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 떨어지니, 민들레 홀씨 되어 날아가고…
배꽃 떨어지니, 민들레 홀씨 되어 날아가고…
  • 승인 2007.05.2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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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정명은 기자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불암산

토요일 오후가 즐겁다. 봄을 맞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한 토요 산행길. 즐거운 이유는 여러 가지다. 모든 일을 홀가분하게 끝낸 다음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음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산행 후 뒷풀이에서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일요일 푹 쉬면 되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 물론 일을 끝내는 시간이 일정치 않다 보니, 사전에 다른 일행들과 산행 약속을 잡지 못하는 단점도 있지만 까짓거 그게 무슨 문제이겠는가. 막걸리 잔에 술 부어줄 동행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토요일마다 같이 산행에 나서기로 선뜻 동의해 준 직장 동료가 있어 고마울 뿐이다.

이번 산행은 불암산이다. 오랜만이다. 지난해 가을에 올랐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신문사 바로 뒤편에 있는 청계천변에서 남양주시 불암동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신문사를 나선 것이 늦은 2시. 버스는 청계천변을 따라 달리다 용두동-제기동-청량리-중랑교-태릉을 거쳐 불암동 종점에 이른다. 가는 길 주변에 나무가 많아 호젓하다. 버스 안은 덥다. 한여름을 방불케 한다. 아직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하기엔 애매한 시기다. 산오르면서 땀 꽤나 흘리겠구만….

종점에 도착하니 3시가 가까워온다. 삼육대학교 앞에서 내려 교정 안 등산로를 이용해 오를까 하다가 포기한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다니던 길로 가자….

버스 종점 인근 슈퍼마켓에서 초콜릿과 생수를 산다. 몇걸음 옮기니 예상했던 대로 사방에 천지인 먹골배나무들에 피어 있던 꽃들이 벌써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다.


#배꽃

이화에 월백하고…. 싯귀가 절로 읊어진다. 떨어져 내리는 배나무꽃을 좇아보니 그 아래엔 또다른 신비가 벌어져 있다. 이미 노란색 자취를 감춰버린 민들레 홀씨다. 투명하게 비치는 털복숭이 동그라미 안에 온 우주가 담겨 있는 듯 하다.


#민들레

처음 나오는 골목길로 접어든다. 남아미술관 방향이다. 군부대 유격훈련장도 있다. 골목길이 무척 정겹다. 좌우는 배밭이다. 연두색 새순이 자라는 나무들로 엮어진 울타리가 꼭 고향집에 온 것 같은 안온함을 준다. 절로 콧노래가 흥얼거려진다.


#고향 같은 안온함을 주는 골목길

새싹이 돋아나는 배나무밭 너머, 불암산 정상의 기암괴석이 웅장하다. 오묘한 조화의 현장이다. 일부 밭엔 지난해엔 없었던 쇠울타리가 설치돼 있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작년 봄엔 아낙네들이 밭에 들어가 나물을 캐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배밭 그리고 불암산

남아미술관과 군부대 유격훈련장 사이로 작은 계곡이 있고 등산로는 그 곁으로 이어진다. 이름모를 꽃들이 앙증맞은 자태로 피어있다. 노란색 파란색 꽃이 사이좋게 피어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벌들이 난다. 계곡엔 물이 흐른다. 

토요 산행 때마다 그랬듯 이번에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뗀다. 3시에 등산을 시작했으니 결코 여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상관없다. 해는 길고 등산로는 짧다. 이렇듯 천천히 걸어도 2시간 30분이면 뚝딱이다.



할머니 한 분이 검은 봉투를 들고 내려오신다. 얼핏 보니 산나물이 들어있는 것 같다. 물으니 기자의 짐작이 맞다. 봉투를 열어보니 나물 종류도 여러 가지다. 이름을 아는 건 두릅 뿐이다.

"전부 다 먹을 수 있는 겁니까?" 우문이다.
"먹을 수 있으니 땄지요." 현답이다.

약 15분여 오르면 계곡길이 끝난다. 약수터가 있다. 조그마한 암벽에 꽃힌 플라스틱 파이프에서 물이 아주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수질 검사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 올 때마다 물을 마신다. 맛만 좋다.



