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연신내에서 위문 거쳐 도선사까지 북한산 종주기

이번엔 모처럼 마음먹고 북한산 종주 산행에 도전하기로 했다.

출발지는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 3번 출구 롯데슈퍼 앞이다. 불광역은 등산객이 너무 붐벼 이쪽을 택했다. 시간도 평소보다 약간 이른 오전 9시, 총 인원 세 명에 목적지는 북한산에서 제일 높은 백운대 정상까지다. 이날 날씨는 흩날리는 가을비에 몸으로 느껴지는 체감온도가 제법 쌀쌀했다.

롯데슈퍼에서 일회용 컵라면과 약간의 소주를 준비하고 멀고 먼 산행길에 나섰다. 오늘처럼 으실 으실 추운 날은 컵라면과 소주가 제격이다.

은평경찰서 불광지구대를 지나면 불광중학교가 나타난다. 학교 담벼락을 끼고 주택가 골목으로 접어들어 조금만 가면 왼편은 테니스장이고 오른편은 철조망을 두른 주말농장들이 널려 있다. 압구정동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우리 일행중 한 명인 강 원장, 소리 없이 내리는 가을비를 보더니 철조망 앞 등산용품 파는 아주머니에게서 우의와 배낭덮개를 산다. 이 과정에서 흥정의 원리에 입각, 1회용 우의 2개를 덤으로 받았다. 이젠 억수같은 비가 내려도 걱정 없다.

철조망의 열린 출입구로 들어서면 양쪽에 제법 큰 덩치의 김장용 배추들이 맛깔스럽게 위용을 뽐내고 있다. 저 배추들도 정성어린 사람의 손길이 수없이 닿았겠지. 인생살이 자체가 공을 들이지 않고는 되는 것이 없지 않은가?

여기서 약간의 비탈길을 올라서면 ‘선림공원지킴터’가 나온다.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이다. 20여 분을 가면 약수터와 팔각정이 자리한 체력단련장이 있다. 일행들 본 체도 않고 우측 오솔길로 올라간다. 다시 10여 분 가면 조그마한 능선 정상이 나온다. 여기서 직진해 내려가면 잣나무숲이 나오는 하산하는 길이며 능선에서 왼쪽으로 꺾어 철탑을 지나가면 향로봉 가는 방면이다.

몸에서 땀이 비 오듯 한다. 우리 일행들 쉴 생각도 않고 그저 앞만 보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물 마시는 시간도 아까워 걸어가면서 한 모금 씩 한다. 또다시 30여 분을 가니 먼발치에 족두리봉이 보인다. 왼쪽은 향로봉 북동쪽 끝자락이다.



비봉능선에 접어들어 비봉을 지나간다. 이렇게 걷기를 1시간40분, 사모바위 옆 헬기장에 도착했다. 시계바늘은 10시 40분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 일행들 시원하게 물 들이키고 배 한 조각씩 나눠 먹는다. 여기서부터 대남문까지는 약 40분이 소요되는 거리다. 중간에 승가봉과 문수봉을 만나는데 우리 일행은 문수봉은 우회, 깔딱고개로 악명 높은 ‘청수동암문’ 쪽을 택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릴 때는 바위가 미끄러운 문수봉은 피하는 게 안전하다는 판단에서다.

헉…헉…헉. 청수동암문 올라가는 고개에서 숨이 턱에 닿는다. 머릿속을 비우고 아무 생각 없이 발길 옮기는 게 상책이다. 그래봐야 힘든 시간 10분이면 해결된다. 청수동암문 정상 성벽에 올라서니 시원한 맞바람이 일행을 맞이한다. 정말 살 맛 나는 상쾌함이다.

대남문에 도착하니 정확히 11시 20분이다. 예상대로 40분 걸렸다. 총 2시간 20분 소요. 여기서 다음 중간 기착지는 대성문, 보국문, 칼바위능선 끝자락을 지나 대동문이다. 소요시간 30여 분. 성곽 능선 따라 오르막 내리막하는 길이 약간 힘은 들어도 재미가 있다. 멀리 성곽 계단에 줄지어 오가는 등산객의 행렬이 마치 움직이는 단풍나무처럼 아름답다. 길 주변의 나무에는 자신들의 이름을 알려 주는 명찰들이 바람결에 흔들리며 춤을 추고 있다. 개나리, 진달래, 산딸나무…. 다시 봄이 오면 화사한 몸치장을 하고 우리를 부르겠지? 그래, 봄이 오면 달려와 꼭 안아주마.


