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연재> 고홍석 교수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일기- 4일째

`Weekly서울`이 연재하고 있는 `쉼표 찾기`는 오랜 학교생활과 사회활동 후 안식년을 가졌던 전북대 농공학과 고홍석 교수가 전북 진안군 산내마을에 들어가 살면서 보고 느낀 점들을 일기 형식으로 적은 것이다. 고 교수는 2004년 3월 전북 전주시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이 한적한 산내마을로 부인과 함께 이사를 갔다. 고 교수의 블로그에도 게재된 이 글들은 각박한 삶을 살아내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아주 좋은 `쉼표` 찾기가 될 것이다. 고 교수는 `Weekly서울`의 연재 요청에 처음엔 "이런 글을 무슨…"이라고 거절하다가 결국은 허락했다. 고 교수는 <쉼표 찾기>를 통해 산내마을에서의 생활과 사회를 보는 시각을 적절히 섞어 독자들에게 들려드리고 있다. `Weekly서울`은 고 교수가 부인과 함께 산내마을로 이사를 가기 직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쓴 모든 글과 사진들을 순서대로 거르지 않고 연재해 왔다.
이번엔 특집으로 고 교수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일기를 연재하고 있다. 고 교수는 부인 그리고 다른 일행들과 함께 지난 10월 11일부터 22일까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다녀왔다. 그 4일째 트레킹 여정의 기록이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마이아걸츄 안나푸르나!

낙숫물 소리에 단잠을 설치고, 새벽에 일어나니 비가 그쳤습니다. 롯지 베란다 창문으로 안나푸르나 연봉이 드러납니다. 지금까지 컨디션이 좋던 아내는 드디어 입술이 파래지면서 고산증세를 보입니다. 효과가 어느 정도 입증된 이뇨제인 다이아목스를 복용합니다. 다이아목스를 복용하면 물을 많이 먹게 되고, 물속의 산소로 고산증세가 완화됩니다. 머지않아 나 역시 이 약에 신세를 져야 할 것입니다.


▲ 간드룽 롯지

회갑을 안나푸르나의 품에서 맞이하는 것은 새로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또한 지난 시간에 대한 마침표이고 새로 태어나는 것에 대한 시작점입니다. 이러한 의미 부여가 억지스럽지만 그래도 끝끝내 고집을 부리고 싶습니다. 아니라 다를까 그 의미는 오늘 저녁에 묵을 촘롱(Chhomrong, 2,170m)에서의 회갑파티에서 증명되고 말았습니다. 공여사와 나의 회갑파티 축하 케이크에 꼽았던 초가 한 자루였으니, 이제 한 살로 돌아간 것입니다. 안나푸르나 풍요의 여신의 품에서는 이런 기적이 일어납니다.


▲ 전용 카메라 가방 포터

마이아걸츄 안나푸르나….

망원렌즈를 마운트하고 안나푸르나 남벽과 마차푸차레를 담습니다. 표준렌즈에 필름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는 독일인이 망원렌즈에 관심을 보이면서 빌려달라고 합니다. 건네주었더니 아주 신나게 촬영을 합니다. 아직까지 사진 실력이 초짜 딱지를 떼지 못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시건방지게 카메라 장비에 대한 욕심은 모락모락 타오르는지, 렌즈 마운트가 귀찮고 결정적 순간에 대한 시기 포착을 위해서는 카메라 Body가 하나 더 있어야겠다는 의사를 넌지시 아내에게 표시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새로 장만해야 할 카메라는 지금 내가 보유하고 있는 기종보다는 상위 기종이어야 한다는 권고가 있으니 구입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선뜻 카메라 비용을 내놓을 수도 없고, 사진 찍어서 연필 한 자루도 못 타오는 실력에 무슨 Two Body냐는 항의성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어제 저녁 꿈에 내가 카메라를 사서 들고 오는데 물경 1,500만원 짜리 카메라를 사가지고 오더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꿈이지만 간덩이가 부었지 감히 어떻게 그런 사건 내지는 사태를 저지를 수가 있겠습니다. 정교수의 시계 사건만큼이나 이 꿈은 트레킹 내내 화제 거리의 하나였습니다.


