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의 섬' 인가? '평화의 섬' 인가?
'무기의 섬' 인가? '평화의 섬' 인가?
  • 승인 2007.05.1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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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제언> 제주‘비핵-평화지대화’를 위해-1회

평화의 섬 제주도가 시끄럽다. 정부가 추진중인 해군기지 건설 계획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제주 지역민들 사이에서도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일으켜 온 이 계획이 구체화되면서 평화의 섬을 미군의 동북아 군사기지로 만들려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9일 국방부 앞에선 50개 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도의 해군기지 건설계획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평화 및 통일운동단체 뿐 아니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녹색연합 등 환경운동 단체들도 참여해 제주 해군기지의 건설의 부당성을 성토했다.
참여연대 이태호 협동사무처장은 “정부는 이 군사기지가 자주국방을 위한 것처럼 말하지만 핵잠수함이나 MD무기를 탑재한 이지스함 등의 미군이 정박할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사실은 중국 봉쇄를 표방한 미군의 전초기지로 사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녹색연합 최승국 사무처장은 “제주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라며 “평화의 섬을 지키고 아름다운 자연유산이 보존될 수 있도록 투쟁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공동 기자회견문에서 이들 단체들은 “제주도의 군사기지화를 추구하는 것은 한반도나 동북아 평화를 지키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위협과 군사적 긴장을 자초하는 길”이라며 “제주도가 명실상부한 ‘평화의 섬’으로 바로 서도록 하는 것이 제주 주민들의 삶과 한반도의 비전에도 부합하는 길”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위클리서울>은 이와관련 전문가가 제시하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한 긴급 제언을 2주 연속 기획시리즈로 싣는다. 다음은 평화네트워크 이준규 정책실장이 쓴 `제주 비핵-평화지대화를 위해` 글 전문이다.

제주‘비핵-평화 지대’제안의 배경

6자회담이 재개되고, 그동안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남북관계의 복원을 위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지난 2월의 ‘2.13합의’는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에 대해 구체적으로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여정이 새로운 동력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낙관적 전망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이다.

그러나, 한미동맹 재편과 주한미군 재편 과정은 한반도의 중장기적 비전에 있어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미국의 동맹재편 에서 추진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화’는 오히려 한반도와 한반도 주민들의 입장에서 평화의 새로운 위협요소이며, 한반도 주변의 군비경쟁을 촉발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동맹의‘재편·강화’는 이 지역의 평화와 안보 환경의 새로운 불안요소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불안정한 평화와 안보 환경은 바로 주민들의 평화로운 삶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지역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2006년 2월2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공개한 청와대의 내부문건 ‘주한미군 지역적 역할관련 논란 점검’은 전략적 유연성을 병력이동, 기지사용, 장비 등 3가지 항목으로 구분해놓고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장비 유연성과 관련한 부분인데, 미군의 MD구축과 핵무기 배치 등에 대해 우리 측이 포괄적 양해를 해주는 결과를 초래하는 지에 대한 검토와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한미군의 유연화가, 단지 분쟁지역에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투입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는 한반도 내 주한미군의 MD시스템 구축, 핵무기 배치 가능성 등 매우 민감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최근 미일동맹 재편 과정과 연동되어 주목받고 있는 일본 요코스카의 원자력 항모 모항화(母港化)는 서태평양상 미국 핵전력의 전진배치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또한, 전후 반세기가 넘게 지속되어왔던 일본 ‘비핵3원칙’(핵무기를 갖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원칙)의 무력화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한반도와 한반도의 주민들 또한 이와같이 전진, 증강 배치된 미군의 핵전력의 영향권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하고 있는 미 태평양 제7함대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전역을 작전반경으로 삼고 있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 때문에 제주에 한국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미군 함선이 출입하게 된다면 핵 탑재 혹은 핵추진 미군 함선과 잠수함이 들락날락하게 된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평화의 섬’을 핵탑재 군함과 잠수함, 핵추진 항공모함과 잠수함이 중간기착지로 활용한다면 그것을 ‘평화의 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뿐만이 아니다. 동북아시아에는 기존 강대국(특히, 미국)의 행태를 추종하는 일부 국가들의 움직임과 이에 대한 견제 심리가 충돌하는 퇴행적인 흐름도 존재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의 구축은 사실상,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으로서 동북아시아 지역 분쟁의‘불씨’가 되고 있다. 미국의 MD구축에 대해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것이다. 최근 러시아 군부의 실력자가 폴란드와 체코가 미국의 MD망에 참가하면 러시아의 전략미사일 부대가 폴란드와 체코를 공격목표로 삼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섬으로서 MD를 둘러싼 강대국 간 이전투구 양상이 표면화되고 있다(<연합뉴스>, 2007년 2월17일). 동북아시아 지역도 이러한 강대국 간 이전투구가 언제든지 수면 위로 부상할 수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제주 해군기지를 둘러싼 최근의 일련의 논란도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논란은 평화의 섬이라는‘브랜드’를 제시해 놓고도 그 실내용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백상태로 남겨 놓고 있는 중앙정부의 무능력과 무책임의 지표이다. 또한 온전한 의미의‘평화의 섬 제주’ 만들기에 제주 도민들과 한국의 시민사회가 ‘직접’ 나서지 않는다면‘평화의 섬 제주 구상’이 군사안보 논리에 잠식되어 버리게 될 것이라는 경종(警鐘)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제주도야말로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와 마을을 ‘비핵과 평화의 지대’로 만듦으로써 그 지역에서 핵개발과 핵무기 배치, 핵관련 물질의 이전 등을 거부하는 비핵평화 자치단체운동 실험을 적극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비핵평화자치체 운동’은 그 명칭의 맨 앞에 ‘비핵’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핵(무기)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 듯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뒤에서 해외의 몇몇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비핵평화 자치단체’는 핵과 평화(특히, 비군사/비무장)가 같은 비중으로 다뤄지고 있다.

