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강원도 화천 회목봉과 광덕산을 찾아서

본지 `등산마당`의 막중한(?) 임무가 드디어 기자에게 내려졌다. 어느 산을 가야 하나, 요모조모 잔머리 굴리다가 평소 기자가 속해 있는 산악회를 따라 나선 게 지난 20일 오전 7시. 관광버스는 왁자지껄하는 버스 안의 선남선녀(평균연령 60대. 기자는 막내축에 속한다^^)들을 실은 채 목적지를 향해 미끄러져 나갔다.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명월리 두류산건강원에서의 오찬까지가 오늘의 산행지다. 등산은 인근 회목봉과 광덕산 일부다.

버스가 출발한지 40여분, 내부순환도로를 지나 구리시에서 포천 방향으로 접어들 즈음에 예의 산행대장께서 기내에 설치된 마이크를 잡았다.

"회원여러분,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몸 건강들 하셨죠. 오늘은 예고해 드린 바와 같이 포천과 신철원에 걸쳐 있는 회목봉과 광덕산을 등반합니다. 특히 오늘 산행은 근처에 산재해 있는 각종 산나물을 캐면서 마지막 봄의 절정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안전산행에 만전을 기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짝짝 짝!

"이어서 본 산악회 회장이신…" 짝짝∼짝!
"다음은 본 산악회 상임고문이신…." 짝짝∼짝!

`높으신` 임원님들 인사말씀이 끝나자 일행들 참았던 얘기 나누느라 여념 없고, 집행부 여성분들 준비해 온 백설기 떡과 과일 나눠주느라 부산스럽고, 총무는 회비 걷느라 볼펜 움직이기 바쁘고, 기사양반 무드 잡히게 최신 메들리 틀어대느라 바쁘고…. 대충 여기까지 수순은 눈감아도 다 아는 레퍼토리다. 기자도 예외 없이 친숙한 얼굴들과 악수와 포옹(여성회원)을 곁들인다. 특히 여성회원들은 배낭에서 온갖 먹거리가 다 나오는 관계로 평소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한다. 복분자술 사탕 바나나 포도 사과 껌 지짐이 나물무침 오이 장조림 육포 주스 치즈 등 각종 꺼리들이 무궁무진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렇다고 즐거운 산행 길에 치사하단 생각은 더더욱 아니 들고….

차창 밖을 내다보니 주변의 풍광들이 유난히 상큼하고 맑다. 지난 주말 내린 비 때문이리라. 그렇잖아도 최근 곳곳의 산 먼지가 아주 심했었는데 그야말로 꿀 맛 같은 단비였다.

이제 곧 여름이 성큼 다가오겠지. 지난봄도 엊그제 같은데 정말 세월 빠르다. 이런저런 인간사 제껴 두고 혼자만 달려가는 그놈이 야속하고 무심하기만 하다. 뭐가 그리도 바쁜지. 뭐가 그리도 급한지. 잡아야 하고 도망가야 하는 필연적인 관계라면 사이좋게 지내는 게 피차 몸에 좋을 듯하다.



서울 출발 세 시간 남짓, 버스는 백운계곡 정상에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차가 정차한 공터 주변은 정상 8부 능선 쯤 되는 높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봄나물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곰취 더덕 칡 참나물 곤드레 고사리 묵 황기 오가피 두릅 바위초 냉초 사철쑥 달래 질경이 솔나물 엉겅퀴 등 알 듯 모를 듯한 각종 산나물들이 장관을 이룬다. 산 정상 가까운 곳에서 이런 것들을 대하니 모두들 입이 딱 벌어진다. 그래, 남의 동네 와서 무슨 나물 도둑이냐 싶다. 여기서 팔아줘야지. 할머니와 아낙네들이 자기들 물건 팔기 위해 벌이는 서비스 전쟁이 치열하다. 10년 넘은 더덕주를 종이컵에 가득 부어 일행들에게 마시라고 건넨다. 하기야 술은 오래 묵은 것이 좋지.(수입 쇠고기는 20개월 미만이 좋고.) 묵과 살짝 데친 두릅은 기본 안주로 항상 옆에서 대기상태다. 모두들 한 아름씩 사서 차에 오른다. 서너 잔 얻어 마신 더덕주 영향인지 어찌 예정대로 산에 오를 수 있을는지….








회목봉(1026.6m)은 광덕산(1046.3m)과 줄기를 같이 하면서 이웃해 있는 1000m가 넘는 봉우리다. 회목은 깊은 산에 자생하는 우리나라 고유수종으로 상록 침엽수인 전나무의 다른 이름이다. 펄프나 고급목재로 쓰이고 정원수나 크리스마스 장식용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름 그대로 회목봉 기슭에는 회목이 많을 것 같으나 보이지 않는다. 회목봉의 전나무는 무분별한 남벌로 사라지고 이웃 복주산 기슭에만 드문드문 남아있다.



