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정명은 기자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칼바위능선

화창하다, 란 표현이 부족하다. 인간의 용어란…. 비온 뒤의 깨끗한 하늘, 깨끗한 시야…이런 날 북한산 서부능선에선 인천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서부능선이 아니라서 아쉽다. 여긴 동북부의 칼바위능선이다.


#정릉계곡

정릉에서 출발했다. 매표소 지나자 마자 바로 나오는 갈래길에서 우회전했다. 처음 가보는 길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북한산사무소가 있다. 보문사라는 절도 있다.


#오르는 길에 만난 풍경


#북한산 사무소


#다리는 피곤하게 만드는 시멘트길

`처음`이란 말은 항상 설레임을 동반한다. 그런데 이곳은 아니다. 설레였던 마음은 채 몇발자국 떼기도 전에 실망으로 변하고 만다. 등산로가 원인이다. 두꺼운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이어진다. 북한산 사무소를 지나서도 시멘트 길은 계속된다. 길도 넓다.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다.


#보문사


#보문사 동자승

30여분 걸으면 길이 끝난다. 언저리에 산사가 있다. 보문사다. 시멘트 포장도로의 원인이다. 이해는 하겠지만 짜증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일 때가 좋을 텐데…. 보문사는 공사가 한창이다. 고요한 주변 풍광과도 배치되는 모습이다. 시멘트 포장길 때문에 모든 게 비뚤어져 보이는 것일 게다. 흙길을 오를 때보다 몇십배는 더 피곤을 느낀다. 어쩐지 등산객들도 별로 보이지 않더라니…. 보문사 한쪽 귀퉁이 동자승들의 해맑은 모습으로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 본격적인 흙길이 이어진다. 오르는 길은 칼바위 매표소에서 올라오는 칼바위능선으로 향한다. 길은 좁다. 풀과 나무에서 향긋한 내음이 풍겨나온다. 숨을 깊게 들이쉰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가슴 언저리에 얹혀져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주먹만한 불덩어리가 하나가 사그라든다. 일주일 동안 기자를 괴롭혔던 놈이다. 그 불덩어리가 사그라든 빈 공간에 새로운 놈들이 채워진다. 기분이 상쾌해진다.


#가슴을 확 트이게 하는 전경

매표소, 그러니까 탐방지원센터에서 1.5km를 진행하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인다. 능선이다. 칼바위능선이다. 우회전하면 칼바위매표소를 거쳐 미아동쪽 하산길이다. 좌회전하려다 잠시 걸음을 멈춘다. 색다르게 다가온 도심의 모습 때문이다. 저 멀리 있는 게 분명한 데 모든 게 너무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얀 구름 흩뿌려져 있고 그 아래 선명한 도시가 자리하고 있다. 오랜만이다. 이런 광경. 그 건너엔 또다른 산들이 자리하고 있다. 수락산과 불암산이다. 멋지다. 칼바위 매표소 쪽에서 올라온 이들이 연신 환호성을 지른다. 일년 내내 매연에, 황사에 시달리는 도시에서 이런 광경은 드물다. 기자도 올들어선 처음 보는 것 같다. 가슴이 확 트인다. 산들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누구의 영혼이 잠자고 있을까.

등산로 중간에 조그마한 묏등이 있다. 등산객들의 발길 때문인지 여기저기 허물어진 모습이 쓸쓸함을 자아낸다. 누구의 영혼이 잠들어 있을까.

오른다. 등산객들이 꽤 많다. 어느 순간 커다란 봉우리가 시야를 막아선다. 칼바위능선 정상이다. 가 본지 오래됐다. 오늘은 필히 오르리라, 다짐한 터이다.

칼바위능선 갈래길에서 다시 20여분, 또다른 갈래길과 만난다. 좌회전하면 정릉계곡, 우회전하면 아카데미하우스 방향이다. 칼바위 정상에 오르려면 직진해야 한다. 잠시 주춤하는 동행을 재촉해 걸음을 옮긴다. 소소한 암벽길이 이어지다가 커다란 암릉과 부딪힌다. 올라야 한다. 칼바위 정상이 머지 않았다. 바위의 모양새들이 달라진다. 칼 모양이다. 5분여 오르면 다시 능선이다. 오르락 내리락 칼바위 정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좌우론 절경이 펼쳐진다. 이름값 하는 현장이다. 저 멀리엔 북한산 주봉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시원하다. 왼쪽으론 형제봉과 보현봉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조심조심 암벽을 넘어 내려선다. 위험 구간이다. 자칫 잘못했다간 사고 나기 십상이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비슷한 모양의 봉우리가 두개, 그래서 형제봉.


#모 족벌 교회의 모 유명 목사가 예수님을 만났다나...보현봉


#칼바위 정상 인근의 절벽


#칼바위능선 정상


#칼바위능선에서 본 북한산 주봉. 왼쪽이 만경대, 오른쪽이 인수봉이다.

5분여 뒤, 주능선과 만난다. 보국문과 대동문 사이다. 우회전한다. 늦은 시간인데도 등산객들이 많다. 산책로 같은 능선길이 칼바위를 넘어선 기자의 노고(?)를 치하하는 듯 하다. 대동문이 나온다. 광장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이곳으로 탈출을 할까, 하다가 동행의 양해를 구한다. 조금 더 가기로 한다. 목적지는 용암문이다. 가는 길, 산딸나무가 하얀 분신을 내밀고 있다. 산성은 얼마전 새로 단장한 것이다. 새하얗게 빛나는 화강암이 낯설다. 정감이 가질 않는다. 이리 꼬불 저리 꼬불 등산로가 이어진다. 용암문 못미처 산장이 나온다. 산장 아래엔 약수터가 있다. 물 맛 좋다. 북한산 주능선의 유일한 약수터일 게다. 대동문에서 20여분, 드디어 용암문이다. 용암문 바로 앞에도 산딸나무가 있다. 탈출한다. 급경사 길이 이어진다. 도선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음습하고 젖어 있다. 커다란 나무들 때문이다. 조그만 계곡에선 물이 졸졸졸 흘러내린다. 도선사까지 하산로는 짧다. 경사가 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20여분이면 닿는다. 도선사 마당 한 켠의 커다란 항아리들이 정겹다. 다리를 건너면 도선사 바로 앞이다. 탐방지원센터가 있다.

토요일이라서인지 사찰 내부는 한가하다.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목탁소리가 마음을 가라앉힌다. 도선사를 처음 경험한 동행, 한참동안이나 절 안을 기웃거린다. 주차장이 있는 쪽으로 나온다. 광장이다. 광장 한 켠에 음식점들이 있다. 많은 등산객들이 제각각 모여 앉아 막걸리 등을 마시며 뒷담을 나누고 있다. 산에서 받은 정기 때문인지, 막걸리 기운 때문인지 얼굴들이 벌겋게 상기돼 있다. 한사발 할까 하다가 그냥 내려가기로 한다. 아스팔트길이다. 짜증난다. 할 수 없다. 우이동 버스종점까지 족히 30분은 걸어가야 한다. 그게 싫어 도선사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이용하는 등산객들도 많다.

우이동 종점까지 총 3시간 30분 걸렸다. 도봉산 주봉들 너머로 해가 사라졌다. 슬슬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해가 짧아지고 있다. 조만간 야간산행을 계획하고 있다. 독자님들에게 서울의 색다른 모습을 전해드릴 것이다. 많이 기대해주시길….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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