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정명은 기자의 딸과 함께 떠난 불암산 산행기

오랜만에 딸아이와 나섰다. 작년 늦가을 남양주시에 있는 천마산을 오른 이후 처음이다. 어렸을 땐 곧잘 따라 나서곤 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나이가 한 살씩 더 많아질수록 가지 않으려 한다. 시간이 없는 것도 문제다. 요즘 학생들, 나이와 학년을 떠나 모두 피해자다. 학벌과 잘못된 교육 풍토로 인해 짓밟히는…. 학원에 다니던 딸아이, 지금은 다니지 않는다. 본인이 원했고 그러자고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내심은 불안하다. 혹, 성적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모든 부모의 심정일 것이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쉽지만은 않다.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고 해서 시간이 나는 건 아니다. 학원 가지 않는 대신 더 빽빽하게 짜여진 하루 스케줄. 빈틈이 없을 정도다. 게다가 모처럼 한가한 휴일엔 친구 생일이다 뭐다 해서 산에 간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모처럼 휴일 틈이 났다. 딸도 웬일인지 선뜻 따라나서겠다고 한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물론 저간의 사정을 조금은 안다. 바로 최근들어 급속도로 불어난 몸무게다. 이전부터 살 빼는 덴 등산만큼 좋은 게 없다고 입에 바르듯 얘기했던 기자다. 그게 씨가 먹힌 게다.


아침, 도시락을 준비한다. 이거 없으면 큰 일 난다. 산행 시간 내내 괴롭힘을 당해야 한다. 게다가 초콜릿 등 간단한 간식거리도 물론이다. 준비를 마치고 나니 해가 중천에 떠 있다. 아내는 아직도 취침중. 집을 나선다. 어디로 갈까? 물었더니 머뭇거릴 여유도 없이 답변 나온다. 불암산!! 딸아이 서울 근교에 있는 산들 이골이 날 정도로 다녀봤다. 북한산 어느 코스가 어떻고, 도봉산이 어떻고, 수락산과 불암산은 어떻고, 망우산 용마산 아차산까지 줄줄 꿸 정도다. 어렸을 땐 도봉산을 좋아했다. 암벽이 많다는 이유였다. 한겨울 폭설이 내린 날에도 암벽을 기어오르곤 했을 정도니…. 그런데 커가면서 취향이 바뀐다. 시간 덜 걸리고 힘 덜 드는 곳을 선호한다. 그중 가장 만만한 게 불암산이라고 여기나보다.


“불암산으로 가자!”

이쯤되면 그냥 가야 한다. 다른 산 얘기했다간 ‘컴백 홈’이 외쳐질 수도 있는 상황. 게다가 기자 역시 배꽃이 피는 지난 봄 올라본 이후 가보지 않은 터다. 지금쯤이면 불암산 초입의 배나무밭의 먹골배들도 한참 영글어가고 있을 것이다.


집 근처에서 한 번에 남양주시 별내면 불암동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서울역 주변 후암동이 종점인 202번이다. 버스를 탄다. 버스는 중랑교를 건너 동부시장, 태릉시장 입구를 지나 태릉역, 화랑대역, 육군사관학교와 삼육대를 거친다. 가는 곳곳 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30여분이면 버스는 불암동 종점에 닿는다. 종점 인근은 온통 배나무밭 천지다. 배나무밭 아래엔 갈비집들이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다. 태릉갈비촌이다. 갈비 양념에 이곳에서 나는 먹골배를 갈아넣는다.

종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갈래길이 있다. 들어서기 전 슈퍼마켓에서 생수를 사오라고 시킨다. 생수를 사온 딸아이 손엔 구운계란도 들려 있다. “1000원에 3개씩 한데….” 누가 물어봤나.

좌회전해서 갈래길로 접어든다. 좁은 골목길 양쪽으론 배나무밭이다. 온갖 풀들이 울타리를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영글어가는 먹골배들엔 종이가 씌워져 있다. 벌레나 새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남아미술관을 지나 등산로로 접어든다. 딸아이는 벌써 구운 계란을 꺼내 먹고 있다. 입에 뭐든지 물어야 등산이 잘되는 모양이다. 기자도 말리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시끄럽기 때문이다. 하루살이들이 자꾸 달라붙는다. 딸아이 짜증을 내다 문득 묻는다. “하루살이들이 얼마나 사는지 알아?” “하루 살지!” “아냐, 일주일은 넘게 산대!” “그런가….”

