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여성들의 시끌벅적 수다방

<위클리서울>은 `여성들의 시끌벅적 수다방`이란 방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이 방은 어떤 여성분들이건 참여, 소재 등의 제한 없이 자유롭게 `수다를 떨 수 있는 방`입니다. 일단 여성민우회 회원님들이 초기 참여를 해주고 계시며 때론 남성들의 가정생활 등과 관련된 수다도 게재될 것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메일(juyu22@naver.com)로 수다꺼리(원고량 자유, 사진도 가능)를 보내주시면 언제라도 인터넷신문(www.weeklyseoul.net)과 매주 화요일 발행되는 종이신문 <위클리서울>에 게재될 것입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천덕꾸러기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부유한 사업가의 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났으나 자신을 낳다가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이유로 형제자매들로부터 `재수 없는 아이`로 미움과 구박을 받고, 새엄마와 아버지의 차별과 무관심, 냉대 속에서 고통스런 어린 시절을 보낸 애덜라인 옌마의 자서전 <차이니즈 신데렐라>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 책은 천덕꾸러기로 태어나고 자란 아이가 가족 관계에서 겪는 불안과 공포, 외로움, 그리고 슬픔들을 아주 섬세하고도 가슴 아프게 그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뤄나간 어린 애덜라인의 생존 과정은 더욱 더 빛난다.

천덕꾸러기로 나고 자란 경험이 한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요즘은 다들 자녀를 하나씩 낳는 추세이기 때문에 딸이든 아들이든 구별 없이 사랑을 받는 듯하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다들 형제가 적어도 셋 이상은 되었고,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이었기에 자녀들에게 차별적으로 주어지는 부모의 물질적·정서적 지원은 성장 과정에서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유년기의 기억들은 유난히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어서 두고두고 추억거리가 되거나 때론 고통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의사가 되어 성공적인 삶을 살았지만 중년기에 이르렀을 때까지도 어린 시절의 고통스런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나 역시 태어났을 때 크게 환영받지 못했고, 오빠 둘을 둔 셋째이자 딸로 태어났기에 위의 남자 형제들에 비해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자랐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닐 수도 있는 이런 경험은 `이등시민의식`으로 발전해서 오랫동안 자기 존재감의 부재에 시달린 적이 있다. 어렸을 때 이렇게 환영받지 못한 경험이 주는 가장 큰 악영향은 `자기 자신과의 불화`인 것 같다. 애덜라인 옌마 역시 자신과의 불화에 시달렸고, 아마도 자서전 쓰기는 자기 치유 과정의 하나였으리라.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만나면 같은 상황을 겪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경험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상담 과정에서 특히 어린 시절에 가족들로부터 적절한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한 사람들, 그 중에서도 태어났을 때부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여성들이 같은 상황을 더욱 고통스럽게 경험하는 것을 지켜보곤 했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한다는 건 사람들에게 깊은 자기 불신과 자기 부정을 심어준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 중 하나가 자기 자신과의 불화로 인해 발생하는 정서들이 아닐까?

사람마다 각각 상황과 이유는 다르지만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외모 때문에, 부모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 등으로 스스로 `이등시민`처럼 느껴졌던 경험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중에서도 태어날 때부터 `이등시민` 취급을 받았던 경험이 한 인간의 영혼에 주는 고통과 딜레마가 가장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딸이라는 이유로 환영받지 못했던 경험도 그 중 하나이다.
 
대학의 여성학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과제물로 낸 에세이에서 나는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딸이라는 이유로 환영받지 못했던 경험, 남자 형제들에 비해 사랑과 관심, 지원을 받지 못한 경험이 자기 부정으로 이어져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신데렐라처럼 미모가 뛰어나거나, <차이니즈 신데렐라>의 저자 애덜라인 옌마처럼 글을 잘 쓰고 공부를 잘하거나, 아니면 어떤 방면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이라면 그래도 그것들을 자신의 자원으로 삼아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부도, 외모도, 재능도, 어디 하나 빛나는 곳이 없는 아이라면 자기 부정에서 벗어나기란 더더욱 힘들지 않을까 싶다.

세대가 한번 더 지나고 나면 이런 식의 소모적인 자기와의 싸움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까? 아마 남녀차별이 존재하는 한 여성들 이등시민의식은 항상 따라다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등시민의식으로 인해 인간이 겪는 고통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그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천덕꾸러기들의 삶이 더욱 빛나는 건 온갖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도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천덕꾸러기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거듭난 사람들의 공통점은 딱 한 가지, 꿈을 꾸는 법을 알았다는 것이다. 더 나은 삶을 향한 욕망과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만 제공된다면 여성들 내면에 존재하는 천덕꾸러기 신데렐라, 미운 오리새끼에게도 희망은 있다. 오늘밤에는 행복한 꿈을 꿔야지!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맨발`(필명) < 이 글은 한국여성민우회(www.womenlink.or.kr) 홈페이지 칼럼란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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