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수령 때려잡던 똘이장군, 평화댐…내 돈을 돌리도!
돼지수령 때려잡던 똘이장군, 평화댐…내 돈을 돌리도!
  • 승인 2008.03.06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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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여성들의 시끌벅적 수다방

<위클리서울>은 이번 주부터 `여성들의 시끌벅적 수다방`이란 방을 만들었습니다. 이 방은 어떤 여성분들이건 참여, 소재 등의 제한 없이 자유롭게 `수다를 떨 수 있는 방`입니다. 일단 여성민우회 회원님들이 초기 참여를 해주고 계시며 때론 남성들의 가정생활 등과 관련된 수다도 게재될 것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메일(juyu22@naver.com)로 수다꺼리(원고량 자유, 사진도 가능)를 보내주시면 언제라도 인터넷신문(www.weeklyseoul.net)과 매주 화요일 발행되는 종이신문 <위클리서울>에 게재될 것입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똘이장군. 애국심 고취, 반공의식 고양을 위해 제작된 바로 그 작품.
박정희의 추천작임에 틀림없는 똘이장군을 초절정 순진함으로 똘똘 뭉친 초등학생 시절, 다른 아이들과 단체관람 했다. 거의 모든 학교의 의무사항이었지 싶다. 하여간 감명도 받았다. 심지어 감상문을 써서 상장도 받았다.


#똘이장군

물론 내가 뛰어난 글재주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상을 받은 건 아니다. 순진했던 그 때의 나는 온갖 나쁜 일을 일삼는 빨간 늑대 얼굴을 가진 공산당(괴뢰군), 그리고 인간의 탈을 쓴 우락부락 화난 얼굴의 돼지 수령 즉 김일성을 온 몸으로 거부하였다. 정의의 똘이장군의 용맹 어린 행동에 박수도 보냈다. 아마도 이런 진심어린 감동이 여실히 드러난 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의 그 감명은 참 오래도록 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까지도 난 공산당이 늑대얼굴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랬기 때문에 궁금했다. 왜 북에서 남파된 간첩을 잡지 못하는 것일까. 늑대얼굴을 알아보는 건 너무 쉬울 것 같은데….  

평화의 댐. 북한이 큰 댐을 만들어 수공을 가하면 서울이 순식간에 물바다가 된다던 그 이야기(이번엔 전두환이다).

똘이장군 이후 반공 포스터와 반공 표어로 점철된 인생을 살던 난 반공사상이 여전히 투철했다. 그러던 어느 날 티비에서 최첨단 그래픽인가 뭔가 확실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여튼 서울이 잠기는 가상 화면을 보며 충격에 휩싸였다. 이를 막기 위해서 평화의 댐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댐 건설을 위한 국민모금운동이 펼쳐지면서 학교에서도 우리에게 돈을 내라고 했다.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액수를 정해주는가. 난 그 댐을 만드는 일에 더 큰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무거운 저금통을 들고 방송국으로 가 소리 없이 전달하였다. 공산당의 만행을 막는 중요한 일에 일조를 한 것 같아 아주 뿌듯했다.

나의 반공의식은 생각보다 더, 무섭도록 투철했다.

중학교 시절, 하굣길의 버스 안에서 수상한 자 발견. 머리는 기름을 발라 단정, 정확한 8:2 가르마, 아래위 너무 새 것으로 보이는 양복, 반짝반짝 빛나는 새 구두. 그러나 진흙이 묻어있다! 윗옷에는 마른 잎 하나가 붙어있다!! 저 불안한 눈동자를 보라, 간첩이다!!! 

간첩으로 의심이 된다면 신고를 해야 하는 것이 국민의 의무라고 생각된 난 조금의 갈등 없이 그 사람을 미행하기로 결심한다. 그 사람과 같이 내려 조용히 뒤를 밟았다. 약 10분을 따라간 끝에 그가 어느 집으로 들어감으로써 미행은 끝이 났고 완벽을 기하기 위해 가까이 가서 문패를 확인했다. 구**(이름은 아직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으나 여기에는 밝히지 않기로 한다). 그 집을 바라보며 가장 가까운 공중전화로 가 바로 113에 신고, 잠시 후 검정색 자가용을 탄 사람들이 왔고 내가 신고한 학생인지를 확인 후 차에 태웠다. 신고를 하게 된 경위를 물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에 대한 비밀은 보장된다는 말을 듣고는 안심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 이후 아무런 연락은 없었다. 난 엉뚱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신고한 것이다. 
 
이 황당한 나의 반공의식이 단순히 재밌고도 웃긴 추억이라기보다는 ‘속았다’는 느낌과 함께 분노와 부끄러움으로 돌아선 것은 정확히 평화의 댐의 실체가 벗겨지면서이다. 이 댐의  사업이 완료된 당시 북한의 금강산댐은 사실상 공사에도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고, 국민의 성금 총액은 661억원, 90년 10월 댐 완공 때의 잔액은 90억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나중에  2단계 증축을 하고 말고 이게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 당시의 가상 시나리오에 학자, 방송, 신문, 정부 출연연구기관까지 총동원되었고, 그 완벽한 여론조작으로 국민을 다 바보로 만들었다는 그 사실에 난 아연질색한 것이다.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행위가 독재, 체제유지를 위한 세뇌였네, 군사문화였네, 불안한 정국을 전환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용이었네, 뭐 머리 시끄러운 말들을 갖다 붙이지 않아도 된다.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인간들이 작당을 하고 어린 나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한 사실, 괜한 사람을 무조건 미워하게 하고 항상 의심의 눈초리로 사람들을 째려보게 하다 결국 한 무고한 시민을 신고까지 하게 한 것, 이게 바로 그들의 죄다. 그래서 난 그들이 싫다.

뭐, 세월도 흐르고 했으니 다 넘어간다 치자. 하지만 아직까지도 나를 열 받게 하는 것, 지금도 용서가 안되는 것이 있다. 그들이 거짓말로, 그러니까 사기를 쳐서 나의 코 묻은 돈, 피 같은 돈을 통째로 뜯어갔다는 사실이다. 내가 박정희와 전두환이 정말 싫은 이유는 이거다. 내 돈을 돌려달라!  한국여성민우회 임혜경 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이 글은 한국여성민우회(www.womenlink.or.kr) 홈페이지 칼럼란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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