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정명은 기자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북한산 구천폭포

내립니다. 그칩니다. 퍼붓습니다. 잠깐, 햇볕이 비칩니다. 하늘은 우중충합니다. 다시 내립니다. 장마철입니다. 종잡을 수 없습니다. 아침에 햇볕이 비치다가도 점심 무렵이면 비가 쏟아져 내립니다. 기상청 예보도 소용 없습니다. 산행 약속 잡기, 참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가야만 합니다. 그나마 성동구청에 근무하는 시민기자의 `직장동료들과 함께 하는 산행 후기`로 한 두 주 정도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여유가 생기다 보니 날씨가 멀쩡한 날도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기상청 일기예보를 핑계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 탓입니다. 오늘 어차피 비 온다고 했는데 뭘…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하늘은 멀쩡합니다. 산에 가는 대신 지인들과 만나 막걸리잔을 기울이면서도 계속해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얀구름 두둥실 떠있는 하늘이 야속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섰습니다. 내리던 비가 잠깐 그친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이날도 신문지상의 일기예보엔 빗줄기 표시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산행에 떠나는 그 시간, 비는 내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날까지 나서지 않았다간 낭패입니다. 써먹을 실탄이 다 떨어진 탓입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우이동으로 가면서도 마음은 불안합니다.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장대비 때문이지요. 게다가 태풍까지 올라온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가방 안에 우산을 챙겨넣었지만 다른 준비는 전혀 돼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재빨리 올랐다 재빨리 내려오면 되겠지….

코스를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 쪽으로 잡은 것도 비 때문입니다. 주중에 몇차례 내린 비로 찍을 거리가 있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4.19기념탑을 지나 아카데미하우스로 오르는 길. 인도엔 이름모를 꽃과 열매들이 떨어져 있습니다. 그중엔 나팔꽃도 보입니다.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떨어져 내려 행인들의 발길이 짓밟힌 모습에서 4.19 묘지에 잠든 민주화열사들이 떠올랐습니다. 땅은 촉촉하게 젖은 상태입니다. 아스팔트가 아니고 흙이었다면 굉장히 기분이 좋을 거란 생각을 하며 아카데미하우스 매표소를 지납니다. 다리를 건너면 왼쪽으로 아카데미하우스 울타리를 끼고 돌이 깔린 등산로가 이어집니다. 오른쪽은 조그마한 계곡입니다. 몇주 전에도 이곳으로 오른 적이 있는데 그땐 메말랐던 계곡에 지금은 물 흐르는 소리가 가득합니다. 등산로 위엔 연초록의 잔해물들이 나뒹굽니다. 야릇한 내음이 진동을 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밤꽃입니다. 이렇게 다 떨어져 내리고 나면 열매는 무엇으로 맺지?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갈래길이 나옵니다. 왼쪽으로 가면 칼바위능선과 만납니다. 오른쪽 길을 택합니다. 비 내린 뒤엔 이쪽이 좋습니다. 구경거리가 많거든요. 사진 찍을 꺼리가 많다는 얘깁니다. 접어들자 마자 조그마한 계곡 지류와 만나는데 물이 가득합니다. 군데군데 물 위로 튀어나온 커다란 돌들이 징검다리 역할을 해줍니다. 하늘을 봅니다. 여전히 흐리지만 금방 비가 내릴 것 같진 않습니다. 카메라를 꺼내들고 셔터를 누르기 시작합니다. 간혹 하산하는 등산객들과 마주칩니다. 다른 때보다는 등산객들이 많지 않습니다. 비 때문입니다.

