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정명은 기자의 북한산 샅샅이 훑기-도봉산 망월사역→민초샘→다락능선→도봉산역

모처럼 한가로운 토요일입니다. 모처럼…한가로운…토요일…이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습니다. 산에는 가야하는데…. 이미 약속까지 했던 터입니다. 기자가 사는 동네 인근에 살고 있는 지인입니다. 날씨도 잔뜩 흐립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합니다. 그래도 비오는게 낫죠. 더운 날씨보다는 요.

싫어도 일어나야지요. 휴일 아침은 늘상 라면입니다. 아내가 늦잠을 자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직접 끓여서 딸아이와 함께 먹습니다. 산에 가지고 갈 도시락을 쌀까 하다가 포기합니다. 귀찮습니다. 그냥 김밥이나 한두어줄 사는게 편할 것 같습니다.
우산을 챙깁니다. 날씨는 여전합니다. 약속장소로 나갑니다. 게으른 지인이 왠일인지 먼저 나와 있습니다.

"도봉산으로 갑시다!!"

지인은 그냥 따라옵니다. 초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몇 번은 가봤다고 도봉산 어디로 갈거냐고 묻습니다.

오늘 산행지는 망월사역에서 내려 원도봉 계곡을 지나 덕재샘, 망월사 못미쳐 갈래길에서 좌회전, 민초샘으로 오르는 코스입니다. 하산길은 올라가서 생각해 볼 작정입니다. 언제 비가 쏟아져 내릴지 알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날씨가 흐린 데도 전철 안엔 산행복 차림의 등산객들이 많이 눈에 뜨입니다. 산이 좋긴 좋은 모양입니다. 전철 안에선 우산을 파는 상인이 소리를 질러 댑니다. 날씨가 날씨다 보니 잘 팔립니다.

도봉산 역에서 많은 등산객들이 내립니다. 한 정거장을 더 가면 망월사 역입니다. 남쪽 출구 쪽으로 나옵니다. 입구에 산악인 엄홍길 전시관이 있습니다. 맞은 편 분식집에서 한 줄에 1000원짜리 김밥 두 줄을 삽니다. 지인은 아침도 걸렀다고 합니다. 적당히 오르다가 배부터 채워줘야 할 것 같습니다.

초보인 지인 덕분에 산으로 향하는 길은 벌써부터 더디기만 합니다. 음식점들이 주욱 늘어선 곳을 지나면 공사 현장과 마주칩니다. 산을 위압하고도 남을 커다란 다리 기둥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일산에서 사패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을 뚫고 지나는 외곽순환도로 공사현장입니다. 말썽이 많았지요. 일부는 벌써 개통이 됐는데 사패산에서 수락산, 불암산 구간만 아직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산 허리를 자른 채 괴기한 기계음을 울려대며 진행되는 공사 소리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집니다.

시멘트 포장 도로를 거슬러 올라가면 매표소가 나옵니다. 망월매표소입니다. 평상복 차림의 중년 남성과 여성이 매표소 직원과 실랑이를 벌입니다. 요지는 절에 불공 드리러 가는데 왜 입장료를 내야하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매표소 직원이 승리합니다. 돈을 치르고 표를 끊은 두 사람, 그래도 불만이 있는 모양입니다.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디선가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 분명한데 계곡가 음식점에선 벌써 한 판 벌어진 모양입니다.


#물이 쏟아져 내리는 폭포

원도봉 계곡이 이어집니다. 전날 내린 비로 계곡은 물천지입니다.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소리가 시원합니다. 등에 흐르는 땀도 식혀줄 것 같습니다. 땀은 벌써부터 폭포수 마냥 쏟아져 내립니다. 습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개구리 바위

등산로는 촉촉이 젖은 상태입니다. 풀내음이 진합니다. 개구리 바위가 왼편으로 보입니다. 계곡 주변엔 이름모를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 있습니다. 기분 좋습니다.


#촉촉이 젖은 등산로

지인, 헉헉 댑니다. 얼굴이 하얘졌습니다. "아이고 죽겠다"는 소리가 연발탄처럼 쏟아져 나옵니다. 틈만 나면 바위 위에 쭈그리고 앉아버립니다. 전력이 있던 터라 기자 일부러 천천히 걷습니다. 사진도 찍고 하면서 쉴 시간을 벌어줍니다. 그래도 여전히 힘이 부치는 모양입니다. 이제 40대 초반인데…쯧쯧 소리가 절로 납니다.
 
