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제약업계 리베이트 사건, 소비자는 영원한 '봉'

지난해 공정위 조사 3개월 만에 또 다시 대규모 제약업계 리베이트 사건이 발생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불법 리베이트 주범으로 `기준 없는 PMS(Post Marketing Surveillance, 임상 시판 후 조사)`가 지목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의약품 리베이트 문제가 반복해서 불거지는 원인이 정부의 `솜방망이 처벌 탓`이란 주장도 제기됐다. 게다가 복지부와 식약청은 뒤늦게서야 대책 마련에 착수,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불법 리베이트, 여전히 진행형

지난해 11월 유한양행, 한미약품, 녹십자, 중외제약 등 국내 굴지의 10개 제약사들이 병 의원에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돼 약 2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리베이트란 지불대금이나 이자의 일부 상당액을 지불인에게 되돌려주는 일 또는 그 돈을 말한다. 당시 공정위는 이들이 골프 접대, 세미나 지원, 회식비 지원 기타 등등의 명목으로 뿌린 금액이 약 52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3개월 만에 제약업계 리베이트 사건이 또 발생했다. 지난달 26일 서울경찰청은 엑스레이 등 촬영에 쓰이는 `조영제`를 납품받는 대가로 제약사들로부터 모두 수십억원어치의 금품과 향응을 받아 온 국내 유명 대학병원과 국공립병원 등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경찰은 의사 355명과 방사선사 2명을 적발해 모 국립병원 이모 원장 등 의사 44명과 방사선사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번에 적발된 모 국립병원장 등 의사 355명이 의약품 납품 대가로 금품 수수한 사건에서는 이 PMS가 당초 목적을 잃고 불법적 리베이트에 활용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PMS는 신약 시판 이후 4 6년 동안 병 의원 등을 통해 해당 약품에 대한 환자들의 사용 경험을 의사로 하여금 조사케 해 신약의 효능과 부작용을 재검증하는 등 의약품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제도다.
수사를 담당한 경찰측은 "의사들이 납품받은 해당 조영제는 현행 약사법상 시판 후 조사 대상이 아님에도 PMS 계약을 맺어 부당하게 돈을 받았다"며 "더구나 이 조영제는 시판된 지 10년이 넘은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의사들은 지난 2005년 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제약회사로부터 조영제를 납품받으며 PMS 명목으로 적게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6000만원 등 모두 28억여 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들은 제약회사로부터 골프 접대나 회식비 대납 등 모두 5716차례에 걸쳐 20억여 원어치의 향응을 제공받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PMS가 사실상 불법의 온상

실제 지난해 11월 공정위가 국내 10개 제약사의 불공정거래 사실을 발표했을 당시에도 PMS는 제약사들의 주요한 리베이트 방법으로 지목된 바 있다. 그러나 공정위 조사 발표 후 3개월 만에 PMS 대상도 아닌 조영제로 리베이트가 불거지자, PMS가 사실상 `불법 리베이트`의 온상으로 여겨지며 새삼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는 PMS가 신약의 효능 검증이나 부작용 재검증이란 당초 목적 대신 일부 제약사들이 자신들의 약을 꾸준히 납품하기 위한 `영업용`으로 악용된 데 따른다.
병원측 관계자들은 "약을 시판할 때 약효와 부작용을 재검증하는 과정인 PMS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결과 도출에 필요한 조사 연구비를 리베이트로 모두 치부하는 것은 문제"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제약사들이 경쟁적으로 PMS를 시행하고, 그로 인해 의사에게 지불되는 비용이 만만찮은 것이 사실"이라며 "그로 인해 영업수단으로 악용한다는 리베이트 논란에서 제약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다"고 얘기한다.
PMS가 불법 리베이트의 온상으로 치부되지 않으려면 당초 목적인 신약의 효능과 부작용 재검증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실효성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한 상태라는 지적이다.
복지부와 식약청은 뒤늦게서야 관련 방지책을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복지부는 향후 민관 합동의 `의약품유통선진화위원회(가칭)`을 통해, PMS 범위와 기준 등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식약청도 최근 `신약 등 재심사 기준 및 의약품등 안전성 정보관리 규정 개정안`을 마련, 신약과 제네릭 등 PMS 약물감시에서 판매관련 PM이나 영업직을 배제한다고 밝혔다.
식약청 의약품관리팀 관계자는 "PMS를 영업PM이나 판매관련 종사자가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라며 "제약사 리베이트 조사에서 공정위가 지적한 고객유인 행위와 PMS관련 리베이트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또한 식약청은 `시판 후 조사`를 목적에 맞게 대상을 명확해, 편법적인 악용을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더불어 PMS에 있어 의약품 등 인과관계가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약물유해반응으로 간주해 무조건 신고토록 하고, 오 남용이나 약물상호작용과 더불어 과량투여 여부도 보고에 추가되는 등 PMS 약물유해반응 보고체계가 까다롭게 바뀔 것을 예고했다.