얼마 전부터 해군은 제주 시민들과 사회단체들의 반대로 중단되었던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제주도에 대규모의 해군기지를 건설하면 제주도의 안전이 증진되고 국가적 차원에서는 군사전략적 유리함과 해상 교통로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국익론’과 ‘안보론’을 주장하고 있다.

국제분쟁 연루 가능성 증가

그러나 제주에 건설될 해군기지는 한미 해군의 중추 기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해군 측도 화순항의 해군기지는 미군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게다가, 해군의 계획에 따르면 제주도에 건설될 해군기지에는 미국의 이지스함과 잠수함 ,혹은 항공모함도 정박할 수 있도록 대규모의 부두를 만들 예정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대만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MD체제에서 탄도미사일 요격이 가능한 SM-3 미사일을 장착한 이지스함을 대거 동아시아에 배치하려는 미국의 계획과 맞물려 있다. 이미 미국은 해상MD시스템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이지스함을 동해에 실전배치해 운용하고 있다. 제주도가 가지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를 본다면, 제주도 해군기지는 미군 해상MD의 전개를 위한 전초기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MD에 참여하라는 요청도 받지 않았고, 참여도 하지 않는다는 한국 정부의 공식입장과도 충돌하는 것이지만,‘평화의 섬’제주라는 이름과도 모순되는 것이다. 제주도는 ‘평화의 섬’이 아니라,‘군사기지의 섬’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수원과 오산평택, 광주 등에 배치 증강되고 있는 PAC3 미사일과 연계되어 제주도는 한반도 남서지역 MD벨트에 편입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해군은 정부의 공식적 입장(미국의 MD에 참여하지 않고, 한국 독자의 한국형 MD를 개발한다.)을 제시하면서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해군이 나서서 아니라고 한다고 ‘아닌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내용적으로는 이미 MD에 편입하고 있다는 의혹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이와 관련된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논란이 되어 왔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렇게 된다면, MD망 구축을 둘러싼 동북아 강대국 간 갈등구조 속에 제주도가 연루(entrapment)될 수밖에 없게 된다. 러시아가 미국의 MD가 배치될 체코와 폴란드의 기지를 미사일 공격 대상으로 삼겠다고 경고한 것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제주도가 미국 MD망의 중요 구성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면 제주도는 항상적으로 공격의 위협에 노출되는 셈이다.

그러나,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MD를 둘러싼 논란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제주 해군기지에는 이지스급 구축함 KDX-3를 주력으로 하는 전략기동함대가 배치될 예정이다. 전략기동함대는 연근해 작전을 위주로 편성된 기존 함대와 달리 제주도 남쪽에서 인도네시아 말라카 해협으로 이어지는 해상 수송로를 보호하는 원해 작전을 담당할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3개 전단 규모로 각 전단은 7000톤급 한국형 이지스 구축함, 4800톤급 한국형 구축함, 대형 수송함(LPX)·중잠수함(SSX) 등 대양에서도 무리 없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함정으로 편성될 것으로 전망된다(<국방일보>, 2005년 4월7일).

이것은 대양해군을 열망하는‘대한민국 해군의 꿈’이 실현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제주도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안전과 평화로운 삶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그 지역에 단순히 군부대가 들어서는 것을 넘어(제주에는 이미 해군 제주방어사령부가 배치되어 있다.) 대규모의 군사기지가 건설된다면 그 만큼의 위험도 증가함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준규 기자 <이준규님은 평화네트워크 정책실장입니다. 기고문은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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