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정명은 기자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망우·용마산

비가 온단다. 망설였다. 아주 잠깐. 그리고 나섰다. 창문 밖으로 비친 청명한 하늘이 발걸음을 떼게 만들었다. 지인과 만났다. 기자의 쉼터 근처에 사는 이다. 버스를 탔다. 망우리고개를 넘어 구리시로 가는 버스다. 기자 일행은 망우리고개 못미처 동부제일병원에서 내렸다. 여전히 하늘은 청명하다. 슈퍼마켓에서 생수와 막걸리 두 통을 산다. 문득 날이 찌는 듯 덥다는 사실을 느낀다. 다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청명하다. 흰구름이 높다랗게 걸려있다. 설마 비가 오겠나….


#아줌마 족구단

약 5분여 망우리고개 방향으로 진행한다. 드넓은 공터가 나온다. 주변엔 울타리가 쳐 있다. 축구장이었다. 지금은 족구장과 게이트볼 구장이다. 족구장은 족히 10여개는 넘을 듯 하다. 게이트볼 구장은 한 개다. 울타리 너머로 시끌벅적 함성소리가 들려온다. 해당구청인 중랑구청 족구팀들 단체 시합이 있는 모양이다. 낯선 이들이 눈길을 끈다. 아줌마 족구부대다. 등 뒤엔 `서울시청`이란 글귀가 선명한 유니폼을 입고 있다. 상대팀은 남성팀이다. 공을 다루는 모습이 보통이 넘어 보인다. 한가닥 했거나 하고 있는 아줌마 부대인 모양이다, 고 생각된다.

족구장 바로 옆으로 계단길이 나 있다. 길 양 옆으론 묘지들이다. 묘지는 저마다 이름모를 꽃들을 뒤집어 쓰고 있다. 꽃무덤이다. 아름답다. 그 안에 잠들어 있는 영혼, 행복하겠다.





계단을 다 오르면 주차장이다. 망우리 공동묘지 관리사무소도 있다. 시멘트 길을 따라 접어든다. 망우산 등산이 시작된다. 등산로라고 부르기에도 애매모호하다. 묘지가 집중적으로 조성돼 있는 산 허리를 둘러싸고 약 5km 정도를 순환하는 도로다. 평소, 도로는 묘지를 찾는 이들보다 운동을 하거나 등산을 하는 이들이 주로 찾는다. 갈래길에서 왼편으로 접어든다. 약간의 경사길이다. 길 양옆으론 버드나무, 아까시 나무 등이 빽빽하다. 버드나무 아래엔 시커먼 색의 잔해물이 즐비하다. 버찌다. 고개를 들어보니 버드나무에도 버찌들이 주렁주렁하다. 잘 익은 놈으로 골라 몇 개를 따 입에 넣어보니 달콤하다. 기분이 좋아진다.

순환로는 이리 꾸불 저리 꾸불, 산모롱이를 돌아간다. 중간중간 많이 들어본 이름의 묘비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송촌(松村) 지석영(1855-1935. 의학자, 국어학자): 우두보급의 선구자이며 의학교육자. 한글 전용을 제창한 사회, 경제, 문화의 각 영역에 걸쳐 선각자. `우리 가족에게 먼저 실험해 보아야 안심하고 쓸 수 있지 않겠느냐`고 돼 있다. 소파 방정환 선생도, 독립운동가 호암 문일평 선생도, 독립운동가 위창 오세창 선생도, 독립운동가 송암 서병호 선생도, 정치가 죽산 조봉암 선생도, 만해 한용운 선생도 모두 이곳에 잠들어 계시다.

  
#왼쪽부터 지석영-방정환-문일평 선생 묘지 안내비

  
#오세창-서병호-조봉암 선생 묘지 안내비

만해 한용운 선생의 묘지에 올랐다. 도로에서 약 1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묘지는 소박하기만 하다. 바로 옆에 부인의 묘소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만해 한용운 선생과 부인이 나란히 잠들어 있는 묘지

약수터를 지난다. 약 10분 더 진행하면(입구 주차장에서 30분) 팔각 정자가 나오고 왼쪽으로 탈출로가 나온다. 용마산 가는 길이다. 비포장의 도로에서 풀냄새와 흙냄새가 뒤섞여 상큼하다. 이곳의 묘지들 역시 노오란색 꽃으로 뒤덮여 있다. 대관절 무슨 꽃이길래…. 일부러 심은 건 아닌 것 같은데. 궁금증이 일지만 참는다. 보기에 아름다우면 그만 아니겠는가.

