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꽃그늘 아래서 파란 하늘을 보다
노란 꽃그늘 아래서 파란 하늘을 보다
  • 승인 2007.04.05 09: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꽃이 피었어요.”
집사람의 감탄사에 건성으로 듣고 넘겼다.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일에 빠져 있었다. 타성에 젖어 있는 몸은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게으름이 배어 있어서, 자세조차 바꾸려 하지 않는다.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괴물이 되어버린 줄도 모르고 안주하고 있었다.

습관은 무섭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고쳐야 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뒤로 미루거나, 문제조차 의식하지 않는다. 집은 행복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공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들어서자마자 완전히 달라져버리는 것이다. 정리정돈은 아예 생각도 할 수 없고, 행동반경은 아예 요지부동으로 한정되어 버린다.

집사람은 이제 지쳤다. 요구 사항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포기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양말에서부터 시작하여 집 안에서의 모든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길 수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이 한숨으로 대신하는 것이었다. 보다 못해 집사람의 목소리가 커졌다.

“베란다에 좀 나와 봐요.”
성화에 어쩔 수가 없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였다가는 집안이 난리가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였다. 그 것은 결코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이길 수 없음을 체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눈치를 보면서 일어나 베란다로 향하였다.

그 곳은 다른 세상이었다. 봄 햇살이 그득 받고 있어 기운이 넘쳐나고 있었다. 언제 싹을 틔어냈는지, 화분에서는 연록의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삐죽 고개를 내민 새순의 모습이 어ㅉ나 아름다운지, 가슴이 설렐 정도였다.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사이에 새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꽃까지 활짝 피워내고 있었다.

꽃 세상은 언제 보아도 우뚝하다. 겨우내 감춰두었던 마음을 시나브로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아무도 몰래 속으로만 키워왔던 고운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고 피워낸 것이다. 수줍어 고개를 제대로 들 수 없는 처녀의 속살이 햇살에 빛나는 것이었다. 맑고 투명한 영혼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나니, 그 자체만으로 감동이다.

꽃을 바라보니,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게으름 피우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꽃은 고객 감동을 통해 스스로를 아름답게 빛내고 있었다. 나의 삶에서 고개들에게 무슨 감동을 주었는지 생각해보니, 부끄럽기만 하다. 감동은커녕 남의 도움만 받고 살아왔다.

고객 감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다 아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태로 일관한 생활 태도는 부끄럽기 짝이 없다.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남에게 피해만 주는 인생이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 꽃을 보니 절감하게 된다. 방 안에서 몸에 밴 게으름을 주체하지 못한 것이 부끄럽기만 하다.

방에서 베란다까지의 거리는 백지장 한 장 차이다. 문턱만 넘으면 되는 어찌 보면 같은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의 모습은 판이하다. 베란다는 햇살로 눈이 부신 화엄의 세상이요, 방안의 세상은 지옥이다. 마음 한번 돌리면 극락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게 된다. 꽃의 속삭임을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개나리가 마음을 물들일 때

노란 개나리가 흔들리고 있다. 멀리서 보아도 선명하다. 주변의 색깔과 대비가 되어 확연하게 구분이 된다. ‘예쁘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노란 꽃부터 피워내고 있으니, 우뚝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나리는 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매화와 산수유가 봄의 시작이라면 개나리는 깊어가는 길목이라고 할 수 있다.

전북 완주군 동상면 일대의 도로가에 개나리가 만발하다. 축 늘어진 가지에 노란 꽃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니, 그렇게 고울 수가 없다. 손을 벌려 유혹하고 있는 듯 하다. 앙증맞은 아기가 환하게 웃으면서 오라고 말하고 있다. 2007년 3월의 끝자락에서 함께 즐기자 하는 듯 하다. 달리는 자동차를 멈추지 않을 수 없다.