적발된 사건은 빙산의 일각

제약사들의 리베이트 영업 관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게 업계에 나도는 얘기들이다. 최근에 적발된 일련의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렇듯 만연한 제약사와 의사들 간의 리베이트 거래 비용이 고스란히 약값으로 반영된다는 점이다. 결국 소비자들만 리베이트 비용이 포함된 비싼 약을 사먹는 셈이 된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들은 매출액의 약 20%를 리베이트에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리베이트 비용이 크다보니 매출액에서 판매비용이 차지하는 비율도 35.2%로 일반 제조업 평균 12.2%의 세 배에 달하는 기형적 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공정위는 제약시장 규모와 리베이트 비율 등을 감안할 때 불법 영업행위로 인한 의료 소비자들의 피해는 연간 2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구조임에도 한국보건산업진흥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20대 제약업체중 2006년도 영업이익률이 10%를 넘는 제약사들이 15개나 됐다. 엄청난 리베이트를 제공하고도 이같이 이익률이 뛰어난 것은 소비자들이 제약사의 불법 영업관행에 따른 비용을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만 소비자 피해 2조원 넘어

한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성명을 통해 서울경찰청이 적발한 조영제 관련 제약업체 리베이트 사건과 관련, 정부의 근본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가벼운 처벌을 지적했다.
경실련은 지난해 11월 10개 제약사의 5228억원 가량의 리베이트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된 지 불과 3개월 만에 또다시 무더기 적발이 이뤄진 것은 우리나라 제약산업이 얼마나 불투명한 영업관행을 하고 있는가를 또다시 드러낸 것이라고 개탄했다.
경실련은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가 반복되는 원인은 리베이트를 받은 병ㆍ의원, 의사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져 불법관행이 반복적으로 고질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의약품 유통의 투명성 제고와 불법 리베이트 관행 해소를 위한 정부의 관련 대책의 실효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을 수 밖에 없고 정부는 강력한 대책을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경찰청 수사와 처벌 또한 리베이트 수수자가 355명에 이르고 관련 병원도 100여 곳, 금액도 수십억원에 이르지만 불과 46명만이 불구속 되고 나머지 관련자들은 관할당국에 비위사실을 통보하는 데 그친 것은 명백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게 경실련 주장이다.
또한 리베이트 제공자인 제약업체에 대해서도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공정위 조사에서도 적발된 리베이트 규모는 5228억원이고 그로 인한 소비자 피해추정액도 2조18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경실련은 그러나 이들에게 부과된 과징금 규모는 200억원에 불과해 소비자 피해액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 미미한 처벌이라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불법적 리베이트 관행을 끊기 위한 보다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며 "리베이트 관련 적발 의약품은 즉시 약값 인하를 통해 낭비되는 비용을 줄이는 식의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김범석 기자 kim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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