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기자> 설 연휴 3일간의 스케치

드디어 돼지띠의 해 설날이 왔다.
설날이 되면 기분이 너무 좋다. 뭐, 이유를 꼭 얘기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바로 세뱃돈 때문이다. 그냥 세배 한번만 하면 꽤 많은 용돈을 받으니까 기분이 너무 좋다. ㅎㅎ
그러나 설날을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다. 바로 어른들이다. 어른들은 조카나 자식들에게 세뱃돈을 줘야된다. 그리고 엄마들은 또하나 큰 고충이 있다. 설날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차려야 하는 것이다. 하하. 역시 애들이 제일 좋은 것 같다.
아참, 내가 설을 좋아하는 또하나의 이유가 있다. 무엇이냐 하면 바로 사촌언니들과 사촌오빠, 사촌동생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 형제들이 8남매로 대가족인 덕분에 온 식구들이 한번 모이면 완전 시끄럽고 즐겁다. 사촌언니는 록주 언니, 유정 언니, 유진 언니, 수정 언니, 민정 언니가 있고 오빠로는 준호 오빠, 혁이 오빠, 현이 오빠이다. 사촌동생은 수빈이, 현승이, 호진이가 있다.
우리 식구들은 모두 이쁘고, 잘생겼다. 물론 나를 비롯해서…. 아마도 대대손손 물려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설연휴 직후 `위클리서울` 종이신문에 게재가 됐는데 인터넷 게재는 좀 늦었습니다. 독자님들의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설연휴 첫날

