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흔들리는 건설사, 금융권 동반 위기 가속화

건설사 부실이 금융 위기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경고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부동산 거품 형성기 국내 금융기관이 폭발적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규모를 늘려 건설사와 동반 부실에 빠질 것이라는 게 시나리오다.
특히 저축은행의 경우 PF 대출부문에서 부실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현상이 확인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할 경우, 사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과감히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저축은행 PF 대출 연체율 은행권 21배

지난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월말 현재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규모는 총 12조2100억원이다. 전체 대출 중 24.4%가 PF 부문에 묶여있는 셈이다.
업계 전체적으로 보면 금감원 가이드라인인 30% 밑을 지키고 있지만 개별 업체를 놓고 보면 위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업체가 많다. 금감원은 PF 부문 부실화 우려를 줄이기 위해 저축은행업계에 올해 말까지 총 대출대비 PF 대출 비율을 30%밑으로 떨어뜨리라고 지시했다.
금감원 전자공시게시판에 따르면 9월말 현재 상대적으로 자산 건전성이 더 취약한 지방 저축은행은 물론, 대형 저축은행 일부도 여전히 30%선 밑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업계 대표주자인 솔로몬상호저축은행의 PF 대출 비율은 30.8%다. 한국상호저축은행은 이 비율이 31.9%며 서울상호저축은행은 31.1%다. 진흥상호저축은행은 아직도 33% 밑으로 끌어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이들은 상장사라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좀처럼 저축은행의 자산건전성이 개선되지 않자 금감원은 조바심을 내고 있다.
저축은행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는 마당에 실질 지표마저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시장의 심리가 더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 건설업계 유동성 부족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자 저축은행의 PF 부문 부실화도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6월말 현재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금 연체율은 14.3%로 1년 전(5.7%)보다 9%포인트가 넘게 치솟은 수치이며 은행권 연체율(0.68%)의 21배다.
건설 경기가 하반기 들면서 더욱 나빠진 것을 감안하면 연체율은 더 높아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실화되는 도산 시나리오 

저축은행이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충격을 감당할 능력이 있느냐도 의문이다. 아직은 상환압박이 크지 않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하지만 경영실적 악화가 이어진다면 자기자본비율이 낮은 소규모 저축은행을 시작으로 도산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장 먼저 대출금액을 예금으로 나눈 예대율이다. 예대율이 100%를 넘어선다면 예금으로 불린 자산보다 대출로 불린 자산이 더 많다는 뜻이다. 유동성이 부족한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이 비율이 높은 은행은 안전성에도 적신호가 노란불이 켜졌다고 볼 수 있다.
금감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주요 상호저축 은행 중 상당수의 예대율이 6월말 현재 90%를 넘는다. 대형 저축은행 중 일부 중에도 이미 100%를 넘어선 곳이 많다.
고정이하 여신비율이 10% 이상으로 치솟은 저축은행도 부지기수다. 고정이하 여신비율은 금융기관의 3개월 이상 연체된 여신이 전체 여신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높을수록 원금을 받지 못할 위험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HK상호저축은행(14.13%), 제일상호저축은행(10.11%) 등은 이 비율이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저축은행의 돈이 흘러들어간 건설업체를 중심으로 연쇄부도가 일어날 경우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뱅크런)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섬찟한 경고가 나온다.

부동산 전망 암울 구조조정 불가피

이에 따라 PF 대출의 부실 가속화로 저축은행들의 구조조정 또한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내년 부동산 경기 전망도 암울해 건설업계의 경영난이 지속되면 저축은행에 충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 17일 금융 당국은 저축은행의 899개 PF사업장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에 대한 분석을 마치고 이달 중으로 저축은행 PF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은 PF 대출과 관련해 사업장별ㆍ저축은행별로 정밀 점검을 펼쳐 충당금 적립이나 증자 등을 요구해왔다. 이번 분석 결과가 나오는 대로 금감원은 사업장을 정상, 부실 우려, 부실 등 3~4개로 분류해 맞춤형 처방을 추가로 내놓을 계획이다.
현재 검토되고 있는 방안 중 하나는 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저축은행의 부실 PF 채권을 인수하는 것이다. 이 채권을 싸게 인수해 저축은행의 동반 부실을 완충하고 나중에 부동산경기가 살아나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 관계자는 "부실 PF 채권을 10~20% 이내의 가격으로 사들이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며 "부실 채권 회수에 노하우가 있는 캠코를 적합한 인수 기관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방안은 사실상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것으로, 정부가 초기에 재정 부담을 안아야 한다.
저축은행들이 공동으로 펀드를 조성해 회생 가능성이 큰 PF사업장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이 있다. 그러나 저축은행들의 자금 여력이 크지 않아 성사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따라서 은행이나 보험사 등 다른 금융권도 펀드 조성에 참여시키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부실 우려가 있는 업체와 우량 업체 간의 인수·합병(M&A)을 통한 대형화도 적극 유도하고 있다.

건설사 과도한 채무가 문제

한편 건설사의 유동성 가뭄이 얼마나 심각하기에 금융권이 이처럼 흔들리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일반 부채비율에 잡히지 않는 우발채무(미래에 특정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확정되는 잠재적 채무)까지 감안하면 건설사의 부채비율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경고한다.
따라서 지금의 돈가뭄이 심각해진다면 일부 건설사 도산 건설업계 전반적 채권금리 인상 건설사 자금마련 부담 가중 연쇄 도산으로 이어져 PF 등 공격적인 투자를 늘려온 금융권이 흔들리게 되고, 그에 따라 가계마저 뒤흔드는 시나리오가 이어질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최악의 상황이지만 과거 수년 간 넘쳐난 유동성으로 지방현장을 중심으로 건설사가 무리한 신규수주를 확대해온 것을 감안하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단 6월말 반기보고서를 기준으로 살펴본 국내 주요 건설사의 재무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8월 현재 도급순위 1위부터 10위인 대형건설사의 부채비율은 대체로 200%를 넘지 않는다. 외국 주요 기업에 비해서도 대체로 건전한 상태다.
하지만 일부 건설사는 이미 과도한 부채로 몸살을 앓고 있다. 9월말 현재 남광토건의 부채비율은 497%에 달한다. 신성건설(542%), 이테크건설(693%), 풍림산업(380%) 등의 부채비율도 상당한 수준이다.
이들 건설업체의 부채비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고 있다. 우발채무가 속속 확정되고 있는 데다 회사채 금리 인상으로 자본 조달 비용 부담은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비상장 중견 건설사 가운데 일부는 부채비율이 1만%를 넘은 곳도 있다는 게 관계자의 증언이다.
일단 정부 당국은 대주단협약 등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시장은 전혀 반응하지 않고 있다. 경영권을 잃거나 기업 신인도가 떨어질 가능성을 우려해 건설사 단 한 곳도 아직 이번 협약에 동참하지 않은 게 증거다. 김범석 기자 kim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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