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연재> 딸과 함께 떠난 경기도 남양주시 천마산-1회

바람이 붑니다. 초겨울을 연상케 합니다. 비가 온다고 했는데…. 바람만 붑니다. 춥습니다. 오랜만에 딸아이와 떠나는 등산길. 기자 오랜만의 휴식일이기도 합니다. 단단히 옷채비에 신경을 씁니다. 도시락을 쌉니다. 먹으러 산에 오르는 딸아이를 위한 것이지요. 왠일로 호락호락 따라나서는 딸아이가 낯설기까지 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며칠 전 사 준 손전화 덕분인 것 같습니다.

"우리 반 애들이 모두 몇인줄 알아?"
"서른 명쯤 되잖아."

"그것보다 더 돼."
"……."

"그런데 핸드폰 안갖고 있는 애가 몇인줄 알아?"
"……."

"나를 포함해서 세 명 밖에 없어."

오래 전부터 시달렸던 터입니다. 그때마다 중학교 입학 때까지만 참으라고 얘기했는데…. 더 이상은 힘들 것 같아 결국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지난 5일 일요일 찬바람 부는 초겨울 날씨에 부녀지간에 동반 산행을 떠날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일찍 일어나서 도시락 준비를 했습니다. 아내가 이것저것 밑반찬들을 싸는 동안에 기자는 김치가 들어간 제육볶음을 준비했습니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메뉴입니다. 같이 가기로 했던 아내는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집에 있기로 했습니다.

"지금 아니면 가을 단풍 구경하기 힘들텐데…"라며 아쉬워합니다.
"어디로 갈꺼야?"

집을 나서면서 딸아이 묻습니다.
"응, 천마산…."
"그게 어디 있는 거야?"

천마산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습니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합니다.
버스 정거장을 향해 가는 동안에도 딸아이는 손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신명 난 모습입니다.

호평동 천마산 등산로 입구에 가는 버스가 청량리에서 있습니다. 165번입니다.
버스는 약 한시간 여를 달려 호평동 종점에 도착합니다. 버스만 타면 멀미를 하는 딸아이는 내내 잠이 들어 있습니다.

딸아이를 깨워 버스에서 내리니 벌써 확연히 다른 풍광이 주변을 에워쌉니다. 딸아이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합니다. 손전화를 꺼내더니 사진을 찍어대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이곳 호평동과 평내 일대는 아주 복잡합니다. 새로 들어선 아파트들로 삭막한 풍경이이지요. 그런데 버스 종점이 있는 등산로 부근은 전혀 다릅니다. 채 개발이 되지 않은 낡은 집들이 줄지어 있고 사방엔 야채가 자라는 텃밭들도 있습니다.

허름한 시골집들 앞에선 직접 지은 배추며 무 등을 조금씩 펼쳐놓고 파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모습도 보입니다.


#입구의 은행나무 군락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은 말그대로 총천연색입니다. 서울에선 구경하기 힘든 풍광입니다. 산 아래엔 은행나무들이 눈부실 정도로 샛노랗게 몸을 치장한 상태로 등산객들의 시선을 붙잡습니다.

"이런 데서 살고 싶지 않아?"
"응, 그런데 저쪽 아래 아파트 촌은 싫어."

딸아이는 살고 싶은 곳까지 기자를 닮았습니다. 아파트를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첨언이 붙습니다.
"어라? 그런데 여기도 가게가 없네…."

아무리 깡촌에서라도 살 수는 있는데, 바로 옆에 가게, 이를테면 슈퍼마켓이 있어야 한다는 게 딸아이의 신조입니다.

매표소 가는 길 입구엔 아예 무리를 이룬 은행나무 군락지도 있습니다. 반은 땅 위에 떨어져 구르고 반은 나무에 매달려 있습니다. 햇빛을 받은 노오란 색 이파리들이 소요를 일으킵니다.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붑니다.



"춥지 않아?"
"응…괜찮아!"

 
#떨어져 내린 은행나무 잎 그리고 노부부가 꺼내 놓은 야채. 오른쪽은 천마산 산행 지도

딸아이 기분이 여전히 좋은 모양입니다. 연신 입에서 감탄사를 뱉어내며 손전화에 달린 카메라로 풍경 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기자도 카메라를 꺼내 은행나무와 울긋불긋 한껏 치장한 산 아래 풍경들을 찍습니다. 마지막 가을을 느끼려는 지 등산객들이 꽤 많습니다.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받지 않습니다. 지난해 왔을 땐 분명히 1000원씩을 받았고, 지금도 매표소 벽에는 어른 1000원, 어린이 300원이라고 쓰여져 있는데요.
공짜 산행, 기분 더 좋습니다.




#샛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단풍.

매표소 옆에 설치돼 있는 산행 안내도를 보며 딸아이 어느 코스로 갈 것인지 묻습니다. 오늘 기자가 잡은 산행 코스는 헬기장-임꺽정 바위를 거쳐 정상까지 오른 뒤 북쪽으로 조금 더 진행, 오남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지난해 한 번 이 코스를 경험했던 적이 있습니다. 오르는 코스는 등산객들이 많은데, 내려가는 코스는 그리 알려지지 않아 한적하기만 합니다. 등산로도 뚜렷이 나 있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코스라서 바람을 피할 수 있고 또 내려가면 오남리 일대의 커다란 저수지 등 멋진 구경거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떨어진 낙엽들 때문에 등산로를 찾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요. 한 번 경험했던 터라 이 역시 크게 문제될 건 없을 것 같습니다.

매표소를 지나 5분여 진행하면 시멘트 포장도로 옆으로 잣나무숲 가는 샛길이 나있습니다. 대부분 등산객들이 이용하는 길입니다. 접어듭니다.

조그만 계곡에서 물이 졸졸졸 흐릅니다. 물 위엔 빨간노란 단풍들이 부유하고 있습니다. 딸아이 사진을 찍습니다.


#잣나무 고사목

약 10여분 오르면 잣나무숲과 만납니다. 한아름은 족히 되고도 남는 거대한 나무들의 군락지입니다. 잣나무에서 이파리들이 떨어져 날립니다. 이색적인 풍경입니다.
딸아이 숨이 차는지 걸음이 느려집니다. "힘들어…" 소리가 연신 나옵니다. 매표소에서 약 30여분 천마산청소년야영학습장이 나옵니다. 시멘트 포장도로와 다시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딸아이 도로위에 털퍼덕 주저앉습니다.


#커다란 크기의 잣나무숲, 그리고 딸아이

"아이고, 힘들어서 못가겠어…."

산행 때마다 겪은 일이지만 매번 난감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그래도 가야지, 여기까지 왔는데…"라며 달래는 수밖에 없습니다.


#청소년야영학습장 인근의 풍경

시멘트 도로를 타고 약 5분여 오르면 넓은 광장이 나오고 도로가 끝납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갑니다.

"얼마나 더 가야돼?"
"이제 시작인데…."

딸아이 투덜대기 시작합니다. 한참을 올라왔는데 왜 이제 시작이냐는 것입니다.
계속 달래다가 포기합니다. 약간 앞장 서 걷습니다. 본격적인 급경사 등산로가 시작됩니다. 딸아이 저만큼 처져서 올라옵니다. 계속 입에선 투덜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중 독보적인 얘기는 "내가 왜 산엘 따라왔는지…"라는 신세 한탄입니다. 본인이 원해서 왔으니 본인을 탓할 수 밖에요.
웃음이 나옵니다.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천마산 산행기는 다음주까지 2회로 나누어 연재됩니다. 2회분에 재미있는 얘깃거리들이 많으니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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