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난' 북한산…계곡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등골이 오싹!
'물 만난' 북한산…계곡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등골이 오싹!
  • 승인 2006.07.0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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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은 기자의 북한산 샅샅이 훑기-아카데미하우스→구천폭포→용암문→도선사

비가 내립니다. 천둥이 칩니다. 번개가 번쩍입니다. 비가 그칩니다. 하늘은 여전히 흐립니다. 비가 또 내릴 것 같습니다. 장마철입니다. 주말에도 계속 내린답니다. 그래도 더운 것 보단 백배 낫습니다. 전날 만 해도 죽는 줄 알았습니다. 한발짝만 움직여도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습니다. 짜증만 났습니다. 이 장대비가 일년 농사를 시작한 농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건 아닐지 염려됩니다. 나머진 문제 없습니다. 비가 쏟아져 내리니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떠났습니다. 잠깐 하늘이 보이는 날이었습니다. 명쾌한 하늘은 아닙니다. 시커먼 먹구름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도심 하늘 주변을 잔뜩 가린 채 뱅뱅 맴을 돌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쏟아부을 듯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도 떠났습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가방 안에 우산을 챙겨 넣습니다. 평일입니다.

사무실에서 점심을 서둘러 먹은 뒤 버스를 탔습니다. 4.19기념탑을 거쳐 아카데미하우스 매표소를 지나 구천폭포 방향으로 올라갈 계획입니다. 이 코스가 물 만나기에는 최고입니다. 매표소에서 대동문이 있는 능선 정상까지 거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대신 가파릅니다. 계곡을 타고 올라가야 합니다.


#구천계곡 입구

4.19 묘지 입구에서 북한산 정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비구름에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카데미하우스 매표소를 지나자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세차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공기가 습합니다. 오늘 땀 꽤나 흘릴 것 같습니다. 등산객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날씨 탓입니다. 잔뜩 찌푸린 게 금방이라도 비가 한차례 쏟아져 내릴 것 같습니다.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구천교라는 조그마한 다리가 나옵니다. 아래로는 계곡이 흐릅니다. 물이 가득합니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세차게 세차게 아래로 흘러내립니다. 장관입니다. 새 우는 소리나 바람 부는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물소리에 묻혀 버립니다. 


#밤꽃이 지천으로 떨어져 있는 한가한 등산로.

돌을 깔아 놓은 등산로는 한적합니다. 돌 위에 밤꽃들이 무더기로 떨어져 있습니다. 전날 내린 비 때문입니다. 그래도 밤꽃은 자신의 독특한 잔향을 은근히 발산합니다. 코끝이 아련해 옵니다. 넓은 공터가 있는 갈래길까지 10분이 걸립니다. 왼쪽은 칼바위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오른쪽이 오늘의 예정로입니다. 구천폭포를 거쳐 대동문으로 올라가는 코스입니다. 물 흐르는 소리가 아까보다 더 세찹니다. 오른쪽 갈래길로 들어선 순간 잠시 당황했습니다. 길이 사라진 것입니다. 계곡 지류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길을 막아 버렸습니다. 돌 몇 개를 주워 디딤돌을 만듭니다. 오른쪽으로 계곡이 이어집니다. 계곡은 좁습니다. 물이 더 세차게 흐르는 이유입니다. 바위돌을 넘어선 물들이 아래로 떨어집니다. 하얀 명주실을 풀어놓은 것 같습니다.


#구천폭포 하단

5분여 오르자 거대한 높이의 폭포가 나타납니다. 여기가 구천폭포 하단에 해당합니다. 물이 쏟아져 내립니다. 아래선 끊임없이 포말이 일어납니다. 절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멋드러집니다. 혼자 보기 정말 아깝습니다. 구천폭포는 전체 길이가 80여m에 높이가 15m라고 하는데 실제론 훨씬 더 길고 높아 보입니다. 구천은폭(九天銀瀑)이라고도 합니다. 굳이 해석하자면 `아홉 개의 하늘을 담은 은색의 폭포` 정도 될까요?


#아홉개의 하늘을 담고 있는 은색 폭포, 구천폭포 상단

가파른 경사길을 오릅니다. 길이 무척 미끄럽습니다. 쇠줄로 이어진 안전줄을 잡고 간신히 간신히 오릅니다. 이마에 땀이 줄줄 흐릅니다. 등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약 10여분 오르자 시야가 트입니다. 바위에 올라 뒤를 돌아보니 강북구와 노원구 일대 도심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시야가 뿌옇습니다. 잔뜩 찌푸린 날씨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었으나 도심 광경은 잡히질 않습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계곡

다시 좁은 등산로로 들어섭니다. 오른쪽으론 구천폭포가 이어집니다. 우거진 녹음 사이로 희끗희끗한 물줄기의 몸통이 드러납니다. 조금 더 걸으니 구천폭포 상단이 나옵니다. 계곡 아래로 내려갑니다. 물을 잔뜩 머금은 바위들이 무척 미끄럽습니다. 몇 번이나 내동댕이 쳐지려는 것을 간신히 모면합니다. 조금 더 좋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물을 건너려 했으나 도저히 되지 않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물에 휩쓸리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포기합니다. 적당한 장소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냥 저냥 봐줄만 한 것 같습니다.



