, 식자재 공급업체를 철저히 관리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 농림부가 인정하는 우수농산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제도화해나가기로 했다. 또 급식 납품 방식을 가급적 위탁방식에서 학교직영 관리방식으로 전환하도록 권고할 계획이다. 급식 중단에 따른 결식 아동 발생에 대비, 결식 아동 및 저소득층 아동에 대해서는 특별식권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학부모 모임 등은 "전형적인 사후약방문" 이라며 비난을 멈추지 않고 있다.

길거리로 나서는 학부모

이렇듯 격분한 학부모들의 단체행동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의, 생활협동조합, 함께 하는 교육시민모임과 전국 16개 지부를 갖고 있는 학교급식운동본부 등은 26일 서울 광화문 교육부 앞에서 집회를 여는 등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급식의 직영 전환’ ‘식재료 납품업체 선정기준 강화’ ‘저질 식재료 용납한 해당 학교 사법처리’ 등 요구사항을 외치고 있다. 박충환 기자 park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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