북한산성은 경기도 문화재 사적 162호로 지정되었으며, 백제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할 때 고구려의 남진세력을 막기 위해 132년(백제 개루왕 5)에 쌓았다고 한다. 1232년 몽골의 제2차 침입 때 몽골군과의 격전이 여기서 벌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외침이 있자 외곽에 성을 쌓자는 의견이 있어 1659년(효종 10) 송시열(1607~1689)에게 명해 쌓았고, 1711년(숙종 37)에는 대대적인 공사를 했으며 지금 남아 있는 성벽은 이때의 것이다. 성에는 대서문, 동북문, 북문 등 13개의 성문과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으며 많은 우물과 건물터가 곳곳에 남아 있다.

대동문에 도착, 간이 화장실을 이용하고 돌아서니 벌써 12시다. 주변에는 등산객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서 식사를 하고 있다. 여기서 백운대 바로 아래 위문까지는 약 1시간이 소요되니 점심식사는 아무래도 위문에서 해야 될 것 같다. 밥을 먹고 나면 꾀가 나서 중간에서 하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동문에서 동장대 가는 초입 성곽 길은 출입금지를 알리는 표지판과 함께 로프 줄로 주변을 막아놓았다. 자연스레 돌아서 10여 분을 가면 동장대가 나온다. 다시 10여 분을 더 가니 땅속에 박아 놓은 조그마한 돌 비석 표지가 위문 1.5㎞를 가리킨다. 그리고 잠시 후 나타나는 용암문. 용암문에서 하산하면 우이동 도선사가 나온다. 노적봉에 도착하니 12시 40분. 여기서부터 위문까지의 코스가 꽤나 까다롭다. 중간 중간 쇠줄에 의지해야 한다. 물 먹은 바위가 여간 미끄럽지 않다. 더군다나 양쪽에서 오가는 등산객들로 말미암아 수시로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한다. 모르긴 해도 백운대 길도 한 두 주 지나면 겨울 장비 없이는 얼어서 못 다닐 것 같다. 지금 이곳의 기온이 몇 도는 더 떨어진 차가운 느낌이다.

드디어 오후 1시 위문에 도착했다. 위문에서 20여 분이면 백운대 정상인데 백운대 가는 긴 행렬이 꼼짝 않고 서 있다. 주변의 고른 땅에 돗자리 펴고 식사준비 한다. 오전 9시에 연신내 전철역을 출발한 지 꼭 4시간 만에 백운대 정상 밑의 위문에서 제대로 자리 잡고 앉은 셈이다. 오는 도중 천지가 휴식처인데 유독 이제서야 신발 벗고 마음의 여유를 찾아본다.
 

비교적 빨리 온 편이다. 어떤 이들은 불광동에서 출발, 같은 코스로 백운대를 거쳐 우이동 하산에 10시간 여를 소비하기도 한다.

준비해온 보온병의 뜨거운 물을 컵라면에 붓고 면발 익을 때까지 삶은 계란에 소주 몇 잔 거푸 들이킨다. 주위의 찬 공기가 소주의 취기에 녹아든다. 얼굴이 붉게 물든다. 단풍도 붉게 물든다. 오후 2시 조금 못 된 시간에 짐을 꾸려 하산 준비한다.

하산은 위문에서 ‘백운대탐방지원센터’ 방면으로 거리는 약 1.8㎞. 비교적 짧은 구간이다.

내려가는 중간에 나오는 ‘백운산장’은 라면과 국수를 사 먹는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그래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조금 더 내려가면 도봉경찰서 소속 ‘산악경찰대’가 나타난다. 등산객의 조난 및 각종 안전사고를 해결해 주는 ‘폴맨’(폴리스 맨의 준말)들이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기자도 십 수년 전에 이곳을 방문, 취재한 적이 있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더니 가슴속에 회한이 밀려온다. 뒤풀이는 도선사를 한참 내려와 시내버스 종점 가기 전의 아담한 2층 호프집에서 닭 날개 튀김과 생맥주로 대신했다. 주문을 하고 시간을 보니 오후 3시 가까이 되었다. 오늘의 총 산행시간은 약 6시간. 생맥주가 도착하고 일행들 건배를 외친다. 누구의 입에선가 자신에 찬 큰 목소리 들려온다. “12월에 종주 한 번 더 합시다.” 허걱^^.전광훈 선임기자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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