회목봉은 북쪽 백두대간 추가령에서 뻗어 나온 한북정맥의 한 봉우리다. 회목봉 이북의 남한 구간은 하오고개를 지나 복주산(1152m), 대성산(1174.7m)으로 이어지는데 휴전선에 막혀 더 못 올라간다.

포천군 이동면 백운계곡을 지나 한북정맥 기슭을 돌아 올라가는 광덕고개의 아흔아홉 구비는 산 많은 강원도 길을 상징하는 고갯길의 하나이기도 하다.

일명 카라멜고개라 부르는 광덕고개는 한국전쟁 중 차를 타고 이 고개를 넘던 장교가 운전병의 졸음을 내쫓아주기 위해 카라멜을 입에 넣어주었다 해서 붙은 이름이기도 하다.

자 이제 올라간다. 오전 11시. 회목봉 오름길은 664m의 광덕고개 마루에서 시작한다. 남쪽으로 뻗은 한북정맥의 산줄기를 굽어보고 동쪽으로 회목봉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광덕산을 올려다보면서 능선 길을 오른다.



광덕휴게소에서 평탄한 계곡길을 따라서 회목고개까지 오른 다음 회목봉으로 접어들 수도 있지만, 가평의 화악산(1463m), 석룡산(1163m), 명지산(1463m)과 포천의 백운산(904.4m), 국망봉(1168m), 사향산(665m), 관음산(733m)등 주변의 산들을 둘러보면서 오르는 산등성이 길로 들어서서 회목봉을 찾아가는 것이 훨씬 재미있고, 그리 가파르지 않은 능선 길은 한적해서 좋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다. 일행은 일찍이 사분오열됐다. S일보에 근무하는 산악회  문 대장과 기자, 그리고 몇몇 만이 선두 그룹이다.

능선에 올라서자 첫번째로 눈에 띄는 바위봉우리에는 자그마한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고 그 옆에는 감투처럼 생긴 바위가 얹혀 있다. 감투바위다. 올라가서 살짝 밀면 밑으로 굴러 떨어질 것 같아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하다. 

가까이 골짜기 건너편으로 광덕산과 이어진 산등성이 한쪽에 볼록하게 솟은 상해봉(1000m)도 눈앞에 있다. 동쪽으로는 화천의 산과 들이 보인다. 광덕리에서 철원의 육단리로 넘어가는 하오고개 신작로, 터널공사 현장과 하산지점인 회목봉 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광덕그린농원도 먼발치에 보인다. 배낭에서 오이를 꺼내 한 입 틀어넣는다. 다른 한켠에선 목줄기로 물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꿀꺽꿀꺽 엄청 시원하다.

속세의 문민들은 번문욕례(繁文縟禮)로 피곤하다. 즉 문도 번거롭고 예도 번거롭다. 규칙, 예절, 절차 따위가 번거롭고 까다롭다. 번거로운 관청절차가 이러하니 중생들이 얼마나 힘든가. `땡큐! 행정간소화 플랜들리.`

회목고개에서 올라오는 가파른 능선 길과 회목봉으로 접어드는 능선길이 만나는 삼거리 못미처 하산지점인 광덕그린농원 골짜기와 산기슭으로 난 등산로가 두 곳 있다.

크고 빨간 비닐로 만든 표식기를 달고 잡목을 베어내고 조성한 등산로가 광덕그린농원까지 훤히 잘 나 있다. 하나는 능선길이고 하나는 계곡길이다. 광덕그린농원에 묵으면서 하루산행을 줄기는 등산인을 위해 개발한 코스다.

광덕고개에서 감투바위까지만 힘들고 나머지 구간은 그다지 힘들지 않아 천천히 즐기는 산행 코스로 제격이다. 산행 시작 약 3시간 후 하산한 일행들은 버스로 약 20분 정도 이동하여 인근 두류산건강원의 한 식당마당에서, 단체로 준비해 온 푸짐한 점심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찐밥 취나물 두부김치 코다리조림 그리고 향토막걸리까지 곁들여서.

돌아오는 버스 안의 풍경은 가히 도처춘풍(到處春風)이다. 마주하는 사람마다 봄바람이다.  좋은 얼굴(술기운)로 남을 대하여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니, 이처럼 기분 좋은 일이 또 있겠는가. 두루춘풍 사시춘풍 사면춘풍이다.


기사양반의 흥겨운 디스코 메들리에 모두들 용수철 튀듯이 일어나 관광버스 춤 시작한다.
오늘도 마지막 코스는 망가지기다. "유행가 유행가 신나는 노래/ 나도 한번 불러본다/ 쿵쿵따리 쿵쿵따 짜리짠짠/ 유행가 노래가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기/ 오늘 하루 힘들어도/ 내일이 있으니 행복 하구나/ 유행가 유행가 서글픈 노래/ 가슴 치며 불러본다…."
전광훈 선임기자 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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