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연재> 고홍석 교수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일기-첫째날

`Weekly서울`이 연재하고 있는 `쉼표 찾기`는 오랜 학교생활과 사회활동 후 안식년을 가졌던 전북대 농공학과 고홍석 교수가 전북 진안군 산내마을에 들어가 살면서 보고 느낀 점들을 일기 형식으로 적은 것이다. 고 교수는 2004년 3월 전북 전주시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이 한적한 산내마을로 부인과 함께 이사를 갔다. 고 교수의 블로그에도 게재된 이 글들은 각박한 삶을 살아내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아주 좋은 `쉼표` 찾기가 될 것이다. 고 교수는 `Weekly서울`의 연재 요청에 처음엔 "이런 글을 무슨…"이라고 거절하다가 결국은 허락했다. 고 교수는 <쉼표 찾기>를 통해 산내마을에서의 생활과 사회를 보는 시각을 적절히 섞어 독자들에게 들려드리고 있다. `Weekly서울`은 고 교수가 부인과 함께 산내마을로 이사를 가기 직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쓴 모든 글과 사진들을 순서대로 거르지 않고 연재해 왔다. 이번호부터는 특집으로 고홍석 교수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일기를 연재한다. 고 교수는 부인 그리고 다른 일행들과 함께 지난 10월 11일부터 22일까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다녀왔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첫째날(2007년 10월11일) 

당신의 가슴에 안겨서 바라보았던 마차푸차레(6,933m, Fish Tail, 물고기 꼬리)는 네팔인들이 신성시할만큼 지금까지 보았던 수많은 산 중에서 가장 아름다움의 극치였습니다. 당신의 발에 입맞춤을 하면서 올려다보았던 당신의 얼굴에는 따뜻한 사랑과 자유의 미소가 가득하였습니다. 뚜벅뚜벅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면서 한발자국씩 당신에게 다가서면서 전율처럼 느끼던 그리움과 설레움, 롯지의 엉성한 침대에 누에고치처럼 생긴 침낭 속에서 긴 밤을 잠 못 이루면서 한 켠씩 쌓아 올렸습니다. 잠 못 이루던 밤, 한밤중 올려다본 하늘에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것만 같았던 그 별들,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던 은하수 속에서 당신은 하늘 한 켠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베이스캠프(4130m)에서 그리움과 설레임이 현실화되었던 그날 새벽, 당신의 모습은 죽어도 잊을 수 없게 내 영혼에 문신으로 새겨지고 말았습니다.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 당신은 나에게 사랑이고 자유였습니다. 당신을 만난 바로 그날, `내 안에 있는 신이 나와 마주치는 모든 이들의 신도 존경한다`는 바로 그 인사, "나마스테!"가 네팔인들만의 언어가 아니라 바로 내 언어, 우리들의 언어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지난 10월 11일 오후 4시, 미금역에서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공항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등산용 장비와 옷을 잔뜩(거의 30kg 가까이) 담은 카고백과 캐논 5D 바디에 16-35mm 광각줌렌즈, 24-70mm 표준줌렌즈, 70-200mm 망원줌렌즈, 그리고 배터리 4개, 메모리카드(총 18G), 몇가지 필터, 포터블 하드디스크, 충전기, 삼각대를 담은 카메라백, 그리고 평지에서 갈아입을 옷가지와 자질구레한 것들까지 담은 여행용 가방이 이번 트레킹 준비물입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햄버거로 대충 저녁을 때우고(기내식을 기대하면서) 1시간 지연 출발한 인천공항-방콕행 타이항공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에 나서면서 저는 해외 원정 산행의 종결이나 완결 내지는 마침표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해외 원정 산행은 백두산 트레킹에서 시작하여 일본 북알프스, 말레지아 키나발루, 인도네시아 린자니, 중국 따꾸냥, 대만 옥산, 그리고 금년 여름에 다녀왔던 일본 남알프스의 연장선입니다. 국내에서는 지리산 종주 13회, 설악산 종주 2회, 덕유산 종주 4회를 하였으니 산에서 보낸 시간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경력에도 불구하고 이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마침표로 정의하는 것은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서 체력이 딸린다는 것이 가장 첫번째 요인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트레킹을 합쳐도 이번 트레킹에는 못미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평가 때문이었습니다.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일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그리고 새로운 만남(사람, 사물, 자연 등)에 대한 설레임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그 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다는 전제가 있어서 다소 힘들어도 괜찮고, 불편해도 견딜만하고, 부족해도 참을만 합니다. 떠나는 것은 다시 돌아옴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시작이면서도 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준비로 피곤하지만 저녁 비행기 좌석에 등을 깊숙이 눕히고, 안드레아 보첼리의 음악을 들으면서 느긋함을 만끽합니다.

방콕 공항에 현지시각으로 새벽 2시경에 도착하니 가는 비가 내리고 있고 반팔을 입었는데도 습한 더위가 몰려옵니다. 동료가 강철원 대장(강가딘 트레킹 회사 사장이지만 우리들은 대장으로 부른다)을 포함하여 9명입니다. 방콕 공항의 버스나 택시 요금이 정찰제가 아니라서 요금을 놓고 1시간 가까이 실랑이를 하다가 늦게 방콕 시내의 호텔에 도착하니 새벽 4시입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오전 6시 35분에 기상, 샤워를 하였습니다. 호텔에 면도기가 비치되어 있지 않아서 수염을 깎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이번 트레킹 중에는 면도를 하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면도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대단한 자유처럼 표현하였지만)까지도 누려볼 생각이었습니다.

호텔 객실의 창문 커튼을 걷으니 방콕 시내가 눈에 들어옵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빌딩의 숲보다 그 사이사이로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묻어나는 어쩌면 궁상맞은 단독주택들의 지붕이나 창문 베란다에 널려있는 빨래가지에서 인간미를 느끼곤 합니다. 어디이건 사람들의 삶은 모자이크처럼 점철되어서 얼룩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늘은 흐리고 비가 내립니다. 네팔의 기상이 어떠할 것인지 걱정이 되지만, 경상대학교 정 교수님의 장담(산을 오래 다니셨는데도 기상이 나쁜 적이 없다는)을 믿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7시에 모닝콜, 그리고 호텔에서 뷔페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어제 밤과는 달리 아주 싼 값으로 공항까지 택시로 달렸습니다. 11박 12일 트레킹 일정에서 하루는 이렇게 방콕까지 가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안나푸르나,  당신이 그립습니다. <기사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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