또다시 갈래길. 왼쪽으로 접어든다. 무덤 사이로 오솔길이 조성돼 있다. 오롯하다. 정겹다. 무덤가에 자리를 펴고 앉아 도시락을 까먹는 이들도 있다. 나빠 보이진 않는다. 이곳 망우산, 아니 망우리 공동묘지에선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죽은 자와 산 자들의 만남. 그들은 단 한번도 없었을 인연을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일 게다.



저 멀리 한강이 보인다. 흐릿하다. 그래도 멋지다. 온 몸에선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간혹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상쾌하다. 중간에 조그마한 약수터가 몇 곳 있다. 높다랗게 큰 나무들 사이다. 물 맛 좋다.

문득 망우산과 용마산의 경계와 마주친다. 앞은 급경사다. 본격 용마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급경사 등산로에 2년여전 나무계단이 만들어졌다. 한산하던 등산로가 붐빈다. 가족단위 등산객들도 많다. 나무계단은 끝이 없다. 동쪽으론 계속해서 굽이치는 한강의 모습이 보이고 서쪽으론 서울시내가 아릿하게 들어온다. 극과 극을 이루는 풍광이다. 나무 계단이 끝나고 잠시 뒤 헬기장이 나온다. 전에는 없던 표지판이 큼지막하게 들어서 있다. 사적 제 455호, 용마산 5보루라 씌여 있다. 최근 발굴이 한창인 아차산 일대 보루군의 하나다. 아차산 일대는 몸살을 앓고 있다. 이곳저곳 사방이 온통 파헤쳐져 있다. 다행히 이곳은 아직 발굴 공사에 들어가진 않았다.





능선길이 이어진다. 중간 누가 쌓았는지 첨성대 모양의 돌탑도 보인다. 두 번째 헬기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아차산 가는 길이 나온다. 바로 골짜기 건너편이 아차산이다. 정상부근을 보니 말이 아니다. 나무들을 전부 잘라낸 채 발굴 공사를 하고 있어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아차산 가려던 계획을 바꿔 용마산 정상으로 발길을 돌린다. 약 10여분 가면 정상이다. 바로 아래에 체력단련장이 있다. 사람들이 많다. 용마산 정상엔 철탑이 세워져 있다. 별로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다. 남쪽으론 천호대교와 잠실, 영동대교 등이 보인다. 서북쪽으론 인왕산-북악산-북한산-도봉산-사패산-수락산-불암산이 빙 둘러가며 서울 시내를 감싸고 있다. 장관이다.


#파헤쳐진 아차산 정상


#용마산 정상

갔던 길을 돌아 내려온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한적한 바위 위에 자리를 잡는다. 사온 막걸리를 따른다. 안주도 꺼낸다. 슈퍼마켓에서 산 생두부 한모와 김치다. 맛 기가 막히다. 절로 탄성이 나온다. 조금 모자란 게 아쉽다.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가볍다. 막걸리 덕분이다. 망우산과의 경계에서 아까 온 길과 반대편 길로 빠진다. 순환도로 못미처에서 탈출한다. 사가정역 방향이다. 약 30여분 이리 꼬불 저리 꼬불 묘지들 사이로 난 길을 내려가다 보면 주택가가 나온다.
 
갑자기 날씨가 어둑해지면서 하늘이 흐려진다. 아직 해가 떨어지려면 멀었다. 드디어 비가 오려나 보다. 주택가를 벗어나니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하다. 요기를 떼우기 위해 한 횟집으로 들어서자 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바람이 몰아친다. 저녁 약속이 있다는 지인 이내 포기한 얼굴이다. 가벼운 횟감에 소주를 시킨다. 들이킨다. 비가, 바람이 그렇게 하라고 시키기라도 한 것 마냥 마구 들이킨다. 불콰해진다. 기분 좋다. 쥔장이 아낌없이 내놓는 서비스 음식도 술을 더 당기게 한다. 기분 좋다.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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