원도봉 계곡을 가로지르는 마지막 다리를 건너 5분여 진행하면 커다란 바위에 조그만 파이프 하나가 꽂혀 있는 약수터가 나옵니다. 바위엔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바위 틈에서 나오는 약수물입니다. 양이 작습니다. 파이프 아래 받쳐놓은 그릇의 물을 먹습니다. 물맛 좋습니다. 이제까지 보다 약간 더 가파른 길이 계속됩니다. 지인은 여전히 힘든가 봅니다. 자꾸 뒤로 처집니다. 그렇게 20여분 오르다 보니 덕재샘이 나옵니다. 덕재샘 인근엔 폭포도 있습니다. 물이 세차게 흘러내립니다. 하산하는 등산객들이 발을 담그고 있습니다. "얼음물보다 더 차갑다"며 즐거워합니다. 그들이 부럽습니다.


#덕재샘 인근의 폭포

조금 더 오르면 세갈래길이 나옵니다. 오른쪽은 망월사를 거쳐 포대능선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왼쪽은 민초샘을 거쳐 역시 포대능선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사실 코스는 오른쪽이 낫습니다. 망월사를 구경할 수도 있고 길도 한적합니다. 왼쪽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급경사입니다. 왼쪽으로 접어듭니다. 지인 고생 좀 할 것입니다.


#민초샘으로 오르는 길에 만난 검은 나무와 흰버섯

등산객들이 갑자기 보이지 않습니다. 하긴 이 코스는 다른 때도 그렇습니다. 대부분이 망월사 코스를 많이 이용하는 탓입니다. 나무가 우거져 있고 분위기도 스산하기만 합니다. 날씨까지 어두워 마치 야간산행을 하는 기분이 들 정돕니다.


#민초샘

쉬었다, 걷다를 30여분(갈래길에서) 드디어 민초샘과 만납니다. 민초샘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영삼 전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고 김동영 전의원이 80년대 초반 민주산악회 시절 이곳에 올랐다가 바위 틈에 고인 물을 보고 사비를 들여 약수터로 만든 뒤 자신의 호(민초)를 따 붙인 것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 

이전에도 몇차례 와 본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도봉산 약수터 중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게 이 민초샘일 겁니다. 바위틈 조그마한 구덩이에 물이 고여 있는데 평상시엔 항상 가물어 바닥이 훤히 드러나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렇지 않군요. 흘러 넘칠 정도로 물이 가득 차 있습니다. 비 때문입니다.

비어버린 물통에 약수를 한 가득 채워 넣습니다. 지인은 이제 좀 몸이 풀리나 봅니다. 얼굴이 환해져 있습니다. 자연의 은덕입니다. 김밥을 먹습니다. 꿀맛입니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지인에게 물으니 무조건, 가장 가까운 곳으로 내려가자고 합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면 포대능선에 오르지 않고 바로 샛길로 빠져 다락능선 방향으로 하산하는 코스입니다. 민초샘에서 다락능선까지 가는 샛길은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민초샘에서 위로 오르는 길이 있는데 그 길 말고 바로 왼쪽 옆으로 난 조그만 길을 찾아야 합니다.


#다락능선에서 본 도봉산 주봉

15분여 걸으면 드디어 다락능선과 만납니다. 다락능선으로 하산을 하다가 중간에 대피소길로 빠집니다. 다락능선은 암벽이 많아 비가 온 뒤에는 다소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지인의 걸음이 갑자기 빨라집니다. 살 맛 나는 모양입니다. 급경사 길입니다. 길이 매우 미끄럽습니다. 진짜 인절미처럼 생긴 인절미바위 인근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에 세수를 합니다. 정말 살 맛 납니다. 죽을 상이었던 지인의 얼굴에 핏기가 돕니다.


#인절미 바위. 정말 인절미 같이 생겼습니다.

대피소 부근에 이르니 아뿔사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배낭에 방수천을 씌웁니다. 우산을 펴지 않고 그냥 내리는 비를 맞습니다. 온 몸은 이미 땀으로 젖을 대로 젖은 상태입니다. 다른 하산객들의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기자의 발걸음도, 지인의 발걸음도 빨라집니다. 그렇게 많은 비가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도봉산 매표소 입구 음식점에서 지인이 막걸리를 사겠다고 합니다. 오늘 산행은 3시간이면 족할 거리를 4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그래도 기분은 최고입니다.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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