스쳐 지나가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앞선다. 노란 꽃그늘 아래에 섰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세상은 온통 노랗다. 눈에 가득 들어오다 넘치게 되니, 마음에까지 배어든다. 순수한 노란 색깔이 자연스럽게 물들여진다.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환해졌다. 정녕 봄이 넘쳐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단순히 보이기 때문에 보는 것 하고는 다르다는 생각을 해본다. 보여 지는 것을 보는 것은 수동적이다. 겉모습만을 볼 수밖에 없어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만을 보게 된다면 다른 모습은 조금도 알 수가 없다. 그 것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감흥도 느낄 수가 없다. 감동은 더더군다나 생각할 수도 없다.

보이는 것이 감동으로 이어지려면 수동적으로 보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좀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어야 한다. 노란 꽃그늘 아래에 서 있을 때처럼 보이는 노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마음까지 물들일 수 있어야 한다. 감동이란 오관을 통해 체험하게 되는 느낌이 객관과 주관이 일치할 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보여 지는 대상과 그 것을 바라보는 주관이 합치되었을 때 공감할 수 있어야 감동은 가능해지는 것이다. 감동이 없는 세상은 무미건조하다. 보여 지는 만을 보게 되면 삭막하다. 들려지는 것만을 듣게 되면 흥겨움으로 이어질 수가 없다. 적극적으로 감지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 해내여 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그 것의 시작은 오관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보는 것, 듣는 것, 맛보는 것, 냄새 맡는 것, 만져지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를 오관을 통해서 감지하는 것만으로는 활기 넘치는 삶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인생은 스스로 창조해가는 것이다. 사람마다 모두 다 다를 수밖에 없다. 남들이 한다고 하여 따라서 하는 것은 메마른 삶일 뿐이다. 물기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건조하여 부딪힐 때마다 소리가 요란할 뿐이다. 정은 찾아볼 수가 없고 짜증나는 시간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 개척해나가야 한다. 유일무이한 길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다른 사람이 걸어간 본적이 없는 길을 갈 때 독특한 인생이 만들어질 수 있다. 자기만의 색깔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순간순간이 활기로 넘쳐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삶에는 단조로움이나 싫증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슨 일을 하던지 즐겁게 되고 저절로 생기는 흥겨움으로 신바람을 내서 추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삶의 시작은 바로 적극적인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개나리꽃을 보고 ‘노란 색이 참 예쁘다’라고 생각한다면 그 것을 끝이 되고 만다. 거기에는 자기만의 색깔이나 독특한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 감흥도 일어나지 않고 감동은 더더군다나 없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노란 개나리꽃을 보고 적극적인 시각으로 감상하게 되면 마음을 물들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나만의 새로운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오늘의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삶에 영향을 주게 된다. 아니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 세상을 체험하게 됨으로서 가지게 되는 자긍심은 매우 크다.

가슴 설레는 두근거림으로 그득 차 있다. 내면을 꽉 채우게 될 뿐만 아니라 과거에 상처받았던 부분까지 치유하게 된다. 흘러간 지난날이지만 오늘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슴에 남아 있는 상처는 오늘을 불행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미래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처를 말끔하게 메워준다.

그 것은 회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보이는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들리는 것을 수동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마음에 메아리칠 수 있도록 듣게 되는 것이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지 알 수 있다.

대아 저수지에 넘실대고 있는 아름다운 도로를 달리다가 조우한 개나리꽃에 취하게 되니, 그렇게 행복해질 수가 없다. 바람에 흔들리는 노랑 물결에 취하여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살아온 지난날에 얽매일 이유는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오늘 이 순간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채워가는 것의 중요성을 알 게 된다.

노란 꽃그늘 아래에서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 세월이 어찌나 빨리 흘러가는지, 야속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새해가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이 지나 4월로 치닫고 있으니, 마음만 급해진다. 그러나 노란 개나리꽃이 마음에 물들여지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 또한 부질없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노란 개나리꽃 자체를 즐기면 되는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keesan@hanmail.net  <춘성(春城) 정기상님은 한국아동문학회,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월간 아동문학 신인상, 월간 문학세계 신인상, 녹색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전북 대덕초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