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 도봉산 여성봉-오봉-신선대

오늘의 산행은 도봉산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코스로 정했다. 출발은 송추유원지, 그리고 여성봉과 오봉을 거쳐 도봉산의 최고봉인 자운봉(740M)과 만장봉(718M) 선인봉(708M)을 지척에서 볼 수 있는 신선대(725M)에 오르기로 했다. Y자 계곡으로 이어지는 자운봉 코스는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주봉 등의 웅장한 암벽을 감상할 수 있고 철 난간에 몸을 맡긴 채 올라야하는 스릴 넘치는 구간이다. 산 전체가 하나의 큰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양한 기복과 굴곡의 암릉길로 산행의 재미를 더해 준다.


불광시외버스터미널에서 360번 좌석버스(704번 시내버스도 가능)를 타고 송추유원지에서 내린다. 유원지는 한가하다. 아직 제 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계곡엔 며칠전 내린 비로 물 흐르는 소리가 가득하다. 이름모를 풀꽃들이 소박하면서도 탐스럽게 피어 행인들의 기분을 한껏 돋운다.

오봉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1시30분. 탐방지원센터의 여성 근무자가 “즐거운 산행되시라”고 공손히 인사를 건넨다. 입장료도 없이 통과하는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10여 분을 오르면 양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이 송추계곡의 송추2교를 기점으로 송추3교를 지나 사패능선과 사패산을, 아니면 송추2교에서 송추폭포를 거쳐 포대능선과 자운봉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여성봉과 오봉을 감상한 뒤 자운봉, 만장봉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송추 남능선을 타고 여성봉으로 향한다. 오늘처럼 화창한 봄 날씨에 송추계곡보단 사방이 탁 트인 여성봉과 오봉 쪽에 마음이 더 끌린다. 여성봉 1.4㎞, 오봉 2.6㎞를 알리는 푯말이 미소를 머금고 행인들을 맞이한다.



이제 슬슬 땀 좀 흘려볼까. 20여 분을 쉼 없이 올라간다. ‘줌마’ 팀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긴 행렬을 이룬다. 요즘 부쩍 늘어난 등산객들 중엔 주부 등산객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침에 남편과 아이들을 회사와 학교에 보낸 후 도시락과 과일 등을 준비하여 지인들과 끼리끼리 모여 산을 찾는 일이 이제는 생활화되다시피 했다. 집에서 무료하게 TV나 시청하고 있느니 동네 뒷산이라도 오르면 얼마나 건강하고 넉넉해 보이겠는가. 거기다 야외에 나와서 절친한 사람끼리 도시락 먹으면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얘기도 나누는 맛이 보통 맛이겠는가. 이렇다보니 저녁에 남편에게 바가지도 덜 긁지 않을까? 내심 상상해 본다. 우리 사회는 누가 뭐래도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

여성봉행 급경사길 못미쳐 조망이 좋은 넓은 바위에 걸터앉아 물 한 모금 청한다. 멀리 남쪽으론 북한산의 의상봉이 보인다. 북쪽으론 사패능선과 암릉으로 이뤄진 사패산 정상이 보인다. 하늘은 더 없이 맑고 나무는 물기를 머금은 채 싱그란 연록으로 빛난다. 여성봉을 500미터 앞두고 깔딱고개와 맞닥뜨린다. 매주 등산으로 단련된 몸이지만 차올라오는 가쁜 숨이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 번 보고…가파른 나무계단과 쇠사슬 험로를 지나 여성봉에 다다른다.



보기에 약간 민망한 광경이 머리 위에 펼쳐져 있다. 여성의 은밀한 신체 일부를 닮은 저 바위. 그래서 여성봉이다. 그 민망함을 밟고 정상에 오르니 멀리 오봉, 그리고 더 멀리 북한산 백운대의 고고함이 한편의 동양화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예술이야, 예술!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10여 분 머물다 오봉으로 향한다. 시계가 12시30분을 가리킨다. 오늘 점심은 아무래도 자운봉 근처의 Y계곡 쪽에서 해결해야 될 것 같다. 그래야 마음놓고 막걸리 한 잔 들이키지. 신선대 오르는 험한 길을 앞두고서 술은 절대 금물이다. 암∼부모님께 물려받은 몸, 명대로 살다가야지(앞으로 자살할 계획을 가지신 분들은 특히 명심하시길 바라오). 약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배낭에서 사과 한 개 꺼내 입에 문다. 오늘따라 사과 맛이 꿀맛이다.

