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가 못 가면 쉬었다 가더라도?…세상에 이런 변고가!!
가다가 못 가면 쉬었다 가더라도?…세상에 이런 변고가!!
  • 승인 2006.08.2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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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은 기자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의정부→사패능선→포대능선→망월사

오랜만에 날씨가 짜안, 합니다. 기분 좋습니다.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햇볕이 따갑습니다. 이번 산행 역시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지인과 함께입니다. 지인은 얘기했듯 초보 산행가입니다. 항상 헉헉 댑니다. 기자, 성질에 맞지 않게 이 지인과 함께 하는 산행에서는 느림의 미학을 실천해보려 애씁니다. 그래도 소용 없습니다. 항상 힘들어 합니다. 그것도 다소 심하다 할 정도로요. 괜히 같이 왔다 하는 후회가 될 정돕니다. 뭘 그런걸 가지고 그러느냐고 나무라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독자님들도 한 번 겪어 보면 얘기가 달라질 겁니다. 도심 속에서 걸을 때는 그렇지 않은 데 이상하게도 산에만 가면 얼굴이 사색이 됩니다. 산과 궁합이 맞지 않아서 그러는 걸까요.

이번엔 본인이 자원했습니다. 지난번 느림보 산행에서 그래도 상쾌한 기분을 만끽했고, 또 산행후 마시는 막걸리 맛도 꽤 괜찮았던 모양입니다. 

1호선 전철을 타고 의정부역에서 내렸습니다. 서부광장 쪽으로 빠져나갑니다. 근처 김밥집에서 김밥 두 줄을 삽니다. 오늘 산행은 의정부 예술의전당 쪽 등산로를 이용해 의정부 시청뒤 매표소→사패능선→포대능선→만장봉→도봉산공원으로 코스를 잡았습니다.

예술의전당을 가려면 의정부 역에서 서부 광장 쪽으로 빠져 나온 뒤 30여분을 더 걸어야 합니다. 도심을 가로 질러야 하는 다소 지루한 길이지요. 걷습니다. 지인, 그래도 잘 따라옵니다.


#예술의 전당 끝 터널

30분 뒤 예술의전당에 도착했습니다. 등산로는 예술의전당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 끝에 위치한 터널을 지나면 나옵니다. 마악 등산로에 접어들려는 찰나, 지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배어져 나옵니다. 그리고 툭 던져지는 말 "그냥, 집에 가면 안될까…." 이 정도까진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항상 그러는 것이니까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갑니다. 등산로 초입에 약수터가 있습니다. 지인 벌써부터 땀으로 목욕을 하고 있습니다. 약수터를 지나 오르막길. 갑자기 속도가 엄청나게 느려집니다. 지인의 입에서 술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전날 마신 술 기운이 빠져나오는 모양입니다. 역시 항상 그렇듯 천천히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물론 지인을 위한 배려입니다. 그런데 지인의 낯빛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이전에 이미 다 겪은 바입니다. 중간 중간 사진을 찍는 척 하면서 쉴 시간을 줍니다. 그럴 때마다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 앉습니다. 술 냄새는 더 진동합니다.


#약수터를 지나 약간 경사가 진 등산로

그리고 30여 분 뒤 매표소에 도착했습니다. 의정부역에서 1시간 남짓 걸린 셈입니다. "이제 매표소네…" 지인의 입에서 한숨소리가 나옵니다. 그리고 입장료를 지불하고 표를 끊으려는 찰나, "한 사람 것만 끊지…"라는 예기치 못한 말이 기자의 귓속을 파고 듭니다.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완강한 버티기와 끈질긴 설득…결국 기자가 포기합니다. 지인, 그냥 내려가겠답니다. 죽겠답니다.


#의정부 시청뒤 매표소

망월사 역에서 기다릴테니 천천히 다녀오랍니다. 그래도 막걸리는 마시겠다는 심산이겠지요. 이쯤되면 재빨리 두 손 두 발 다 드는 게 현명한 판단입니다. 그러겠노라고 했습니다. 지인 오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어쩌면 차라리 잘 된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능선길을 오릅니다.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혼자서 산행을 온 여성들이 굉장히 씩씩해 보입니다. 다시 지인 생각이 납니다. 쯧쯔쯔…. 만장봉 등 도봉산 주봉들을 거쳐 도봉산 유원지 방향으로 가려던 계획을 바꿔야 합니다. 망월사역으로 가기 위해선요.