약수터에도 하루살이와 모기들 천지다. 계곡가라서 더 그런 모양이다. “능선에 올라가면 괜찮을 거야. 거긴 물도 없고 시원한 바람이 불거든.” “그게 아니겠지. 높아서 얘네들이 못 올라가는 거겠지….” “…….”


능선에 올랐다. 종점에서 30분 걸렸다. 그런데 귀찮게 달라붙던 모기와 하루살이들이 진짜로 없다. 높아서 그런가….

능선엔 등산객들이 많다. 올라가는 이들과 내려오는 이들의 표정이 엇갈린다. 가족단위의 등산객들도 많다. 딸아이 자꾸 걸음을 멈추고 주저앉았다 일어서 걷다를 반복한다. 운동부족이라고 핀잔을 준다. 앞으로 자주 다녀야 한다고 연신 압력을 넣는다. 먹히지 않는다. “집에서 운동할 거야….”


1시간 20여분 오르니 헬기장이다. 불암산 제2정상인 셈이다. 딸아이 도시락 까먹자고 노래를 부른다. 적당히 그늘진 자리를 찾는다. 무슨 반찬을 싸왔는지, 딸아이는 이미 체크를 끝낸 상황이다. 도시락을 펼친다. 딸아이 좋아하는 제육볶음도, 계란말이도, 고추장도 없는 상태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는다. 꽤 많은 양의 밥을 싸왔는데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사라진다. 그래도 딸아이 부족한 눈치다. 재빨리 초콜릿을 꺼내준다. 그제야 얼굴에 화색이 돈다.


정상 쪽으로 향한다. 정상까진 오르지 않고 바로 아래서 탈출할 계획이다. 옥천암을 거쳐 폭포, 그리고 불암사 쪽으로 내려갈 계획이다. 내려가는 초입은 급경사다. 게다가 마사토까지 잔뜩 깔린 상태여서 굉장히 미끄럽다. 조심해야 한다. 간신히 내려서니 조그마한 계곡이 흐른다. 배낭을 벗어놓고 얼굴과 발을 씻는다. 딸아이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온다. 조금 더 가면 옥천암이다. 아, 지금은 용화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조그마한 암자다. 커다란 바위 아래 조그마한 텃밭에 배추며 상추 등이 자라고 있다. 정겹다.


조금 더 내려오면 폭포다. 꽤 높다. 물이 떨어져 내린다. 사진을 찍었지만 떨어져 내리는 물이 선명하게 나오지 않는다. 기술 부족인가.

잠시 뒤 불암사가 나온다. 조용하게 울려퍼지는 염불 소리가 마음을 평안하게 해준다. 숲 속에 마련된 나무 의자에 앉아 조용하게 그 소리를 감상하는 이들도 있다. 이제 남은 코스는 하나. 바로 불암사 주차장 입구의 해탈문 바로 옆 주막에 들어가는 것이다. 왜? 막걸리 한 사발을 위해서. 딸아이한테도 이미 허락을 얻어둔 상태다. 물론 댓가는 항상 따르게 마련이다. 헬기장에서 그랬다. “아빠, 내려가서 시원하게 막걸리 한 사발 해도 되지?” “그래, 난 시원하게 아이스크림 한 사발할 거야.”


막걸리를 시키는데 딸아이 아이스크림 대신 잔치국수를 턱하니 시킨다. “안주도 시켜야 하는데….” “안주? 그래 파전이나 먹자!” 정말 잘 먹는 딸아이다. “너 오늘 몇가지나 먹은 줄 알아? 구운 계란 3개에, 초콜릿, 도시락, 잔치국수, 파전까지, 다섯 가지네 다섯 가지.” “아닌데, 뭔가 한가지가 빠진 것 같은데….” 한술 더 뜨는 딸아이다.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일부 시스템의 오류로 사진 등록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조만간 수정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독자님들의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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