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 북한산 서부능선

모처럼 혼자서 북한산을 찾았다. 연신내에서 비봉능선따라 사모바위 지나 대남문에서 구기동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머리에 그려본다. 지하철3호선 연신내역에서 내려 불광중학교 담장을 끼고 들어서 준식이네 주말농장을 거쳐 올라가면 선림공원지킴터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산들머리는 시작된다. 봄의 꽃인 진달래와 벚꽃이 만발하여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백화 만초가 제빛을 뽐내는 아름다운 봄이라 그런지 사방이 꽃으로 덮여 있어 출발부터 기분이 상쾌하다. 20여 분 올라가니 운동기구들이 즐비한 놀이터가 나온다. 요즘은 동네 뒷산만 올라가도 각종 최신 운동기구들이 갖춰져 있다. 예전에 헬스크럽에서 보던 것 들이다. 지자체에서 구민들 건강복지를 위해 예산을 반영한 덕택이다. 평행봉, 철봉,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온몸 거꾸로 놓기, 팔위로 들어올리기 등의 기구들이 주민들과 한 식구가 되어 호흡을 맞추고 있다. 놀이터 옆에 자리한 비산약수터에서 초롱박으로 시원한 물 한잔 들이킨다. 너무 시원한 나머지 온몸에 전율이 온다.

오르막길을 10여 분 더 가면 조그마한 능선을 올라서는데 여기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향로봉 비봉가는 코스다. 향로봉을 약 1㎞ 남긴 지점이다. 여기서 10여 분 더 가면 왼쪽으로 기자촌입구와 구파발 방면에서 오는 길과 합류된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뒤를 돌아보니 은평뉴타운과 일명 고비사막이 한눈에 들어오고 좌측으론 멀리 족두리봉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주변 땅속에서 피어 올라온 이름 모를 자그마한 노란 꽃잎이 자기도 봐 달라고 떼를 쓴다. 다시 10여 분을 올라가니 향로봉이 웅장한 모습으로 눈앞에 서 있다. 이곳 봉우리는 북한산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기도 하다. 비봉 사모바위 문수봉 보현봉은 물론, 능선 몇 겹 건너 왼쪽으로 노적봉 백운대 인수봉이 보이고 정면으론 남산타워와 인왕산이 버티고 있다.

점심은 사모바위 근처의 바위 위에 돗자리 깔고 해결한다. 500㎖ 캔 맥주, 명란젓, 갈치속젓, 양념된장과 청량고추, 삶은계란,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 신의면에서 올라온 이원근천일염(061-271-4324)에 여수 돌산 갓김치가 차려진다. 야외 도시락반찬치곤 꽤나 진수성찬이다. 때마침 발아래 승가사 사찰에서 정오를 알리는 타종 소리가 은은히 들려온다.

캔 맥주 한 모금 들이 키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이 기분 그냥 넘어 가면 욕먹지.

-해마다 봄이 되면 (조병화)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쉬임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무 가지에서, 물 위에서, 뚝 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식사를 마치고 승가봉을 지나면서 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한다. 문수봉과 청수동암문을 가는 양갈래 길에서 우회하여 청수동암문 오르는 깔딱고개 를 향한다. 올 때마다 힘든 코스다.

대남문에 당도하여 인근 문수사를 보니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오색찬란한 등이 사찰 전체를 덮고 있다. 봄날 햇살을 받아 화려하기 그지없다. 부처님의 자비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지길 빌어 본다.

지금부터는 하산하는 길이다.

대남교 양 옆에는 각종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꽃은 배꽃처럼 희고 열매는 팥 같이 작다고 붙여진 팥배나무, 옛날 짚신바닥이 헤어지면 이 나뭇잎을 깔았다는 신갈나무, 물속에 가지를 넣으면 물을 푸르게 한다는 물푸레나무, 낙엽을 태우면 노란재가 남는다는 노린재나무, 열매가 새들의 먹이가 되는 귀룽나무,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는 다릅나무와 광대싸리나무, 생강나무, 물오리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등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대남교를 시작으로 고광교 국수교 철쭉교 돌단풍교 우정교 귀룽교 적송교 버들치교 박새교를 지나 내려 오니 구기동지킴터가 나타난다. 입구의 자주 찾는 산유화에서 동동주에 파전 주문하여 시원하게 한 잔하니 봄기운이 사르르 몸속으로 녹아든다.

어느 듯 길 떠나 온지 네 시간이 넘어 섰다.

전광훈 선임기자 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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