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닳도록 빌더라도 소원 성취할 수만 있다면…
손바닥 닳도록 빌더라도 소원 성취할 수만 있다면…
  • 승인 2009.02.09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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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눈쌓인 북한산 형제봉을 가다


#형제봉에서 바라본 보현봉 능선

지난 주말 모처럼 눈이 쌓인 겨울 등산에 나섰다. 올 겨울은 유난히 가물어서 겨울철 등산 장비인 아이젠을 착용하고 산행할 기회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때마침 전 날 눈이 내린 것이다. 지인 두 사람과 함께 종로구 평창동 옛 올림피아호텔 건너 ‘예강’이란 한우고깃집 앞에서 만났다. 여기서 언덕을 올라서다 우측으로 꺾으면 200미터 전방에 형제봉 매표소가 있다.

오전 10시40분. 형제봉 매표소를 들어서니 주변이 온통 하얗다. 그동안 쌓인 먼지들이 눈 속에 파묻혀 천지가 훤하다. 기분 너무 상쾌하고 날씨도 아주 맑다. 10분 남짓 올라가니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은 사찰인 ‘구복암’ 가는 방면이고 나머지 길은 우리 일행이 목표한 형제봉 오르는 코스다.

여기서부터 눈이 얼어 길이 여간 미끄럽지 않다. 아이젠을 착용할까 했지만 일행들 아무도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시도 바닥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긴장하지 않으면 앞무릎 찧기는 정해 진 수순이다.

형제봉은 큰 봉우리 2개가 사이좋게 솟아 있어 형제봉이라 불리운다. 매표소에서 올라가다 먼저 만나는 곳이 아우봉이다. 이곳까지 크고 작은 바위 틈새를 낑낑대며 손으로 붙잡고 올라선다. 얼음이 낀 바위를 손으로 잡고 올라가니 장갑 속으로 찬 기운이 엄습한다. 아우봉을 거의 다 간 지점에서 바위를 올라채는데 오른쪽 무릎이 바위에 박혀있던 나무뿌리와 부딪혔다. 무릎에서 약간의 피가 배어 나왔다. 군대시절 누구나 경험했던 정강이를 걷어차인 그 느낌이다. 부상은 다행히 가벼웠다. 옆의 지인 한마디 한다. “선수도 다치나?” (내가 언제 선수라고 한 적 있었나.)

로프에 손을 감고 힘겹게 바위를 오르니 드디어 아우봉 정상이다. 출발 한지 50여 분만이다. 몸에서 땀이 비 오듯 한다. 눈 쌓인 바위에 걸터앉아 일행들 커피 한잔 마신다. 능선 저 멀리 눈에 덮인 보현봉이 들어온다. 몸속으로 스며드는 진한 커피 향과 설경의 보현봉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인간이 자연에 안기어 얻어 가는 큰 기쁨이다. 산밑을 내려다 보니 평창동의 집들이 빼곡이 들어 서 있다. 숨 가쁘게 살아가는 우리네 터전이다. 무엇이 이토록 우리를 바쁘게 내몰았을까? 허리띠 느슨하게 풀고 좀 여유롭게 살수는 없는 걸까. 설밑 물가가 턱없이 올랐다고 우리 민초들 얼굴이 어둡다. 곳곳에서 IMF 시절보다 더 어렵다고 한숨이다. 이 와중에 위정자들은 서로 싸움질에 정신 빼고 국민의 고통은 아예 보이지가 않는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리석은 중생들. 이런 저런 생각이 들 땐, “형님봉을 향해 돌격 앞으로”가 정답이다.


#형제봉 주변의 설경들

11시40분 형님봉에 도착했다. 주변에선 등산객들이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상케 하는 눈 덮인 소나무를 배경삼아 기념촬영이 한창이다. 역시 겨울산행은 눈이 쌓여야 제격이다. 배낭에서 제주도 밀감을 꺼내 한 입 오물거리면서 이마의 땀을 닦는다. 대성문을 향해 30여 분을 더 가니 ‘일선사’ 못 미쳐 왼쪽에 평창동으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오른쪽은 정릉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일선사 입구에는 ‘천일기도 입재’란 플래카드가 바람에 펄럭인다. 그래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빌어 소원성취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꼬.

우리 지인들, 매표소 들어서면서 초지일관 나누는 대화가 요즘 그 잘나가는(?) 주식에 코 빠트리고 어떻게 하면 만회할까하는 것이었다. 어느 한 양반 주위에 들릴 듯 말 듯 ‘대통령이 주식 오른다고 사랬잖아…’ 자고로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남의) 탓이거늘.



여기서 조금 더 가니 눈에 가린 푯말이 나타난다. 대성문 정상이 20여 분만 가면 되는 거리다. 제법 숨이 차다. 대성문의 마지막 관문인 나무계단을 올라 뾰쪽한 바위 돌을 지나서니 큰 대문이 눈에 들어온다.

대성문은 대남문과 보현봉을 사이에 두고 대칭의 위치에 있는데 대남문처럼 홍예식에 문루를 갖춘 성문으로 서울시에서 깔끔하게 복원시켜 놓았다. 또한 경복궁과 산성 내의 행궁을 연결시켜주는 길목을 지키는 성문이어서 왕격에 어울리게 축조, 삼각산 성문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성곽 뒤쪽은 음지라 햇볕도 들지 않고 춥다. 앞쪽의 적당한 자리를 찾아 준비해 간 컵에 막걸리를 가득 채운다. “올 한 해도 몸 건강하십시오.”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대성문

하산 길은 정릉 청수장 방향으로 잡았다. 약간을 내려가니 옹달샘이 나온다. 겨울철이라 인적이 드물어 외롭게 조차 보인다. 일행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다. 속세의 세진을 씻어내듯 시원하기만 하다. 옹달샘 옆에는 내려앉은 눈을 뒤집어 쓴 자그마한 소나무가 마치 푸들 강아지처럼 앙증맞게 서 있다. 내려가는 길이 생각보다 덜 미끄럽다. 다행이다. 겨울산행은 누가 뭐래도 안전이 제일이다.

길 옆 조그마한 계곡에는 정릉천으로 흘러가는 물 소리가 마음의 평온을 부르듯 감미롭게 울려 퍼진다.

정릉 청수장 버스종점 인근의 ‘산장두부촌’(02-919-1599)에서 황태찜 정식으로 요기를 한다. 1인분이 8000원인데 뜨겁게 달군 각자의 솥뚜껑에 황태 한 마리를 세 토막 내어 나오는데 양이 꽤 많다. 반주를 곁들여 다 먹고 나니 배가 무척 부르다. 이번 주말의 마무리도 산행으로 저물어 간다. 전광훈 선임기자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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