나는 설 전날 수빈이와 경복궁에 있는 민속박물관을 갈 계획을 세워두었다. 미리 가는 방법도 알아두고 위치도 확인해 두었다.
설연휴가 시작된 17일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신 엄마는 준비를 서두르셨다. 우리집 설 제사는 해마다 큰집에서 치렀다. 그런데 큰집이 바로 우리집 근처에 있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자주 왕래를 하는 편이다.
엄마가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신 건 바로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엄마는 아침밥도 않드시고 가셨다. 나와 아빠는 좀 더 늦잠을 즐기다가 일어났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를 깨워서 빨리 아침식사를 하러 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날 늦게까지 술을 드신 아빠는 좀처럼 일어나실 생각을 안하셨다. 수차례 실랑이를 벌인 끝에 끝까지 버티던 아빠가 나에게 져서 결국엔 무거운 몸을 일으키셨다. 나의 승리. 나는 얼른 준비를 했다. 왜냐하면 엄청나게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히히.
사실 배고픈 건 정말 못 참는다. 아빠는 일어나서도 느릿느릿 움직이다가 겨우 화장실에 들어갔다. 배가 고프다고 칭얼거리자 아빠는 "10분만에 나올게!"라고 다짐까지 하셨다.
나는 설마 매일 화장실에서 30분을 기본으로 잡던 아빠가 10분만에 나올수 있을까, 했는데 내 기대에서 벗어나지 않고 정확히 30분 후에 나왔다. 아빠는 샤워까지 한 상태였다.
나와서도 느릿느릿 옷을 갈아입고…. 어쨌든 아빠와 나는 대강 집 정리를 한 뒤, 큰 집으로 향했다. 큰집에 도착했을 때, 작은 아빠, 작은 엄마, 호진이, 큰 아빠, 큰 엄마, 수빈이, 엄마가 있었다. 엄마와 큰엄마, 작은 엄마는 음식을 만들고 계셨다. 나는 호진이, 수빈이와 놀다가 수빈이의 머리를 예쁘게 묶어주었다. 이미 가족들은 전부 아침식사를 한 뒤였다. 하긴 그럴만도…벌써 시간은 점심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아빠와 둘이서 작은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 뒤, 민속박물관에 가기 위해 수빈이는 옷을 입었다. 수빈이는 나를 따라하려고 긴코트에, 청바지를 입었다. 히히. 우리 둘이만 가는 것이라서 작은 아빠를 졸라 용돈도 챙겼다. 나는 수빈이의 손을 꼭 잡고 집을 나섰다. 회기역에 도착해서 표를 사서 들어갔다. 전철을 타고 광화문역에 내릴 계획이었다. 어라? 그런데 광화문역에 가는 5호선이 없는 것 아닌가.
할 수 없지. 이럴 땐 묻는 게 최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5호선이 없어~뭐타고 가야돼?"
아빠는 일단 1호선을 타고 종로3가까지 간 뒤 5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난 1호선인 인천행을 타고 종로3가에 내렸다. 종로3가에서 `5`자로 쓰여 있는 안내 표지판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니 갈아타는 곳이 나왔다. 우린 방화행을 타고 한 정거장을 더 가 광화문역에 내렸다.
거기까진 완벽했다. 그런데 출구를 나오고 보니, 갑자기 모든 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며칠 전 알아두었던 민속박물관의 위치가 기억나지 않는 게 아닌가. 누구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그냥 헤매보기로 했다. 막무가내 식으로 이곳 저곳을 두리번 거리며 걷다보니 엉뚱한 곳이 나오는 게 아닌가. 바로 청계천이었다. 마침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민속박물관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청계천이 보인다고 하자, 반대쪽으로 왔다고 하셨다. 아빠는 온 길로 되돌아서 가면 된다고 했으나, 꼭 민속박물관을 갈 필요는 없을 터…. 그래서 그냥 청계천에서 놀기로 했다. 돌다리도 건너고 징검다리도 건너고, 청계천의 역사(?) 사진도 보면서 한시간쯤 놀다가 문득 싫증이 났다. 그래서 중간에 있는 계단을 이용해서 위로 올라왔다. 어라?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도로 표지판도 보고 하면서 한참을 찾았으나 도대체 어디인지 알 길이 없었다. 어차피 오늘은 헤매는 날. 그래 다시 아무 곳으로나 걷자, 는 생각으로 무작정 방향도 잡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설 연휴 시작날이어서 도로변의 음식점 등은 한가했다. 어떤 가게 앞에는 이쁜 백설공주가 서 있기도 했고, 인형들이 정문을 장식하고 있는 술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그렇게 걷기를 30여분, 그런데 당혹스런 일이 생겼다. 갑자기 많이 보던 풍경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 게 아닌가. 찬찬히 주변을 살펴보니 아뿔사, 이곳은 우리가 전철에서 내렸던 바로 광화문역 근처가 아닌가. 세상에 그렇게 한참을 걸었건만 결국 제자리라니….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이전에 친구랑 엄마와 자주 왔던 교보문고가 눈에 띄었다. 수빈이와 잠깐 들러 책 구경을 할까 하는 순간 배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소리. 꼬르르륵∼. 히히. 다시 걸었다. 교보문고에서 종각역까지는 이전에 몇 번 다녀봐서 잘 아는 편이었다. 종각 쪽으로 걸었다. 그곳에 가면 회기역에 가는 1호선 지하철도 있다. 종각 역 근처에 도착하니 햄버거 가게가 눈에 뜨였다. 수빈이와 따로 얘기 나눌 필요도 없이 가게 안으로 직행!! 작은 아빠가 준 용돈으로 큼지막한 햄버거 두 개를 샀다. 아주 맛있게 냠냠. 걷는 걸 싫어하는 수빈이었지만 오늘은 꽤 즐거웠나 보다. 앞으론 자주 수빈이와 시내 구경을 나와야지. 집에 올 때는 별 문제 없었다. 이전에 몇 번 경험한 터였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은 용돈으로 만화책과 비디오를 빌렸다. 수빈이네 집에서 저녁을 먹고, 비디오도 보고, 만화책도 보고, 잠도 자고….

