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 강아지와 코끼리, 돼지가 사는 거 아세요?
북한산에 강아지와 코끼리, 돼지가 사는 거 아세요?
  • 승인 2007.10.10 1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정명은 기자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

오랜만이다. 약속이 잡혔다. 반가웠다. 지난 일요일 이전에 자주 함께 했던 산악회 멤버들과 약속이 잡혔다. 지난 4월 이후 처음이니 5개월 여 만이다. 그동안 자주 함께 하지 못한 건 순전히 기자 탓이다. 바쁘다는 핑계였다.

이번엔 기필코…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북한산 서부 능선이 가까운 6호선 독바위역 1번 출구. 시간은 오전 11시. 산행 출발 시간으론 다소 늦은 감이 있다. 이 역시 기자의 우기기 탓이다. 집이 멀다…일요일엔 늦잠을 자야 한다…등의 핑계를 댔고 그렇게 약속이 이뤄졌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 눈을 뜨니 7시다. 전날 술을 마시지 않은 덕분이다. 토요일 일을 마치고 당연히 술자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약속장소까진 전철로 1시간이면 족할 터. 그래서 산악회 멤버들에게 조그마한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산에 가면서 왠 선물이냐고? 밥이다. 도시락이다. 기자의 정성이 담뿍(?) 담긴….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돼지고기가 없다. 시장에 갔다. 제육볶음용 돼지고기를 산다.

집에 돌아와 음식 만들기에 분주하다. 제육볶음, 이거 기자가 한 요리한다고 자부하는 메뉴다.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는데 아내 일어나 거든다. 밥을 새로 짓고 주특기중 하나인 계란말이를 만든다. 다른 반찬도 열심히 도시락에 담는다. 고맙다.
라면으로 아침을 떼우고 부랴부랴 집을 나선다. 덥다. 배낭은 묵직하다. 하늘엔 희뿌연 구름이 가득이다. 전철에 오른다. 전철을 세 번이나 갈아타고 정확히 한 시간 걸려 독바위역 도착.

일행들이 벌써 나와 있다. 반갑게 인사한다. 그동안 자주 참석 못한 벌로 도시락을 싸왔노라고 떠벌린다. 얼굴들에 미소가 번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뭐, 이런 일이…"라는 듯한 표정이다. 날씨는 집을 나설 때보다도 한층 더 찐다. 슈퍼마켓에 들어가 얼음막걸리를 산다. 오른다. 오늘의 목적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올라가면서 상황 봐서 조정하기로 한다. 이곳에선 불광중고교 쪽으로 올라가다 불광사 쪽으로 빠지는 등산로가 있다. 북한산 서부능선의 맨끝 봉우리인 족두리봉을 오른쪽으로 끼고 향로봉쪽으로 올라가는 코스다.

불광사에 도착하니 벌써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아참, 북한산 서부능선엔 두 곳의 불광사가 있다. 이쪽 말고 불광역 2번 출구로 나와 구기터널 쪽으로 가다 좌회전하면 나오는 사찰도 불광사다. 절의 규모는 이곳이 더 크다. 헷갈리시는 일 없길…. 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다. 처음부터 일행들에게 천천히 천천히 오르자고 얘기해두었던 터다. 그래도 갈수록 걸음들이 빨라진다. 사실 기자는 이곳으로 오르는 게 처음이다. 일행 중 이곳 지리를 잘 아는 한 명이 앞장 서 안내하는데 일주일에 3-4일씩은 산에 다니는 분이라 체력이 막강하다. 천천히 걷는다고 하는데도 따라가기가 벅차다. 그럴 때마다 쉬었다 갑시다란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쉬엄 쉬엄 오른다. 뒤를 보는데 은평뉴타운 공사 현장 일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산 바로 아래까지 쳐들어온 고공크레인과 각종 중장비들이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중간, 이상한 모양의 바위들과 마주친다. 안내를 맡은 체력 막강한 분이 바위들을 가리키며 설명을 해준다. 맨 처음 마주친 바위는 강아지바위란다. 몇걸음 안가 또 마주치는 두 번째 바위는 코끼리 바위, 그리고 마지막에 만나는 바위가 돼지바위다. 가만히 보니 전부 그럴싸하다. 바위가 크진 않지만 모양이 정교하게 닮아 있다. 북한산 동물원이다. 일행들이 쉬는 시간 하나하나씩 카메라에 담아본다. 눈으로 보는 것보단 덜 닮아 보인다.

다시 오른다. 온몸은 담으로 범벅이 된다. 손수건을 꺼내 닦아보았자 효과가 없다. 시내를 바라보니 온통 희뿌옇다. 열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 하필 이렇게 더운 날…. 앞서가던 체력 강한 분까지 헉헉거리실 정도니. 날 제대로 잡았다.

1시간 20분여 걷다보면 익숙한 장소와 마주친다. 이전에 2-3차례 소개한 적 있던 연신내에서 기자촌을 거쳐 향로봉 오는 코스의 갈래길이다. "아하, 여기가 거기였군…그런데 고작 여기밖에 오지 못한 거야?"란 불만과 함께 한숨이 나온다.

이제부턴 경사가 아주 급한 암릉길이다. 날씨가 좋은 날, 이곳 암릉 중간에서 서쪽을 보면 인천앞바다가 보이기도 한다. 강화도도 보이고…. 오늘은 글렀다.

가져온 물 두통이 다 바닥이 나버렸다. 계속해서 입에 물고 있던 탓이다. 1.8리터짜리 큰 물통을 담아온 다른 일행의 물을 실례한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가면서도 입은 쉬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때문이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모든 얘기들을 한꺼번에 다 털어놓기라도 할 듯 얘기가 이어진다. 더 힘들다.

향로봉이 오른쪽으로 펼쳐진다. 북한산에서 가장 위험한 봉우리중 하나다. 정상부근은 출입이 금지됐는데도 암벽을 통해 오르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자주 뜨인다. 지난번에 인명사고도 났다는데….

1시간 40분 지나 간신히 향로봉 입구에 이른다.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다. 기자가 싸온 점심도시락 파티를 열 장소를 찾아야 한다. 일단 비봉을 지나 사모바위까지 가기로 한다. 그 근처에 적당한 장소가 있으리라. 20여분 뒤 사모바위 도착. 간신히 장소를 찾아 자리를 깔고 만찬을 펼친다. 일행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입이 벙글어진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얼음이 동동 떠 있는 막걸리를 꺼내놓으니 이 세상 부러울 게 없더라. 더위에 일었던 짜증도 모두 날아가 버린다.

200% 만족스런 만찬을 즐기고 다시 일어선다. 이제 하산하잔다. 더 걸을 힘도 없다. 순전히 날씨 탓이다. 비봉쪽으로 다시 조금 더 걸어나오면 구기동쪽 하산길이 나온다. 승가사를 거쳐야 한다. 내려간다. 승가사에서 약수를 한 모금 마시고 계곡길을 따라 하산한다. 계곡물은 더할 나위 없이 맑다. 상당히 상류인데도 버들치 등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놀고 있다. 한적한 곳을 찾아 얼굴을 씻는다. 시원하다. 속세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느낌이다.

구기동 매표소를 지나니 3시간 30분 소요됐다. 시원한 생맥주 한 잔으로 간단한 뒷풀이. 찌는 듯 더운 날씨만 빼고 아주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