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구나, 시골아!!
오랜만이구나, 시골아!!
  • 승인 2007.05.19 1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린이기자> 중간고사 며칠 앞두고 떠난 시골 나들이

중간고사를 며칠 앞둔 주말. 전에 기사에서 얘기했듯 우리 가족은 시골나들이를 계획했다. 우리 가족만 가는 게 아니고 큰아빠네와 작은아빠, 그리고 셋째고모네까지 모두 함께 가는 것이었다.  난 사실 중학교에 올라가서 처음 보는 시험이라서 그동안 꽤 신경을 써왔다. 다니는 학원에서도 시험 때문에 보충수업까지 들어가 보통 밤 11시가 넘어야 끝나는 일이 많았다. 피곤한 나날.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좋은 성적을 내보겠다는 의지 하나로 참고 공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떠나게 된 시골 나들이. 가기 전, 공부를 해야 한다며 아빠와 엄마에게 "난 집에 있으면서 학원에 나가 공부를 하면 안되겠느냐"고 몇 번 얘기했지만 어차피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며칠 뒤면 할아버지, 할머니 제삿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떠나기로 한 토요일. 아빠는 회사에 출근하시고, 난 학원에 보충수업을 받으러 갔다. 내 보충수업 때문에 출발시간은 학원이 끝나는 오후 3시경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점심도 먹지 못하고 진행된 보충수업이 끝날 무렵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 바로 학원 앞에 와 있다는 것이다.

내려가 보니 큰아빠 차에 엄마와 아빠가 함께 타고 있었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먼저 출발을 한 뒤였다. 우리가 제일 꼴등이였다. 뭐 다 나 때문이었다. 나는 그래도 시골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려고 책도 다 챙겨갔다. 점심을 먹지 않은 나를 위해 엄마와 아빠가 김밥과 만두 등을 사오셨다. 고속도로로 가는 차 안에서 난, 게걸스럽게 음식들을 먹었다.

나는 차 멀미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수학여행을 가건, 수련회를 가건, 차를 타면 잠을 자는 게 속이 편하다. 거기다 전날 시험공부 하느라 충분히 잠을 자지도 못한 상태여서 음식들을 다 먹고나자 졸음이 쏟아졌다. 한참을 자고 있으니 엄마가 깨웠다. 휴게소라는 것이었다. 휴게소에서 과자 한 봉지와 떡볶이, 아이스크림을 샀다. 맛있게 먹으며(사실 이런 맛에 여행가는 것 아니겠는가) 다시 차에 올랐고 차는 무서운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주꾸미

우리 시골은 전라북도 고창. 서울에서 가는데 족히 5시간은 걸린다. 어느순간 다시 잠이 들었고 일어나 보니 벌써 시골집이었다. 이미 밖은 한참 어두워진 뒤였다. 시골집 마당에 차를 세우는데 마당가에선 먼저 도착한 가족들이 숯불을 피워 무엇인가를 굽고 있었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오리고기구이가 아닌가. 셋째고모가 준비해 오신 것이었다. 고모부께서 집을 빙 둘러서 자라고 있는 대나무를 꺾어서 긴 젓가락을 만들어 주셨다.

그래서 나와 수빈이(사촌 동생)는 서로를 먹여주며 아주 맛나게 먹었다. 정말 꿀맛이었다. 조금 있으니 주꾸미도 나왔다. 주꾸미와 낙지 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중에 하나다. 게다가 우리 시골은 바닷가 옆이라서 매년 3월이나 4월이면 주꾸미가 많이 난다고 한다. 그런데 주꾸미 안에 있어야 할 게 없었다. 머릿속에 밥알(사실은 알이다)이 들어 있어야 하는데 맹탕이었던 것이다. 아빠가 주꾸미 철이 지나서 그럴 것이라고 했다. 안타까웠다. 톡톡 터지는 맛이 끝내주는데….




#꽃이 잔뜩 핀 나무들

우리 시골집은 고창읍내에서도 약 40분은 더 들어가는 진짜 외진 시골이어서 화장실도 밖에 따로 있고 멋지고 근사한 한옥집이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고 동네 주민이 관리를 해주는데, 우리가 시골에 갈 때마다 별장처럼 이용하곤 한다. 주변에는 크고 멋진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내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께서 심어 주신 감나무도 너무 잘 자라고 있다. 그러나 더 신기 한 것은 옛날에나 있었을 법한 돼지우리가 우리 시골집 뒷마당 쪽에 지금도 있는 것이다. 물론 돼지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대신 돼지우리 안에는 농기구 등이 잔뜩 쌓여져있다.


