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기자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 경기도 남양주시 운길산

오전 10시15분 용산역을 빠져나가는 중앙선 국수행 전철 안은 등산객들로 붐볐다. 간신히 자리를 잡은 일행들은 모처럼 나가는 교외선을 타서인지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얼굴들이 밝다. 작년 12월 중앙선 복선전철이 덕소에서 팔당, 운길산, 양수역을 거쳐 국수역까지 이어지면서 이 일대를 관광명소로 변모시켰다. 향후 용문역과 내년 하반기로 예상되는 원주 문막역이 개통되면 명실상부한 경기와 강원도 일대를 일일 등산으로 다닐 수 있다.



1시간 여를 달려 온 전철은 일행을 ‘운길산역’에 쏟아 놓고 두물머리(양수리)의 절경을 양 차창에 가득 담고 양수대교를 질러간다. 역 대합실을 나서니 ‘진중1리 마진부락’이라고 새겨진 큰 돌기둥이 서 있고 인근 탐방지를 안내하는 관광 안내판이 크게 세워져 있다. 운길산(610m)은 서울에서 동쪽으로 40km,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되는 양수리에서 서북쪽으로 4km 거리에 솟아 있는 산이다. 산 아래까지 시내버스가 연결돼 교통이 편리하다.

언제부터인지 운길산 입구엔 식당들이 제법 많이 들어섰다. 한방백숙 전문 ‘옻닭 전문점(016-346-2094)’, 전통 가마솥 두부 전문 ‘운길산장(031-576-5952)’, 장어와 고추장구이 전문 ‘두물장어(031-576-8727)’, 엄나무 백숙과 유기농 채소를 판매하는 ‘은혜농원(031-577-5682)’ 등이다.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마을 슈퍼마켓에서 막걸리 몇 통 사고 은혜농원에서 즉석 미나리즙을 한잔씩 들이킨다. 매실 액기스를 첨가하여 일회용 커피잔에 가득 따라주고 1000원을 받는다. 옆에 진열된 생미나리 4㎏이 1만원이라는데 아무래도 비싼 느낌이다. 일행중 수산시장에서 ‘은혜수산(02-824-5965)’을 운영하는 이가 자신의 가게와 같은 상호라고 이곳에 들렀나 본데…. 기자가 한마디 거든다. “아주머니 여기 있는 4㎏ 큰 둥치가 1만원인데 이것에 비하면 컵에 들어가는 미나리양이 너무 적잖아요.” “알았어요, 반 컵씩 더 드릴게요.” 미나리 아주머니 눈썹 약간 치켜뜨곤 호쾌하게 대답하면서 녹즙기를 재가동한다. 역시 덤으로 얻어먹는 맛이 제 맛이다.


운길산 정상이 2.6㎞, 수종사 2.2㎞를 가리키는 푯말을 뒤로하며 본격적인 산행에 돌입한다. 처음 진입로는 시골의 논․밭길을 연상시킨다. 뚝 따라 한참을 가다보면 오르막 경사길이 나타난다. 그런데 길이 장난이 아니다. 허리를 못 펼 정도로 급경사다. 어휴∼ 신음소리와 함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지나가는 등산객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나무그늘을 찾아서 삼삼오오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는다.

한참을 가다 정오를 조금 지난 시간, 산 중턱을 조금 넘긴 지점에서 중년 남자가 간이테이블에 막걸리를 깔아놓은 채 팔고 있다. 주변에 설치된 나무 벤치에서 일행들 휴식을 취한다. 금융업에 종사하다 최근 미국에서 건너 온 지인이 방울토마토를 돌린다. 몇 개 집어 입에 넣는다. 맛있다. 물도 마신다. 무척 시원하다. 여기서 우측으로 올라가면 수종사다. 일행들은 정상정복 후 하산 길에 수종사를 둘러보기로 하고 잠시 쉰 뒤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오후 1시가 가까워진 시간, 시야에 넓은 헬기장이 들어온다. 여기서부터 등산객들 끼리끼리 모여 식사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10여 분 올라가니 운길산 정상이 나타난다. 눈 앞 멀리 예봉산의 산그리매가 봄빛을 받아 눈부시게 펼쳐져 있다. 심호흡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운길산’이란 글귀가 바윗돌에 고풍스럽게 새겨진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한 후 넓은 정자모양의 데크에서 가볍게 정상주를 돌린다. 집에서 얼려온 막걸리를 각자 잔에 붓고 단숨에 원 샷. 카∼악 …. 이때 말리면 사고 친다.



점심 식사를 위해 아래 헬기장 부근에 자리를 잡는다. 우리 형수님, 주말농장서 수확한 상큼한 상추를 내놓는다. 미국서 온 지인, 집에서 부인이 정성스럽게 싸준 열무김치를 펼친다. 김치 국물 때문에 다들 싸오기를 꺼리는데 용케도 비닐을 몇겹으로 감아 가져왔다. 벌써부터 입안에 군침이 돌기 시작한다. 왼손에 잡곡 완두콩밥과 양념된장 얹어 한 쌈 만들고 오른손에 막걸리잔 높이 들어 후딱 들이킨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할렐루야!

식사자리에서 오가는 대화가 자못 진지하다. “최근 치러진 재·보선에서 참패한 집권 한나라당의 역학구도상 진정코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를 포용하지 못하면 한나라당의 미래는 없다.” “향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이며, 과연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인가.” “맨유의 박지성은 재계약에 성공할 수 있는가….” 주말 심야토론을 산 속에 옮겨 놓은 것 같다.

하산길에 들른 수종사는 보물로 지정된 부도내유물(浮屠內遺物)과 지방문화재 제 22호인 팔각5층석탑, 500년이 넘는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가 있다. 무엇보다도 수종사의 보물은 경관이다. 국내 최고의 한강 전망대라고 할 정도로 아름답다. 이곳에서 내려다 본 한강은, 주변의 산들로 첩첩이 둘러싸여 북한강과 남한강이 수종사앞 두물머리에 물을 섞고 팔당댐에 막혀 거대한 호수로 절경을 빚어낸다. 조선의 문호 서거정이 동방의 사찰 중 최고의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고 격찬할 만하다.

수종사에 대한 유래는 조선 7대 임금인 세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조가 금강산을 다녀오다 양수리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는데 해가 저물어 고요한 산에서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사람을 시켜 찾아보니 바로 이곳 수종사 자리에 작은 굴이 있고 그 속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종소리처럼 넓게 울렸고 또 굴속에 16나한이 들어 있어 세조가 이곳에 절을 짓고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사찰의 마당 한쪽에는 차를 얻어 마실 수 있는 삼정헌(三鼎軒)이 있다. 두물머리의 풍경을 눈에 담으면서 차를 음미하는 곳이다. 찻값은 받지 않고 고마움이 넘치면 시주함에 성의를 표시하면 된다.

수종사 아래 주차장을 지나면 왼쪽으로 자연체험 탐방로가 나온다. 떡갈나무로 사방이 덮여 햇빛을 막아 주는 시원한 오솔길이다.

하산 후 서울 선릉의 한 지인 초청으로 지하철 2호선 선릉역 인근의 토종 조선 맛을 자랑하는 ‘고향집(02-552-0855)에서 황태해장국에 막걸리를 곁들이며 오늘을 마감한다. 나른한 마지막 봄날이 그렇게 가고 있다.
jkh4141@hanmail.net <전광훈님은 본지 선임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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