오릅니다. 얼마 안가 암벽길과 마주칠 무렵 우측 계곡길로 잠깐 빠집니다. 계곡 위에 적당한 높이의 폭포가 있습니다. 구곡폭포 하단입니다. 물이 쏟아져 내립니다. 아래선 끊임없이 포말이 일어납니다. 마치 명주실이 풀어지는 듯 멋드러진 풍경입니다. 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혼자 보기 정말 아깝습니다. 구천폭포는 전체 길이가 80여m에 높이가 15m라고 하는데 실제론 훨씬 더 길고 높아 보입니다. 구천은폭(九天銀瀑)이라고도 합니다. 굳이 해석하자면 `아홉 개의 하늘을 담은 은색의 폭포` 정도 될까요?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돌아나옵니다. 좀전의 암벽길로 접어듭니다. 암벽은 미끄럽습니다. 비 때문입니다. 동아줄이 매여져 있습니다. 줄을 잡고 오르는데도 자꾸 미끄러지려 합니다. 간신히 암벽 위에 올라섭니다. 산 아래가 훤히 내려다 보입니다. 동북쪽, 그러니까 수락산과 불암산이 보이는 상계동 쪽 시가지가 흐릿하게 시야에 들어옵니다.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 몇십년은 족히 됐을, 하지만 키는 작은 소나무는 새로 난 가지 끝마다 동그란 분신을 매달고 있습니다. 솔방울입니다. 잠시 숨을 돌린 뒤 다시 오릅니다. 오른쪽은 가파른 절벽입니다. 구곡폭포가 계곡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사이엔 안전을 위한 줄이 쳐져 있습니다. 조심조심 걸음을 떼는데 일단의 등산객들이 내려옵니다. 길을 비켜줘야 합니다. 그들이 먼저 길을 비켜섭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건네자 "길이 미끄러운데 조심하십시오"란 답이 돌아옵니다. 고맙습니다.

오릅니다. 계속해서 암벽길입니다. 계속해서 미끄럽습니다. 등산화를 바꿀 때가 됐나…. 괜시리 발을 들어 등산화 바닥을 한 번 훑어봅니다. 멀쩡합니다.

계곡에선 희미하게 물안개가 피어오릅니다. 작년에 이곳에서 한 번 혼쭐이 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비가 내린 직후였습니다. 임무 수행을 위해 날씨 불문하고 산행에 나섰는데 이곳에서 하얀 머리 풀어 헤친 처녀귀신과 마주친 것입니다. 그땐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발걸음을 멈춘 채로 뻣뻣하게 굳어 한참을 바라보다보니 실체를 알겠더군요. 좁은 계곡에서 피어나는 물안개가 무성하게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비친 모습이었습니다.

오르는 길 왼쪽으로 계곡이 이어집니다. 군데군데 폭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멋진 광경입니다. 나뭇가지에 가려 사진을 찍는 건 어렵습니다. 폭포 쪽으로 내려갈 수도 없구요. 등산로는 여전히 미끄러운 암벽길입니다.

암벽 사이 사이엔 생명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대단한 자연입니다. 신비입니다. 카메라에 담아보지만 한계가 드러납니다. 촬영기술도 기술이지만, 한낱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 안에 그 신비한 자연을 온전히 담는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요.

좁은 계곡이 나옵니다. 계곡 옆으로 길이 이어집니다. 양쪽은 절벽으로 막혀 있습니다. 계곡을 따라 산 위에서 내려온 서늘한 바람이 땀을 식혀 이 계곡길은 여름 등산객들에겐 천혜의 피서지 역할을 해줍니다. 흐르는 물에 잠시만 발을 담그고 바람을 맞고 있으면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시원합니다. 

급경사와 마주칩니다. 중간, 하얀색 꽃무리가 눈길을 끕니다. 산딸나무입니다. 초록색 잎 위에 눈부신 별모양의 흰색 꽃이 올라타 있습니다. 흰색과 초록색이 대조를 이뤄 멋진 풍광을 만들어냅니다.

수십개의 돌계단을 타고 오르면 드디어 능선입니다. 능선에 접어들어서도 또 계단은 이어집니다. 능선 계단은 새로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화강암으로 된 조형물의 계단이 다리를 피곤하게 합니다. 등산객들에 대한 배려겠지만, 왠지 꺼림칙합니다. 자연은 그냥 자연스러울 때가 더 좋습니다.

갈래길이 나오고 직진하면 대동문입니다. 매표소에서 이곳까지 한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하산길은 다시 대동문쪽으로 내려와 아까의 갈래길에서 우이동쪽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길이 평평한 편이어서 비내린 뒤라든가, 눈이 내렸을 때 이용하기에 좋습니다. 이전에 몇차례 소개해드린 적 있습니다. 오늘은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우이동 버스종점까지 총 2시간 30분 걸렸습니다.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아직 사진이 게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지난 여름 다녀온 것으로 사진 문제 때문에 싣지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서야 사진은 빼고 게재합니다. 독자님들의 큰 양해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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