#돼지우리

밤늦은 시간. 식사가 끝났다. 난 방으로 들어갔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사촌동생들이 놀자고 자꾸 졸라댔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어른들은, 옆집에 사는 아빠 친구분까지 가세해서 여전히 오리고기와 술 등을 드시고 계셨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밖이 조용해졌다. 어른들도 전부 방안으로 들어와 잠 속으로 빠져든 것이다. 난 혼자서 열심히 공부했다. 밖에선 바람부는 소리만 들렸다. 가끔 개구리 우는 소리도 들렸다. 공부하기에 너무 좋은 분위기였다. 그렇게 혼자서만 잠이 들지 않고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작은 아빠네 아들, 그러니까 나에게는 막내 사촌동생인 호진이가 갑자기 울어대는 것이었다.  호진이는 이제 두 살. 그래서 그런지 한번 터진 울음은 그칠줄 몰랐다.

덕분에 작은엄마는 잠도 못 주무시고 호진이를 달래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엄마가 되려면 참 힘이 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공부를 하다보니까 어느덧 시계는 새벽 3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제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또 일찍 눈을 뜬 나는 다시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수빈이가 자꾸 놀아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수 없이 같이 바닷가에 나가 보기로 했다.

서해바다다. 집에서 걸어서 약 10분이면 도착하는데 이전에 아빠 엄마와 함께 다닐 때와는 가는 길이 많이 달라져있었다. 이전엔 소나무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바닷가에 나갔는데 지금은 아스팔트길이 뚫려 있는 것이었다. 편하긴 했지만 멋이 없었다. 그렇게 바다에 가보니 해변엔 바닷물이 넘실대고 있었다. 시험공부 때문에 답답했던 속이 넓디 넓은 수평선을 바라보니 조금은 트이는 것 같았다. 수빈이와 함께 해변에서 조개껍데기와 살아있는 조개 등을 주우며 놀다가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길이 조금 헷갈려서 좀 헤매야했다.


#쑥을 뜯는 가족들. 가운데가 호진이, 뒤에 보이는 게 시골집.


#호진이. 귀엽죠?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집 바로 밖에 있는 밭둑에서 쑥을 캤다. 엄마와 고모, 큰엄마, 작은엄마, 그리고 호진이까지 모두 나섰다. 예쁜 꽃도 많았다.


#우리가 뜯은 쑥


#새로 상수도 연결 공사를 하느라 바쁜 어른들

아빠와 작은 아빠, 고모부, 큰아빠는 상수도를 새로 연결하시느라고 매우 분주 하셨다. 쑥을 다 캐자 엄마와 큰엄마가 쑥으로 비빔밥을 해먹자고 했다.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큰그룻에 금방 딴 쑥과 다른 나물들을 넣고 고추장으로 쓱싹쓱싹 비벼서 먹는 그 맛. 그것도 집 안이 아니라 밖에서 먹다보니 맛이 훨씬 더 좋은 것 같았다. 수빈이와 나는 거기다 라면까지 먹었다. 상수도 연결을 하시던 어른들은 쑥과 쑥부침개, 비빔밥 등을 안주로 해 막걸리를 드시기도 했다.






#쑥 비빔밥과 막걸리 새참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드디어 상수도 연결공사가 끝이 났다. 이제 선운산 밑에 있는 선산으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러 가야할 시간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내가 세 살때 남해안으로 벚꽃구경을 가셨다가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세상을 떠나셨다. 집에서 선산까지는 차로 약 20분 정도 걸렸다. 도착해서 우리는 바로 짐을 들고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가면서 취나물을 캤다. 나도 꽤 많이 캤다. 그러다보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란히 잠들어 계시는 묘지가 나왔다. 묘지위에 이름모를 잡초들이 잔디 사이로 자라고 있었다. 이것들을 그냥 둘 수는 없지. 나는 초고속으로 그 잡초들을 뽑아냈다. 누군가가 "와, 완전히 기계네, 기계`하는 소리가 들렸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다음은 제사를 드릴 차례. 제사상은 초라했지만 수빈이와 내가 꺾어온 이름모를 예쁜 꽃들 덕분에 화려해 보였다. 제사상엔 오징어, 과일 전 몇 가지만 올라가 있었다. 절을 올린 후엔 다시 잡초를 뽑았다. 거의 다 뽑으니 근사해 졌다. 그래서 내 기분도 좋아지고, 왠지 뿌듯했다.

제사를 다 지내고 내려오면서는 또 취나물이라는 야채를 캤다. 그런데 아빠가 옆길로 새어서 길도 아닌 이상한 쪽으로 취나물을 찾으러 갔다. 나도 따라 갔는데 나무들에 가시가 많이 나 있어서 아빠를 잘 따라가지 못했다. 그런데 한참을 헤치고 아빠 뒤를 쫓고 있는데 훽 뒤돌아선 아빠 하는 말 "여기엔 취나물이 없네…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산 아래로 내려와서 짐을 정리하고 아쉽지만 다시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시골은 참 좋은 곳이다. 올 여름엔 다시 시골에 갈 것이다. 해마다 그래왔으니까. 그리고 벌초도 할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여름에 다시 올때까지 이 예쁜^^; 손녀딸 보고 싶더라도 참고 잘 계세요.

아, 이제 다시 시험이라는 현실이 다가온다.

정다은 기자 <정다은님은 서울 경희여중 1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