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 삼각산 백운대

삼각산 백운대 정상은 주변이 온통 운무로 덮여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웠다.

폭우가 쏟아진 다음날도 하늘은 잔뜩 흐려 또 한번 비바람이 몰아 칠 것만 같은 날씨다. 태풍 때나 느껴 보는 세찬 바람은 몸을 가누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 같은 날씨 탓에 백운대 정상에서 만난 등산객은 손을 꼽을 정도로 몇 사람에 불과했다.

은평구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34번(의정부행)버스를 타고 북한산유원지 입구에서 내렸다. 시간은 낮 12시 20분.

탐방지원센터를 지나니 예전의 북한산 야외수영장 자리에 북한산이주단지조성공사를 하느라 분주하다. 위쪽에서 장사하는 집들을 이곳으로 이주 시킬 모양이다. 북한동은 삼국시대부터 존속하여 온 법정마을이다. 60여 호의 가옥과 약 99만㎡(30만 평)의 사유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사현장을 왼쪽으로 끼고 돌면 계곡탐방로가 나온다. 전날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내려서인지 수구산장 아래의 계곡물이 회오리를 일으키며 힘차게 흘러간다.

때마침 40대의 여인이 바위에 서서 남도창을 목청 높여 부르고 있다.

들어 보니 김승희의 남도창 인 듯싶다.

동녘은 많지만

나의 태양은 다만 무등 위에서 떠올라라

나는 남도의 딸

문둥이처럼, 어차피, 난,

가난과 태양의 혼혈인걸,

만장 펄럭이는 꽃상여길 따라따라

넋을 잃고

망연자실 따라가다가

무등에 서서

무등에 서서.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 위에

요화처럼

이글거리며 피어나던

붉은 햇 덩어리를 보았더니라,

모두가 사당패가 되자함인가,

백팔번뇌 이 땅을 용서하자 함인가,(이하 생략)

계곡탐방로를 올라서니 등산로 입구에 식당들이 모여 있다. 제일산장(02-387-0908) 금강산장(02-385-3064) 만석장(02-385-2093)등이 파전과 막걸리를 차려 놓고 오가는 등산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하산주라면 들러 볼 텐데 쯥쯥... 입가에 군침이 싹 돈다.

사찰 ‘보리사’를 끼고 백운대를 향해 힘차게 전진한다. 가파른 돌계단 옆으로 개벚나무, 팥배나무, 졸참나무, 아카시나무 등이 나를 반겨준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여 속도를 내어 올라간다. 주변에 오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한참을 올라가니 한 팀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반가운 나머지 인사를 건넨다. “많이 드세요” “식사 좀 같이 하시죠” 산행의 기본예절이 만나는 이 마다 인사를 나누는 것 이렸다.

머리 위로 백운대가 뿌옇게 나타난다. 주변이 온통 운무로 뒤덮여 별천지에 온 느낌이다.

기온이 급강하 한다. 위문에 도착하니 바람이 더 세게 몰아친다. 우이동에서 올라왔다는 최사장께서 말을 걸어온다. “백운대 정상까지 올라가실 겁니까?” “네, 올라가야죠. 오늘은 등산객도 없으니 줄 서서 갈 일도 없겠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방향감각을 잃을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 바람마저 쌩쌩 거리니, 여기가 무슨 에베레스트 히말라야봉인가, 일순 긴장감이 감돈다. 비장한 마음으로 쇠사슬을 잡고 올라챈다. 어렵사리 약 10여 분을 올라가니 백운대 꼭대기의 태극기가 강풍에 굉음을 내며 펄럭이고 있다. 시간은 오후 2시. 디카로 몇 컷 찍고 심호흡을 해 본다. 기온은 영하로 떨어져 온 몸이 추위로 떨렸지만 상쾌한 기분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백운대 옆의 인수봉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운무에 휩 쌓인 자태가 경이롭기까지 하다.

하산은 우이동으로 잡았다. 위문으로부터 제일 가까운 1.8㎞거리다. 백운산장에서 등산객 한 팀이 삶은 계란을 먹으면서 기자에게도 먹어 라고 건네준다. 그냥 올 수 없어 배낭에 있는 신안 하의도 천일염을 계란에 뿌려주고 발길을 재촉한다. 약 40여 분 후 도선사 입구에 다다랐다. 할머니들이 난장에 차려 놓은 간이테이블에 앉아 걸쭉하게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킨다.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이 맛, 천하를 얻은 기분이다.

전광훈 선임기자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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