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 승인 2008.03.06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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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 여성들의 수다방>

“낙태에 관한 자료를 찾으려고 민우회 홈페이지를 뒤졌는데 자료가 하나도 없네요? 민우회는 낙태에 대한 입장이 뭔가요? 활동을 전혀 안한 건가요? 여성단체인데 어떻게 낙태에 관한 자료가 하나도 없을 수가 있죠?”


얼마전 여성문제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고 지금은 낙태에 대한 리포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한 여성의 전화가 민우회로 걸려왔다. 낙태에 대한 민우회 입장을 묻는 그 분의 질문에 전화를 받은 상근자는 담당자를 찾았고, 오갈 곳 없어 하던 그 전화를 내가 받았다.

“네. 민우회 자료실에는 낙태에 관한 자료가 없을 것입니다. 민우회 내부적으로 낙태를 둘러싼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어도 외부활동으로 펼친 적은 없거든요.”

여기저기(단체들) 낙태에 관한 자료를 찾던 그 분은 지치고 화가 났는지 일단 한 톤이 높아진 목소리였다. “어떻게 여성단체인 민우회가 이렇게 중요한 낙태문제를 안할 수가 있나요? 낙태에 대해 민우회는 찬성인가요? 반대인가요? 혹시 낙태에 대해서 찬성하지 않는 거 아니에요?”     

나는 최근 민우회에 대해 “왜 이러저러한 활동을 하지 않는가? 왜 이렇게 중요한 활동을 너네는 하지 않는가?”라는 비난에 가까운 질문을 가끔 듣곤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답변하거나 그냥 웃고 말지만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나도 나름대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내가 ‘당신’으로부터 왜 이렇게 비난을 들어야 할까? ‘당신’이 말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고 나에게 호통칠 권리는 없는 거 아닌가? 단체에 있는 게 무슨 죄도 아니고….’

그러나 사실 난 한편으로 그 ‘당신’을 이해한다. 그 ‘당신’도 민우회가 하는, 하지만 ‘당신’은 하지 않는 그 운동과 활동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 것이다. 다 중요하고 필요한데 다만 ‘당신’은 당신이 하는 그 운동,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당신’이 성차별적 40세 직급정년 사건에 한마디 거들지 않아도, 생명공학기술에서의 여성인권포럼에 참석하지 않아도, 생리대 면세 캠페인에 서명 한번을 안했어도 민우회의 문제제기에 동의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건 다만 민우회도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는 이야기일 거라고. 우리를 가르치거나 훈계하거나 비난하기 위한 건 아닐 거라고 이해한다.

그러니깐 민우회도 다만 여러 가지 주객관적 상황과 맥락 속에서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 선택과 집중은 달라질 수 있고, 그래서 우리가 소통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그런 이야길 하고 싶다. 그래서 함께 하고자 한다면 먼저 서로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비난하지 말고 제안하라고. 그리고 최종결정은 그 사람, 그 단체의 몫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다시 전화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그 분의 질문(?)에 대해 난 낙태문제는 한국의 현실에서 법제도적, 현실적으로 성별선택의 문제, 적절한(!) 출산의 문제, 정상가족이데올로기, 장애문제, 그리고 여성의 건강권 등 다양한 의제들이 경합되는 주제이기 때문에 낙태를 둘러싼 다양한 여성의 현실이 어떻게 복잡하게 얽혀있는가에 대한 진단과 논의부터 출발해야 하고, 오히려 생명중심공방으로 빠지기 쉬운 찬반논리로 단순화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분은 여전히 ‘민우회는 여성단체이면서 낙태에 대한 입장이 왜 없는지 알 수 없다’ 하며 ‘지금 입장이 없다 하는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냐’ 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은 여성운동이 아니라, 이렇게 중요한 여성이슈를 외면하는 여성단체들에 대해 비판하는 활동을 해야겠다고 하였다.

그랬으면 좋겠다. 의미 있는 활동이 될 것이다. 운동단위, 운동가들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물론 사랑이 더 필요하다^^;). 그것을 스스로 하면 성찰이고, 남이 하면 평가다. 둘 다 필요하다. 비판을 받다 보면 성찰이 되기도 하고 성찰을 하다보면 비판도 의미 있게 들린다. 누구말대로 비판에 성역이란 있을 수 없고, 쓴 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큰다(더이상 크고 싶지 않다는 누구들의 아우성이 들린다.)

시민들의 피드백도 중요하다. 필요하다. 하지만 비난이 되지는 않았으면, 그래서 그것이 서로에게 의미없는 메아리가 되지 말기를 바란다. 말한다고 다 의견이 아니고, 호통은 소통이 아니다.  한국여성민우회 <이 글은 한국여성민우회(www.womenlink.or.kr) 홈페이지 칼럼란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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