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철희의 바라래 살어리랏다>

전설 속에 묻힌 조개가 있다. 바로 `농합`이다. 농합은 계화도 갯벌에서 60년대까지 살았다고 한다. 동진강 만경강이 계화도 앞뒤를 휘돌아 가력도 쪽으로 빠지며 아주 멋진 하구갯벌을 차려놓았었는데 농합은 바로 그곳의 큰 어른조개였다.

계화도 사람들은 지금도 농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먼저 계화도 양지마을에 사는 이복순(79세)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그전에는 농합이라고… 이(양 손을 펴보이며)만이나 헌디, 파도 씨게 친 날 개에 나가면 허옇게 널렸어, 무거워서 다 못 주서오기 땜에 그 자리에서 까서 살만 꼬지에 꿰어 갖고 왔어. 그런디 지금은 없어, 계화도 간척(1963년에 시작) 시작험서 없어졌어…."


농합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냉동실에 보관해 둔 조개를 들고 노인정으로 달려가 이복순 할머니에게 확인해 본 결과 그 조개는 농합이 아니라 말조개(현지명, 학명은 `우럭`)라고 했다.


이복순 할머니는 농합의 크기를 설명할 때 양 손을 펴 보이며, 어른 두 손바닥 합친 것만큼 컸다고 증언한다. 또 계화도 사는 김한태 씨는 "어찌나 크고 속살이 실한지 김치찌개 끓일 때 하나만 까 넣어도 일가족이 포식하고도 남았지…"라고 증언한다.
그런데 농합은 계화도 간척과 함께 전설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어느 집 뒷들 장독대 옆 조개무지에서라도 그 웅대한 모습이 남아있으면 좋으련만…계화도 일대를 다 뒤져도 그 어디에도 농합 흔적은 없었다.

이런 내 모습이 보기에 안타까웠던지 계화도 사는 김봉수 씨는 "여수 어물전을 뒤지면 혹 있을지 모르니까 언제 한 번 나하고 같이 가봅시다"고 제안한다.

그러던 차에 몇 해 전 농발게 사이트에 계화도 갯벌에서 농합을 찾았노라는 글이 올라왔다. 냉동실에 잘 보관해 놓으라고 부탁해놓고는 곧장 계화도로 달려갔다.

그러나 농합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냉동실에 보관해 둔 조개를 들고 노인정으로 달려가 이복순 할머니에게 확인해 본 결과 그 조개는 농합이 아니라 말조개(현지명, 학명은 `우럭`)라고 했다. 역시 양손바닥을 펴보이며 "농합은 이 조개보다 훨씬 더 커" 하시며, 모양은 백합을 닮았고, 색은 흰색을 띤다고 하였다. 농합이 그 어느 곳에 살아 있기나 하는 것일까. 계화도에서만 유일하게 생존하다가 멸한 것은 아닐까.

작년 4월 21일 새만금 물길이 막혔다. 하구갯벌을 선호하는 백합은 남한에서는 유일하게 새만금에 생존해 있었는데 새만금 끝막이로 인해 백합도 농합처럼 전설 속에 묻힐 운명에 놓여 있다. 뿐만이 아니라 죽합, 동죽, 우즐기, 펄돌맛조개, 가무락조개, 계화도조개, 종밋조개, 띠조개 등도 부안의 갯벌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출 것이다.

우럭조개는 민물이 유입되는 하구의 모래펄 갯벌에 사는데 계화도 갯벌에서 드물게 발견된다. 조가비의 길이는 약 10cm 정도의 장란형으로 얇으며 회백색이다. 껍데기 표면은 매끈하고 각피는 갈색이다. 수관은 입수관과 출수관이 합쳐져 하나로 되어 있어 굵고 길며 각피에 싸여 있는데 맛이 좋아 초밥 재료로 쓴다. 

<허철희님은 전북 부안지역에서 활동하는 생태 환경 전문가로 현재 `부안21`을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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