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고홍석 교수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일기-7,8일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7일째
 
안나푸르나 풍요의 여신, 당신 발에 입맞춤합니다.

3시에 기상하여 박교수님의 특별 조제 커피(다방면에 전문가이시지만, 특히 커피와 와인에 있어서는 전문가 수준 이상)를 마시고 3시 30분에 안나푸르나 당신을 향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깁니다. 신새벽의 어둠을 헤드랜턴으로 밝히면서 어제 내린 눈으로 미끄러운 눈길, 빙판길을 조심조심 오릅니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는 2시간 정도 오르면 됩니다. 어제 감기 기운으로 목이 잠기어 목소리가 허스키로 변했습니다.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 나눔이 불편합니다. 그래도 안나푸르나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힘주어 “나마스테”하고 인사를 건넵니다. 카메라 가방은 오늘 ‘장부다이’ 셀퍼가 지고 먼저 올라갔습니다. 나중에 확인하니 경험이 풍부한 셀퍼라서 안나푸르나 연봉이 가장 잘 보이는 곳, 촬영의 포인트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안나푸르나 연봉

드디어 안나푸르나 빙하 언덕에 올라섰습니다. 어둠 속에서 안나푸르나 1봉(Annapurna I, 8,091m), 마차푸차레(Machhapuchhre, 6,997m). 강가푸르나(Ganggapurna, 7,457m), 안나푸르나 3봉(Annapurna III, 7,555m), 안나푸르나 남봉(Annapurna South, 7,219m), 팡봉(Fang, 7,647m)들이 파노라마처럼 드러납니다. 훌쩍 뛰어 오르면 정상에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깝게 느껴지는 착시현상이 생기니, 안나푸르나를 향한 내 애정의 깊이와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입니다. 눈밭에 덥석 배를 깔고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안나푸르나 당신의 발에 입맞춤을 합니다. 당신의 가슴에 안기어 내 영혼까지도 모두 드릴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은 내 가슴에, 내 영혼에 죽어서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문신으로 새겨놓을 것입니다.


▲  안나푸르나

광각렌즈로 안나푸르나 연봉을 찍고, 망원렌즈로 바꾸어서는 각각의 봉우리들을 담았습니다. 카메라에도 담을 뿐 아니라 골수 깊은 곳에까지 담습니다. 마차푸차레 방향에서 서서히 해가 오르면서 하얗던 봉우리들이 황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셔터 속도가 빨라집니다. 거친 숨을 들이키면서 사랑을 나누는 절정을 맛봅니다. 감동으로 눈가에 물기가 비칩니다. 이 사랑의 절정으로 당신을 향한 내 모든 것이 드디어 완성되었습니다. 당신에게 바쳤던 연서(戀書)가 드디어 종지부로 마무리됩니다. 베사메무쵸 안나푸르나, 당신을 사랑합니다.




▲  깃발과 마차푸차레

오르면 내려와야 합니다. 만남은 헤어짐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헤어짐도 당신을 가슴에 각인하고 내려오니 전혀 외롭지도 아쉽지 않습니다. 가슴 벅찬 감동만이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내내 꺼지지 않는 불길로 타오를 것입니다. 60살이 한 살로 변하는 이 신비는 사랑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내려오는 눈길이 미끄럽습니다. 아이젠을 카트만두에 놔두고 온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사람들이 자주 밟아서 미끄러운 빙판길 옆, 눈이 쌓여 있는 곳을 밟는 요령을 발휘하여 조심조심 내려옵니다. 당신을 가슴에 안고 오는데 행여나 다쳐서야 되겠습니까.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롯지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어제 숙박하였던 히말라야 롯지를 거쳐 오늘은 도반 롯지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오르는 것보다는 내려가는 데는 속도를 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산행에 경험이 풍부한 사람의 경우에는 오히려 내려가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위험하기도 합니다.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탄력적으로 걷습니다. 계단에서는 지그재그 걸음법도 사용합니다. 가끔 뒤돌아봅니다. 안나푸르나 연봉들이 훠이훠이 손을 들어 인사를 합니다. “나마스테!!” 베사메무쵸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8일째
  
안나푸르나 풍요의 여신, 당신을 내 가슴에 안고 갑니다.
오늘은 밤부 롯지를 거쳐 뉴브릿지(New Bridge, 1,340m) 롯지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다이아목스를 먹어서 손발이 저리던 증세는 약을 끊자 말끔하게 사라졌습니다. 무릎이 시큰거립니다. 돌계단을 내리오를 때마다 왼쪽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국산(외국산이라고 특별할 리는 없겠지만) 기계 60년을 사용하였으니’ 이 정도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체념하고 살아왔는데, 이번에 돌아가면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물론 이런 다짐도 아프고 불편할 때만 하였다가 막상 조금 우선해져서 걷는데 큰 무리가 없으면 또 잊고 말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잘 지키려 해왔으면서도, 늘상 내 자신에게는 허튼 약속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내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슬며시 미소를 짓습니다.


▲  내려오는 길목에 들꽃이 환하게 피어 있다.

신나게 내려왔던 촘롱의 계단은 이제 오르려니 살인적으로 힘이 듭니다. 경상대 정교수가 나무 이파리를 뜯어가면서 세어 보았더니 2,200 계단이라고 합니다. 지난번 사망하여 헬기로 수송된 운동장에는 풀들만이 파랗게 보일 뿐입니다. 육신은 헬기로 옮겼어도 아마 그의 영혼은 그 때 이 마을에 환하게 비추었던 무지개를 타고 하늘나라로 갔을 것입니다.


▲  계단식 논배미

촘롱 롯지 주인이 밑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저녁에 먹기로 되어 있는 양 두 마리를 잡으라고 했더니 그 양을 가지고 자기 마을로 도망쳐 버렸다고 합니다. 다사인 축제 기간이니 양 값도 만만치 않은데다 아마도 그 양을 가지고 가서 가족들과, 혹은 동네 사람들과 나눠먹으려고 그랬을 것입니다. 촘롱에서 양은 포기하고, 뉴브릿지 롯지에서 양 한 마리를 잡아서 양고기 수육과 탕으로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 중에 아내가 이번 트레킹에서 두 번째 환갑 이벤트로 맥주를 사서 우리 대원들과 포터들에게 나누었습니다. 나도 신바람이 나서 캔맥주를 거뜬하게 한 캔을 비웠습니다. 술을 못 마시는 주제에 호기를 부려본 것입니다. 얼굴이 바알갛게 달아오르면서 손끝의 미세혈관에도 알코올 기운이 도는 것 같습니다. 이 기분에 술을 마시는가 봅니다.


▲  안나푸르나 남벽

그러나 대원들 중에는 긴장이 풀어진 탓인지 몇 사람의 건강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다들 자기 몸 돌보는데도 힘이 드는데, 서로 걱정하며 가져온 약들을 꺼내 먹이고, 지압을 해주는 등 최선을 다해서 동료애를 발휘합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연대의식이 조직을 온존케하는 동력이 됩니다. 이 뉴브릿지 롯지에서도 안나푸르나 남벽이 머리에 하얗게 눈을 이고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안나푸르나 당신은 내 가슴에 있습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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