다시 등산로로 기어올라갑니다. 등산로에 등산객들은 여전히 한 명도 보이지 않습니다.
몇 걸음을 더 옮기면 구천폭포 정상 지점과 만납니다.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가 보입니다. 물줄기가 정말 은색을 풀어놓은 것 같습니다. 세차게 흘러내린 폭포수는 잠시 깊게 파인 골을 희롱한뒤 다시 폭포 중단을 거쳐 하단으로 치닫습니다.



계곡은 계속됩니다. 이른바 구천계곡이라 합니다. 아마 북한산 전체 계곡 중 가장 빼어난 광경을 자랑하는 곳 중 하나일 겁니다. 날씨가 좋을 때도 등산객들이 그리 많진 않습니다. 경사가 가파르다 보니 최소한 30여분은 쇠로 된 안전 로프를 잡고 올라야 합니다.



걸음을 옮깁니다. 등산로는 마치 한밤중인 듯 어둡기만 합니다. 날씨가 흐린데다 위로는 커다란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탓입니다. 안경에 자꾸 습기가 찹니다. 손수건을 꺼내 닦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금새 다시 뿌옇게 돼버립니다. 인적 하나 없는 계곡은 오로지 물소리 뿐입니다. 주머니에 넣어둔 이동전화 벨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돕니다.

오른쪽으로 계속되던 계곡이 오른쪽으로 바뀌는 지점이 나옵니다. 돌로 된 징검다리를 까치발을 해서 건너는데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뭔가 희뿌연 게 컴컴한 계곡 사이로 언뜻 비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하얀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이라도 만난 것 마냥 겁이 덜컥 났습니다. 머리를 쭈삣 세운 채 그쪽을 응시해 봅니다. 분명 정체 모를 하얀 물체가 스멀스멀 움직이는 게 보입니다. 안경에 낀 습기 때문인가? 부리나케 손수건을 꺼내 안경을 닦습니다. 다시 보니 이런 제기랄, 바로 물안개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큰 강에서 피어오르는 그것들과는 달리 좁은 계곡에서 그것도 나무 가지 사이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게 언뜻 언뜻 비치다 보니 마치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카메라를 꺼내 최대한 분위기를 살려 담아보려 하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어두운 데다가 카메라 성능도 좋지 않아서일 겁니다. 제 실력이 부족하던지요.

계속 오릅니다. 오를수록 날씨는 더욱 흐려지기만 합니다. 이번엔 다른 폭포들이 나타납니다. 폭포 이름은 모르겠습니다. 조금 전에 봤던 구천폭포에 버금갈 만큼 높습니다. 널따란 바위 위에 매여진 쇠줄을 잡고 오릅니다. 갑자기 계곡이 굉장히 좁아지는 지점과 만납니다. 여기도 물은 흐릅니다. 이곳은 여름 장마철이 아니면 물구경 하기 힘든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에도 물이 철철 넘쳐 흐릅니다. 계곡이 워낙 좁게 이어지다 보니 한여름에도 굉장히 서늘합니다.

한참을 오르는데 그제서야 산을 내려오는 한 등산객과 만납니다. 깊은 산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만난 사람 마냥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인사를 건넸더니 위쪽은 안개비가 흩뿌리고 있다고 친절히 얘기해줍니다.


#산 아래에는 나팔꽃이 피어 있습니다.

급경사의 계단길을 오르고 또 오르길 50여분(매표소에서), 드디어 대동문과 만납니다. 대동문에도 등산객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회전해서 용암문 방향으로 접어듭니다. 산성을 낀 능선길이 이어집니다. 여기도 을씨년스럽긴 마찬가집니다. 안개비까지 분위기를 더욱 스산하게 만듭니다. 자꾸 뒷덜미가 간지러워집니다. 그럴 때마다 뒤를 흘깃 흘깃 한번씩 쳐다보게 됩니다. 대동문에서 빠른 걸음으로 10여분을 걸으면 약수터가 나옵니다. 한두명의 등산객이 물을 뜨고 있습니다. 바로 위는 대피소입니다. 5분여 더 걸으면 용암문. 도선사 방향으로 탈출합니다. 25분 가파른 경사길을 내려오면 도선사입니다. 도선사에서 우이동 버스 종점까지 30분. 할렐루야 기도원을 지나 만나는 도로변 계곡도 물이 세차게 흐릅니다. 북한산 완전히 물만났습니다.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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