▲ 소똥을 채집하고 있는 동네 사람.

간드룽(1,940m)에서 킴롱(Kimrong, 1,800m)까지 내리막길을 내려갑니다. 내려가면 반드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내려가는 것이 힘들지 않더라도 다시 올라갈 것을 생각하면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길에는 소, 말, 양들의 똥들이 어지럽게 지뢰밭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지뢰를 밟지 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해서 걷습니다. 그래도 간혹 실수가 있을 수 있어서 그 똥들을 밟는 경우도 있고, 그보다 더한 경우는 밟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끄러져서 똥에 주저앉는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저 피해 가는 것만이 상책입니다. 소똥은 네팔인들에게는 주요한 자원(?)으로 땔감으로도 사용하고, 벽에 바르면 해충이 생기지 않아서 소똥 벽지로 애용됩니다. 간혹 소담스럽게 질러 놓은 소똥을 손으로 모아 담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킴롱 롯지에서 수제비에 밥을 말아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롯지 마당에는 독일인들도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트레킹 도중에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나마스테’ ‘굿텐 모르겐’ 등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기도 하였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의 한 명이 킴롱에서 촘롱까지 오는 도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습니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우리 동료들도 모두 긴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킴롱에서 촘롱까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입니다. 촘롱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도중에 가장 큰 마을이기도 합니다. 촘롱 마을에 들어서자 무지개가 환영합니다. 지금까지 보았던 어느 무지개보다도 완전 반원형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 촘롱 마을의 무지개. 이 무지개를 타고 독일인은 하늘나라로 가고….

아마도 심장마비로 사망한 독일인 트레커가 그 무지개를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갔을 것만 같습니다. 살아갈 날이 얼마남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치매나 중풍으로 힘들게 죽어가는 것보다는 안타깝기는 하지만 안나푸르나를 향해 걷다가 숨을 멈추는 것도 어쩌면 행복한 죽음일 수도 있다는 나름의 위안을 해봅니다. 안나푸르나 풍요의 여신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할 수 있는 것은 생애 최대의 행운일 수도 있다는, 망자에 대한 건방진 생각(?)을 해봅니다.


▲ 쉼표, 열심히 촬영 중

촘롱 롯지에서 안나푸르나 남벽과 마차푸차레가 손에 닿을 듯이 가까이 보입니다. 저녁 나절 내내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도 롯지 2층 옥상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촬영을 하였습니다. 안나푸르나 풍요의 여신 품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롯지에 전기가 들어와서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었으니 이 또한 행운입니다.


▲ 안나푸르나 남벽


▲ 숨을 멈추게 하는 히말라야 하늘


▲ 촘롱에서 마차푸차레

오늘 저녁 이벤트가 있다는 박교수님의  사전 고지에도 불구하고 회갑파티를 이렇게 트레킹 도중에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촘롱이 다소 큰 마을이기는 하지만 제과점이 있어서 맞춤 케이크를 준비하고 제조 샴페인(맥주 + 사이다)으로 축하주에 축하송까지 나누었으니 이보다 더한 회갑연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제 언급한 바와 같이 게다가 축하 케이크에 꽂았던 초가 단 한 자루였습니다. 공여사와 내가 무려 61살에서 한 살로 다시 태어났으니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다. 그런데 죽어 하늘나라로 간 독일인이 있는가 하면 느닷없이 한 살로 다시 태어나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 아이러니는 어찌 해석해야 하는가요. 이 축하 파티는 돌아오는 길에도 또 있었답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 회갑 축하 케이크

이 모든 것이 모두 안나푸르나, 풍요의 여신 당신의 신비이니 마이아걸츄 안나푸르나……


▲ 우리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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