#오르다가 내려다본 수락산 쪽 시내 전경

사패능선으로 향하는 능선길은 다채롭습니다. 급경사 오르막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게 하는 가 하면 산책로 같은 평탄한 길이 나와 한숨을 돌리게 합니다. 자연의 배려겠지요. 조물주의 조화겠지요. 중간에 쉴 수 있는 넓은 마당 바위들도 여럿 있습니다. 바위 위에 오르면 회룡사와 의정부 일대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시야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닙니다.


#암벽위에서 내려다본 회룡사

매표소에서 약 20여분, 사패능선과 만납니다. 오른쪽으로 10여분 가면 사패산 정상과 만납니다. 왼쪽이 포대능선을 거쳐 도봉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등산객들이 많습니다. 장마 때문에 속앓이를 하다 반짝하고 날씨가 개니까 앞다퉈 산행에 나선 사람들일 겝니다.


#생명력 1


#생명력 2

망월사역에서 기다리고 있을 지인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땅은 여전히 촉촉합니다. 이럴 때 암벽을 타는 건 상당히 위험합니다. 20여분을 걸으면 회룡사와 송추유원지를 갈 수 있는 네 갈래길과 만납니다. 가족 단위로 온 등산객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또다시 20여분 걸으면 이날 등산의 하이라이트와 마주칩니다.


#산만한 바위틈새로 본 포대능선

족히 수백개는 될 듯한 계단으로 이뤄진 경사길입니다. 지인, 여기까지 왔으면 죽음이었을 겁니다. 산행에 자신 있다는 기자도 이 코스에선 마음을 비웁니다. 그냥 포기하고 천천히 천천히 오르는 것이지요. 중간에 쉼터가 있습니다. 수락산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조그만 바위 쉼터입니다. 배가 고파집니다. 쉬기로 합니다. 김밥을 먹습니다. 집에서 싸온 토마토도 먹습니다. 김밥 두 줄이 순식간에 없어집니다. 잠시 한 숨 돌리다가 일어납니다. 나머지 계단을 오릅니다. 잠시 쉰 덕분인지 발걸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바위에 앉아 세월을 먹는 한 등산객

그리고 15분여 걸으면 드디어 포대능선과 만납니다. 여기서부터는 시야가 확 트입니다.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흐른 땀을 식혀줍니다. 신선대-만장봉-자운봉 등 도봉산 주봉들도 한 눈에 들어옵니다. 능선 암벽 코스를 따라 5분여 내려가면 망월사 방향으로 내려가는 갈래길이 나옵니다. Y계곡 입구 민초샘까지 가서 내려갈까 하다가 이내 포기합니다. 벌써 3시간 남짓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인, 많이 기다릴 것입니다.


#포대능선에서 본 도봉산 주봉

10분여 하산하면 망월사와 만납니다. 언젠가 소개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한자로 望月寺입니다. 달을 바라보는 절이란 의미겠지요. 절이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전망 죽여줍니다. 머얼리 주봉들이 보이고, 아래로는 계곡이 흐르지요. 절 안 암벽 밑엔 약수가 고여 있습니다. 생수통에 물을 채웁니다.


#망월사


#망월사 처마 밑에서 본 도봉산 주봉

내려갑니다. 지난번 소개해 드린 덕재샘 옆 폭포엔 등산객들이 운집해 있습니다. 연이은 폭우로 폭포가 장난이 아닙니다. 등산객들은 저마다 신발을 벗고 물맞이에 분주합니다. 조금 더 내려가면 폭포에서 이어지는 한적하고 깊은 계곡이 나옵니다. 이곳도 온통 물천지입니다. 적당한 곳을 골라 등산화와 윗옷을 벗고 풍덩 뛰어듭니다. 발이 시릴 정도로 물이 차갑습니다. 피로가 풀립니다. 이번 폭우로 피해를 입은 수재민들에게 더 없이 죄스러울 정도로….


#개구리 바위 근처의 기이한 모양의 나무

원도봉 계곡이 이어집니다. 개구리 바위도 여전히 기자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망월매표소에서 시계를 보니 의정부역에서부터 총 4시간여가 소요됐습니다. 한참을 내려와 음식점들이 즐비해있는 곳을 지나니 전화벨이 울립니다. 지인입니다. 슈퍼마켓 앞에서 캔맥주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답니다. 대단합니다. 그 놈의 술…만나면 또 한 잔 해야겠지만요. 여태까지 기다린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그 사이 지인의 얼굴은 환해져 있습니다. 땀을 흠뻑 쏟고 난 기자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요.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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