오후 1시, 오봉에 도착한다. 다섯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 광경이 환상이다. 물 한잔 마시고 길을 재촉한다. 자운봉을 1.7㎞ 남긴 지점이다.

약 20여 분을 가니 두 갈래 길의 능선이 나온다. 직진하면 자운봉, 만장봉(1㎞)이고, 왼쪽은 송추폭포(1.6㎞)로 내려가는 길이다. 여차하면 송추계곡으로 하산 길을 잡을 수도 있지만 신문사 데스크 정모 국장에게 뭔가를 보여 주기 위해, 오늘은 필히 자운봉 만장봉을 정복해야 한다. 평소 기자가 접근이 용이한 기자촌 방면이나 불광동, 연신내, 구기동, 평창동 등에서 비봉능선을 즐겨 타는 것을 빗대 “선배는 그곳까지가 한계야, 한계”라며 늘상 빈정대는 소리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30여 분을 오르니 우이암(1.9㎞), 마당바위(0.9㎞), 도봉탐방지원센터(3.2㎞)로 내려가는 길과 만장봉을 300미터 남긴 지점이 교차한다. 여기서부터 자운봉 가는 내리막길 나무계단이 제법 길게 뻗어있다. 내리막길이 길수록 신선대 오르는 길이 높고 험할 텐데…별 수 있나? 만들어놓은 길, 따라 갈 수밖에…. 신선대 오르는 길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왼쪽으로, 중간에 쇠사슬이 만들어져 자연스럽게 지나치도록 되어있다. 약간 위험하기도 했지만 스릴은 넘쳐 났다. 오후 2시10분, 드디어 신선대 정상에 올라섰다. 자운봉과 만장봉, 선인봉은 등산로가 없어 북한산 도봉지구의 등반 가능한 최고봉이 신선대이다. 바로 눈앞에 서 있는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은 그 기상과 위용이 하늘을 찌를 듯 위풍당당하다.



마치 고급 한정식 집에서 사용하는 한국화 8폭 병풍을 펼쳐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새로운 감회가 가슴속 깊이 밀려온다. 어렵사리 정상을 정복한 기분일 게다.

오후 2시40분, 갑자기 허기가 심하게 느껴진다. 신선대를 내려와 포대능선으로 이어지는 Y계곡 정상 인근 ‘포대능선 정상에서 사패능선 따라 사패산으로 가는 등산로를 작년 11월부터 제한한다’는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낀다. 부근 바위에서 일회용 사발 면에 예의 단골로 가져오는 삶은 계란, 여수 돌산갓김치를 곁들여 막걸리 한잔 쭉 들이킨다. 아휴∼굳이 이 기분 말하고 싶지 않다. 알 만한 사람 다 알테니까.

오후 3시30분. 하산 길은 우이암과 원통사를 거쳐 무수골 입구에 이르는 약 4.1㎞의 비교적 긴 코스를 택했다. 무수골 입구에서 도봉역까지도 한참을 내려 가야한다. 이참에 우리 데스크 정모 국장을 망연자실하게 만들어 놔야 제대로 기강(?)이 서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 본다. 하기야 평소 인간성(?)을 보면 기대는 곧 실망을 동반하면서 다가오겠지만….

우이암을 지나 촛대바위를 거치니 도봉경찰서 산악구조대가 상주해 있는 사찰 원통사가 나타난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오색찬란한 연등으로 새 단장에 여념이 없다. 여기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방학동 쌍문동 가는 길이다. 계곡의 맑은 시냇물 노랫소리와 시를 가슴에 담을 요량으로 왼쪽의 무수골 입구로 방향을 잡는다. 인적이 드문 길, 흘러가는 계곡의 물과 속삭이듯 걸으니 어느덧 마음엔 평온함이 가득하다. 무수골탐방지원센터를 빠져 나온 시간이 오후 5시30분. 총 6시간 소요됐다. ‘무수골 자연상회(954-8725)’ ‘느티나무 집’ ‘밤골상회’ 등의 식당들이 집 떠난 길손의 벗이 되어 반갑게 맞아준다.

jkh4141@hanmail.net <전광훈 님은 본지 선임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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