설연휴 두 번째 날
 
다음날은 설날. 온식구들 중에서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났다. 몸이 개운했다. 전날 많이 걸어서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있는데 경기도 남양주시에 사는 큰고모께서 오셨다. 물론 차례를 지내기 위해 일찍 오신 것이었다. 아빠들을 깨우라고 하셨다. 첫 번째로 우리 아빠가 일어나고, 두 번째는 작은 아빠, 마지막으로 큰 아빠가 일어났다. 그래서 아빠들은 밤을 까고, 우리는 씻고 한복을 입고 머리도 예쁘게 단장하고 차례시간을 기다렸다. 차례상이 차려지자 절을 하며 소원을 빌었다. 차례상 위에는 내가 어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진이 올려져 있었다. 난 정씨들 중에선 유일하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본 주인공이다. 헤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가 네 살 때인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 경남 남해에 벚꽃 구경을 가셨다가 타고 계시던 차가 큰 트럭과 부딪치며 한꺼번에 세상을 뜨신 것이었다. 가끔 아빠가 "너, 할아버지랑 할머니 이름 기억나?" 하고 물으실 때가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어렸을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는 시골에 내려가 몇 달간 살기도 했다고 하는데…. 할아버지가 정씨 가문에서 처음 태어난 손주라고 나를 매일 등에 업고 온 동네에 자랑하고 다니셨다는데…. 안타깝다. 기억이 나질 않는게.
차례를 지내면서 난 각별한 경험도 했다. 내가 술을 받아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드린 것이었다. 아빠가 "우리 다은이도 컸으니까,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술 좀 올려봐라"고 얘기했고, 내가 차례상 앞에 앉아 무릎을 꿇고 술잔을 들자 술을 세 번으로 나눠서 따라주셨다. 아빠가 시키는대로 향 앞에서 두바퀴 반을 돌린 뒤 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 나선 절을 했다. 큰엄마와 엄마, 작은엄마도 똑같이 하셨다. 그리고 한 두 차례 더 절을 올린 뒤 마침내 차례상을 치우고 아침식사를 했다. 메뉴는 떡이 들어간 만둣국이었다. 사실 난 만두 보다는 떡을 더 좋아한다.
식사시간이 끝나자 어른들이 세배를 하라고 했다. 난 수빈이, 그리고 얼마전 갓 돌이 지난 호진이와 함께 어른들에게 세배를 했다. 호진이는 작은아빠가 거의 안다시피 절을 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세배를 할 때마다 세뱃돈 주머니가 불룩해졌다. 큰아빠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다고 세뱃돈 외에도 다른 선물을 더 주셨다. 바로 상품권이었다. 그렇게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슬슬 다른 가족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구리시에 사는 둘째고모네가 오셨다. 고모부와 고모, 그리고 준오 오빠와 록주 언니였다. 준오 오빠는 사실 오빠라고 부르기엔 다소 징그러울 정도로 나이차가 좀 난다. 하지만 오빠는 오빠인 법. 난 절대 `요`자를 붙이지 않는다. 록주 언니는 매우 싹싹하고 재미있다. 대학교를 다니다가 간호사를 하고 싶다며 휴학했는데, 간호사 역시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이번에 학교에 다시 다닌다고 했다. 
어른들은 술을 마시고, 얘기도 하고, 고스톱도 치면서 즐겁게 보냈다. 우리는 만화책도 보고 놀이도 하면서 역시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오후가 되어서 역곡에 사시는 막네고모네가 오셨다. 아직 젊으셨던 막네 고모부는 지난해 심각한 병에 걸려 결국 세상을 뜨셨다. 그리고선 처음 맞는 명절. 수정이 언니와 민정이 언니, 혁이 오빠를 보니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밝게 웃는 언니와 오빠가 참 좋았다. 그렇게 설날도 지나갔다. 늦은 밤이 되어선 부천에 사시는 셋째고모네도 오셨다. 덕분에 또 세배를 하고 세뱃돈도 챙기고….^^ 유정이 언니와 유진이 언니, 그리고 현이 오빠와 재미있게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마지막 세 번째날

다음날은 외할머니댁에 가는 날이다. 수빈이네 집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밥을 먹은 뒤 우리 집으로 갔다. 그런데 준비를 하다보니 아뿔사, 내가 핸드폰을 놓고 수빈이네 집에 놓고 온 게 아닌가. 다시 수빈이네 집으로 가는 수밖에….
그런데 앗,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다. 결국에 6층까지 걸어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집에 와서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엄마가 운전을 하고 가는데 갑자기 차 앞쪽에서 자꾸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아빠와 엄마가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차앞 뚜껑을 열어 물을 넣고 다시 출바알. 어라? 그런데 한참을 가다보니 다시 연기가 나는 것이었다. 차를 세우고 다시 물을 부었으나 이번엔 시동도 제대로 걸리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포기. 결국 견인차를 불러서 차를 끌고 외할머니가 사시는 경기도 안산까지 갔다. 외삼촌을 불러내 차를 카센터에 보내고 우리는 가까운 마트에 들러 선물을 샀다. 만둣국으로 식사를 했다. 한참 놀다보니 엄마의 삼촌도 오시고, 엄마 삼촌의 친구도 오시고, 할머니 친구도 오셔서 나는 또 세배를 했다. 자꾸 불룩해지는 나의 세뱃돈주머니. 그만큼 기분도 불룩해졌다. 다음날 아빠와 엄마가 일을 하셔야 하기 때문에 우린 밤 9시가 넘어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하지만 즐거운, 그리고 `불룩한` 설날 연휴였다. 잠자리가 그렇게 달콤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아참, 그래서 세뱃돈을 총 얼마를 받았느냐고? 비밀인데…10만원짜리 상품권 빼고도 아마 20만원은 넘을 걸?? 정다은 기자 <정다은님은 얼마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조만간 중학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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