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공화국 전락한 농민 위한 금융기관 '농협'

농민을 위한 금융기관을 표방한 농협이 비리로 얼룩지고 있다.
올 초 현대 유니콘스 프로야구단 인수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던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이 사옥 부지 매각과 관련해 현대자동차로부터 3억원을 받은 혐의에 유죄가 인정돼 법정구속됐다. 또 평창의 한 농협 여직원은 `명품` 중독에 빠져 12억원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이밖에 전남 순천에서는 농협상품을 납품하는 비자금 명목으로 농협자금 수억원을 횡령해 약간의 돈을 쓰고 나머지는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로 간부가 조사를 받는 등 회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앞다퉈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
농협 안팎에서는 자산 156조원에 이르는 "공룡 같은 조직임에도 내부 감시 감독 체계가 허술한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 회장 뇌물수수혐의 법정구속

현대자동차에 양재동의 하나로마트 부지를 매각해 주고 3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원심을 깨고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정 회장은 2005년 12월 양재동 농협 하나로마트 부지 285평을 66억2000만원에 현대차에 파는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었다.
농협으로부터 하나로마트 부지를 매입한 현대자동차는 사옥을 증축하면서 건축 면적을 대폭 늘릴 수 있었고 정 회장에게 현금 3억원이 든 가방을 넘겨줬다.
검찰은 정 회장이 현대로부터 뇌물을 받고 특혜를 준 것으로 보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정 회장을 기소했다.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는 농협중앙회장인 정 회장을 공무원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농협법 개정으로 농협중앙회는 정부의 관리를 받는 기업으로 볼 수 없고, 중앙회의 수장인 정 회장도 공무원이 아니므로, 공무원의 뇌물 수수에만 해당되는 특가법을 정 회장에게 적용한 것은 위법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정 회장을 공무원으로 봐야 한다며 특가법상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해 징역 5년에 추징금 1300만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3억원이라는 거액의 현금을 호텔 밀실에서 받았다는 점에서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정 회장이 64세로 고령이지만 법정구속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농협중앙회가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업무의 공공성이 현저해 특가법이 지정하고 있는 정부관리기업으로 볼 수 있다"며 "정 회장을 공무원으로 봐 특가법을 적용한 검찰 기소는 적법하다"고 설명했다.
이로서 1988년 선출직으로 바뀐 뒤 뽑힌 역대 회장 3명이 모두 비리에 연루돼 구속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여직원 12억여 원 공금횡령 구속

같은날 강원도 평창에서는 농협 여직원이 12억여 원의 공급을 횡령한 협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지난 20일 공금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강원 평창군 농협 여직원 A(26)씨의 집을 압수수색한 경찰 관계자는 혀를 내둘렀다. A씨 집은 발리 구찌 루이뷔통 프라다 샤넬 등 세계적인 명품 의류는 물론 옷 신발 구두 액세서리 가방 벨트 등이 빼곡히 차있어 마치 `명품 백화점`을 방불케 했다.
A씨의 명품 구입에 사용된 돈은 다름아닌 농협에 입금된 각종 세금들이다.
경찰에 따르면 세금 수납 담당인 A씨는 입사 1년 후인 2004년 4월 1000만원의 결손금이 생기자 이를 메우기 위해 300만원의 공금에 손을 대면서 범죄의 수렁에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다. 입금된 돈을 빼낸 후 매월 말에 다른 공금으로 돌려 막는 수법으로 입금 담당자들을 감쪽같이 속였다.
A씨는 점점 대담해졌다. 지난달 27일에는 K에너지로부터 산림청 입금 의뢰를 받은 농어촌구조개선 특별회계자금 340여 만원을 입금하지 않고 생활비로 쓰는 등 지난 12일까지 3년여 동안 44회에 걸쳐 무려 12억5580여 만원을 빼냈다. 횡령한 돈 가운데는 국세와 도세 등도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A씨가 이렇게 빼낸 돈으로 주말마다 서울의 유명백화점에서 구입한 명품 의류는 900여 점, 가방과 구두는 각 100여 점에 이른다는게 경찰 설명이다. A씨 집에서는 명품 의류 500여 점이 가격표를 떼지도 않은 상태로 발견됐다.
경찰은 "A씨가 결혼을 앞두고 있으며, 결혼상대자도 낭비벽이 심한 점을 우려하고 있었다"며 "부모에게는 애인이 사줬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밝혔다.

리베이트 상무 구속, 수백억대 부실 대출도

농협직원들의 비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전남 순천에서는 대형할인매장에 리베이트를 건네는 명목으로 회사돈을 빼내 개인용도로 사용한 농협 상무 등이 검찰에 구속기소됐다.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은 대형 할인매장에 납품하는 업체로부터 리베이트 명목으로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전남 순천시 모 할인매장 부장 38살 노모 씨 등 대형 할인매장 직원 3명을 구속기소하고 회삿돈을 빼내 이들에게 리베이트로 건네고 나머지는 개인용도로 쓴 혐의로 순천농협 상무 45살 황모 씨 등 2명을 함께 구속기소했다.
황씨는 농협자금 3억7000여 만원을 횡령해 이 가운데 농협상품을 납품하는 대가 등으로 3 500만원을 쓰고 나머지는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농협 부천지점은 수백억원대의 부실대출 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 11일 수원지검 부천지청은 전직 농협 직원 A씨가 퇴직 이후 건설 사업 관련 대출을 받는 과정에 불법이나 부실이 있었는지 수사 중이다.
A씨는 1999년까지 농협 부천지점에 근무하다 퇴사 후 S건설업체를 세워 2002년부터 전국 10여 개 농협 지점에서 1890억원(현재 잔액 기준)을 대출받았다.
농협은 지난해 8월 내부감사에서 A씨와 S사가 위조 감정평가서로 감정가를 부풀려 44억원을 대출받은 사실을 확인, 검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또 농협이 A씨에 대한 부실대출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해당 지역의 농협직원과 감정가를 부풀린 감정사 등에 대한 수사도 벌이고 있다. 김범석 기자 kim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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