약간의 가파른 언덕길이다. 바닥은 모래다. 숲은 울창하다. 소나무가 많다. 북한산 도봉산과는 또다른 모습이다. 동행 숨이 가빠진다. 온 몸에선 땀이 흐른다. 옷이 젖어든다. 조끼를 벗는다.

종점에서 30여분, 능선과 만난다. 능선을 많은 길을 안고 있다. 중계동이나 상계동, 하계동으로 갈 수도 있고, 삼육대 교정 안으로 갈 수도 있다. 정상 방향은 우회전이다.


#산책로 같은 능선길

지난해에 비해 등산객들이 눈에 띄게 적다. 왜일까. 문득 폐지된 국립공원 입장료가 떠오른다. 이곳 불암산은 이전에도 입장료를 내지 않았다. 때문에 이곳을 찾던 이들이 전부 북한산과 도봉산으로 간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능선길은 급경사와 평탄한 길이 교차한다. 나무 계단을 오르느라 숨이 차는 듯 싶으면 산책로 같은 평탄로가 나온다. 위대한 자연의 배려다.


#소나무 새순이 자라고 있다.

그렇게 30여분 걸으면 제2봉이 나온다. 헬기장이다. 총 1시간 걸렸다. 북한산과 도봉산, 수락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도심은 안개가 낀 듯 뿌옇다. 반대쪽인 경기도 일대는 그렇지 않다. 매연 때문이라고 단정한다.


#경기도 남양주 일대

달라진 모습이 하나 있다. 아이스크림 장수다. 네모지게 생긴 박스 하나 놓고 "시원한 아이스께끼 하나에 천워언!!"을 외쳤었다. 그런데 규모가 커졌다. 커다란 박스가 여러 개 있다. 주변엔 여러 개의 간이 탁자와 의자도 놓여 있다. 막걸리도 파는 모양이다. 불법이다.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상 부근에도 막걸리를 파는 곳이 두군데 있다. 그곳은 장사 잘된다. 동행의 얼굴을 본다. 별로 생각이 없어 보인다. "갑시다!"


#연등

정상을 향해 내려간다. 말이 이상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심하게 내려간다. 10여 분 뒤 다시 심하게 올라간다. 정상 바로 아래 암벽이다. 잠시 주춤한다. 동행의 얼굴을 본다. "그냥 내려가지…"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빨리 가서 막걸리나 먹지…"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래 내려가자. 다시 뒤돌아선다. 중간에 갈래길이 있다. 동북쪽 내리막으로 들어선다. 경사가 급하다. 마사토가 깔려 있어 미끄럽기까지 하다. 조심조심.


#옥천암에서 이름이 바뀐 용화사

10여분 뒤 산중의 호젓한 암자와 만난다. 옥천암이다. 어라? 그런데 이름이 바뀌었다. 용화사다. 무슨 사연이 있을 게다. 발걸음을 재촉한다. 지난해 용의 몸통처럼 길고 힘차게 물이 떨어져 내리던 폭포는 말라붙었다. 비가 오면 다시 장관을 구경할 수 있을 게다.




#희귀한 모양의 바위

20여분 더 내려오면 불암사와 만난다. 입구에 있는 바위 모양이 희귀하다. 해골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입 벌린 상어를 닮은 것도 같다. 불암사는 부처님 탄신일을 앞두고 분주하다.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자동차가 불암사까지 올라온다. 급경사를 오르느라 매연이 뿜어져 나온다. 산 입구 쪽에 넓디 넓은 주차장도 있는데, 굳이 여기까지 자동차를 타고 올라오나….


#불암사



해탈문을 지난다. 해탈문 바로 옆에 주막이 있다. 술과 각종 안주거리를 판다. 커다란 나무 아래 탁자가 놓여져 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막걸리를 주문한다. 안주는 산에서 직접 주워 만들었다는 도토리묵이다. 술이 술∼술 넘어간다. 벌이 난다. 나비가 난다. 연녹색은 진녹색으로 마악 화하고 있다. 순간 모든 것이 충만이다. 행복이다. 해탈이다. 감사한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신 자연님에게….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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