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들강아지와 '사랑한다' 라는 말
버들강아지와 '사랑한다' 라는 말
  • 승인 2007.03.14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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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버들강아지(갯버들)가 피어 있다. 심술을 부리고 있는 것쯤은 얼마든지 극복해낼 수 있다는 듯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가 없다. 고운 모습은 누구에게나 같은 모양이다.

“붕붕--.”
버들강아지의 유혹에 넘어간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우아한 몸짓과 뛰어난 자태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버들강아지의 몸매뿐만이 아니라 그 향 또한 우뚝하다. 사랑하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을 정도로 진하고 고소하다. 벌들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버들강아지와 벌의 사랑은 봄의 극치다. 봄이 아름다운 요소는 다양하다. 들판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비롯하여 남쪽에서 불어오는 마파람에 이르기까지, 아주 많다. 이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사랑이다. 버들강아지와 벌의 사랑이 빼어난 것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삶을 행복으로 채워주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에 빠지면 두근거리는 설렘을 주체할 수 없다. 오관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아름답게만 보이고 코로 냄새 맡는 것은 모두가 고소하기만 하다. 어디 그뿐인가. 들리는 소리는 감미롭기만 하고 손에 만져지는 것은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다.

사랑은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다. 미운 사람은 봄 햇살에 눈이 녹아버리듯이 사라져버리고 모두가 그렇게 다정하게 보일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랑은 완전하지 않다. 불안한 요소가 있다. 바로 조바심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로 도망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의혹에 빠지게 되면, 고통이 시작된다.

노심초사하는 것이 모든 행복을 지옥으로 추락하게 하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우선 당장의 산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자꾸만 확인하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어찌할 줄을 모르고 방방 뜬다. 눈앞에 있어도 이런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묻고 또 묻는다. 대답을 들어도 마음에 차지 않으니, 되묻는다.

“날 사랑해?”
“사랑한다, 말해줘.”

「사랑한다.」
장자 첫 구절이 떠오른다. 도라고 불리면 이미 도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던가. 입으로 말하는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닌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불안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꾸만 듣고 싶어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한다.」라는 말을 듣지 못하면 참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열정을 동반한다. 주변을 돌아다보면 열정에 휩쓸려 사랑을 남발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라고 쉴 사이 없이 고백을 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사랑한다.」라는 말을 수 없이 많이 듣고 싶어 한다. 그래서 수많은 날들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무슨 날인데, 왜 그 말을 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것이다.

벌은 버들강아지에게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말로 하는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고 있는 사랑이 너무나 숭고하여, 그 것을 훼손시키는 일을 감히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은 장난이 아니요, 영원히 지켜나가야 할 숙명인 줄을 잘 알기에 지켜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옛 어른들의 사랑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입으로 말하는 사랑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은은하게 사랑 표현을 하였다. 왕건에게 풀잎을 띄어 물을 건네주는 지혜가 있었다. 사랑은 은유로 나타낼 때 더욱 아름다워진다. 그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경박하고 경솔한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가시는 듯 돌아오소서.’
가시리의 한 구절이다. 정읍사에서 노래하는 사랑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냄비처럼 금방 달아올랐다가 식어버리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은근하게 나타내고, 있는 듯 없는 듯 이루어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사랑은 절대로 흑백 논리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아예 둘로 나눌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버들강아지와 벌의 모습이 마음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 말로 하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온 몸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어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봄은 사랑의 계절이다. 앵두나무 고을을 설레게 만드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이 아름다운 봄에 입으로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은은하고 숭고한 사랑을 해보자.
keesan@hanmail.net  <춘성(春城) 정기상님은 한국아동문학회,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월간 아동문학 신인상, 월간 문학세계 신인상, 녹색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전북 대덕초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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