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여성을 적(敵)으로 만들도록 길들이는 사회
여성이 여성을 적(敵)으로 만들도록 길들이는 사회
  • 승인 2008.03.06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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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방>명예남성과 알파 걸 그리고 무임승차자-1회

요즘은 교과서에서부터 sex/gender 개념을 배우며, 양성성을 고루 갖추는 것의 필요성을 교육받고 있다. 이런 시기에 사실 성차별이나 성폭력, 남녀평등이나 남녀를 떼어놓고라도 평등을 얘기하는 것은 먹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지루하기 그지없다.

대학의 교양수업을 하다보면 현실적으로 남학생들에 비해 모든 면에서 월등히 뛰어난 여학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수업에 응하는 자세, 과제 수행 능력, 질문과 발표, 토론, 리더쉽, 그 어느 것에서도 남학생들과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우세하다.
오히려 주눅 들고 범생이 기질이 다분해 보이는 남학생들이 간간이 있을 뿐이다.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여학생들이 스스로를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허탈할 뿐이다.

왜냐하면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는 말을 확고하게 잔존하게 하는 것 마냥 자신은 더 이상 약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여자가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성차별이나 성희롱, 여타의 차별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런 불행한 일들은 바보 같은 얘들이나 경험하는 것’이지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 듣고 있는 여학생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절대 아니다.

바로 그 자리에 소리 없이 설자리를 잃어가는 것 마냥 작아지고 있는 내가 있다.
‘너희들이 대학 졸업하고 당해봐라’라는 말이 (심리적으로)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그렇게 말 할 순 없는 것 아닌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은 공공연하게, 특정의 맥락에서 여전히 여성들의 안팎을 넘나들며 횡행하고 있다.

나 개인도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에 콧방귀를 끼지만 마음속에서는 일면 맞는 얘기처럼 체감되기도 한다. 물론 체감의 맥락은 다르겠지만.

다른 이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나 나의 경우는 ‘명예남성’, ‘알파걸’, 그리고 ‘무임승차자’들이 “여자의 적”을 “여자로”만드는 것에 공모하고 있다고 본다.

먼저 페미니스트(원래 feminist 라는 말은 1871년 프랑스 의학서적에서 남성 환자들의 성적 발달이 정지되는 것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으며, 남성적이라 여겨지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여성들을 묘사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즉, 의학적으로는 남성의 여성화, 정치적으로는 여성의 남성화를 묘사하는 말이었다)들 내부의 맥락에서 볼 때, 명예남성은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문화와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남성화`한 여성이라 할 수 있다. 남성과 대등해 지기 위해 남성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사고하거나 하는 것을 ‘가장된 남성’ 혹은 ‘남성인체 하는 여성’으로 말하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성(sex)은 여성이나 스스로를 여성으로 정체화할 필요를 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성’이라 딱히 말하기 어려운 지점까지를 내포하고 있다.

알파걸(alpha girl이란 부모의 적극적인 지원과 지지 속에 자라 학업과 운동, 인간관계 및 리더쉽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엘리트 소녀들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그리스어의 첫 자모를 따서 만든 것으로 최고의 여성, 1순위, 탁월한 여성을 뜻한다)은 지금까지의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의 성과를 기반으로 성장했으며, 기존의 세대가 갖지 못한 역할 모델(role model)을 보고 자란 자존감과 자신감이 넘쳐나는 여성들이다. 참고로 적어도 내가 국무총리나 국회의원,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비웃었고, 버스운전기사나 건설업은 내가 할 수 있는 역할, 혹은 하고 싶은 역할의 목록에 포함조차 되지 않았다. 그 당시 현존했던 가장 훌륭한 역할모델은 ‘현모양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갖는 역할 모델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며, 여전히 성별을 넘나들면서 역할 모델을 찾지는 않는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소년의 역할모델이 마돈나인 적은 있으나, 성공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역할 모델은 본인이 더 이상 ‘여성’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여성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쿨(cool)하게 결별할 수 없는 여운을 남긴다.

나와는 ‘다른’ 부모의 지원과 지지 속에서 성장했고,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라는 말을 이해하지도, 이 말에 감동조차 받지도 않았을 것이며, 하고자 하는 일과 살고자 하는 삶을 마음껏 누리는 다른 이들을 눈으로 보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손상 받지 않고 자란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자원임에 틀림없다. 남녀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이데올로기를 벗은 이들은 여성운동의 세례(여성혁명의 딸들이지만)를 받았지만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할 필요를 느끼진 못한다. 이미 남자아이들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자라는 점 때문에 제약받지 않는다.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이 여자인 것이다. 이들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평등주의자로 자신을 정체화한다.

명예남성이 남성성과 동일시를 한 것에 비해 알파걸은 남성성에 동화된 여성은 아니나, 이들 모두 ‘약한 존재=여성’의 등식을 내면화하고 자신을 다른 영역으로 범주화하고 있다는 공통성을 갖는다.

이는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성의 차이가 체계적 역사적으로 구축되어온 가부장제의 한 이면이며, 여성 개인을 뛰어넘어 여성 전반에 씌워놓은 차별임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여성들과의 차별성을 개인의 남(여)다르고 뛰어난 능력에서 찾는 것이다.
자신은 그런 여성들과 다르기 때문에 더 이상 여성이 아니다.

이 때 여성은 지워지고 ‘개인’이 남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들은 무임승차자(free rider)이다.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더 열악한 처지에 있거나 자원을 많이 가지지 못한 여성들을 ‘약한’ 여성, ‘못난’ 여성으로 사고할 정당성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로미오(필명)<이 글은 한국여성민우회(womenlink.or.kr) 홈페이지 칼럼란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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